박여숙 화랑은 백자평면작업이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도자기의 기능성을 배제시키고 액자의 틀 안에서 객관화시키면서 조선백자의 본질에 더욱 순수하게 닦아가려는 고난도의 실험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이승희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의 작품은 조선백자예술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영원’의 예술이 될 것을 약속해주는 듯 하다. 이번 전시는 이승희의 조선백자에 대한 깊은 애정, 창조적인 계승, 현대적인 상상력을 보여줄 것이다.
이승희 작가는 30년이 넘게 도자 작가로 활동하면서 매일 흙과 마주하며 흙덩이를 주무르고 다지며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고 완성해 갔으나, 도자기라는 한정된 형태의 작품 속에 그의 생각을 모두 담을 수 없다는 점과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 한계에 부딪히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2008년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의 징더전(景德鎭)으로 떠났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 구도자처럼 떠난 그는 그곳에 틀어박혀 온갖 구상과 실험을 거듭했다. 애초에 중국에도 동양에도 딱히 관심이 없었던 그에게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이질적인 경덕진의 환경과 문화에 충격을 받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대면하면서 동양인으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동양의 미감을 갖지 못하고 성장했다고 회상한다. 서양미술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근, 현대미술관을 방문하며 접했던 서양미술에 매료되어 감동을 받았을지언정, 조선시대 또는 중국의 명나라 청나라 때의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자 따로 박물관을 찾아 다녀 본 기억조차 없었던 것이다. 작가 스스로 동양의 미감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자신에 대한 발견은 자연스레 반성으로 이어지고, 예전에는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꺼내어 점검해보고 싶은 마음에 중국에 머물면서 1년동안 중국 미술관과 박물관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점차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흙판을 만들고 고온에 굽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그는 창작의 열정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의 걸작 도자기들을 평면회화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작업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단순히 입체를 평면으로 옮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형성을 살린 예술적 평면을 구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5cm두께의 흙덩이 판에서 시작해 5mm의 두께를 얻기까지 연속된 실패를 거듭하며, 실험과 체험을 수없이 반복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섬세한 감각과 끈질긴 인내심으로 그는 정통 도자 기법으로 3차원의 도자기를 2.5차원의 평면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배경 부분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 흙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되, 도자기는 유약을 발라 고전 도자기를 그대로 재현하여 그 대비를 강조하였다. 그는 이미 구워진 후의 색깔과 모양까지 세밀하게 계산해 가며 작업한다. 박물관에서 수없이 도자기를 봤지만 평면작업으로 직접 만들면서부터 옛날 도자기를 보는 방법이나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청화백자가 푸른색과 흰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흰색도 푸른색도 수십 가지의 색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런 미세한 차이를 형태와 색상을 달리해 나타내려고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흙의 종류, 수분량, 불의 온도, 염료의 농도 등을 매일매일 기록한 노트를 기반으로 시각과 촉각,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통해 미세한 바람의 흐름과 빛의 반사를 정교하게 소화해 내 평면 도자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도자도, 회화도 아니다. 도자와 회화가 결합된 릴리프다. 자연스럽게 도자기가 도드라져 보이면서 배경과 중심이 대비를 이룬다. 고전적인 도자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 그의 반부조 작품을 통해 현대의 옷을 입고 재 탄생한 것이다.
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무수히 스케치하고, 그리고 그것을 흙을 통해 표현하는 일은 그가 선택한 고난의 유희이다. 그는 회화처럼 머리의 이미지로만 구성되는 가상의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되어 구성되는 구체적 이미지의 재구성을 원했다. 전통적인 도자 기법으로 사각의 넓은 판을 만든 후 그 중심에 묽은 흙물을 70여회 발라 평면적 두께감을 주고 그 표면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티끌 높이의 결을 조심스럽게 긁어내 미묘한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회화가 붓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감각을 여과시킨다면 도자기는 매개와 직접적으로 마주대하고 그 감각을 뚫고서 어떤 의미에 다가서야 한다. 이승희는 자신이 흙을 떠나서 사유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한 발견을 통해 직접적인 감촉과 사유 그리고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어떤 이유를 발견한 듯하다. 그는 쓰임새의 용도가 있는 도자기를 만들고자 흙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고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흙을 선택하여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매일 적어가는 작업 노트와 스케치가 담겨있는 그의 상상력의 보고인 작은 스케치북은 다음에 또 어떤 ‘무모한’ 작업을 실현시킬지 기대를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