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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안규철 작가 "내 작업은 여전히 질기고 불편한 음식"

2017.02.21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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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작가가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7.2.1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지난 10일, 개인전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안규철 작가(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의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이었다. 제약회사 로고가 붙은 달력의 2월 그림이 공교롭게도 최근 논란이 된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소속 작가 이구영 씨의 '더러운 잠' 원본 그림으로 알려진 마네의 '올랭피아'였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주도하며 민미협을 태동시킨 '현실과발언'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안규철 작가에게 '더러운 잠' 논란에 대한 견해부터 물었다. 그는 "이걸 갖고 뭘 그렇게까지 난리를 치는가 싶다"며 운을 뗐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 정도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답답한 사회인거죠. 그러나 이 작품이 예술적으로도 옳은가의 문제는 별개예요. (풍자 그림들이)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진보이면서 예술 형식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는 것, 이게 모순이죠."

안규철 작가가 21일부터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2015년 '현대차 시리즈' 작가로 선정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었던 대규모 관객참여형 프로젝트 전시 이후 2년만에 상업화랑에서 여는 전시다.

안규철 작가는 일상의 사물과 언어를 주요 매체로 개념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다. 평범한 사물들을 관찰하고, 그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데서 그의 작업은 출발한다. 때로 사물의 기능과 성격을 전복시키고 유희적인 상상을 통해 그 사물을 다른 맥락 속에 옮겨놓음으로써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이면을 환기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주제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였다. 국제갤러리에서는 '당신만을 위한 말'로 주제를 잡았다. 미술관 전시가 문학적 서사를 기반으로 문학과 미술을 연결시키는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에는 구체적인 사물의 상태와 물성의 본질에 주목한다. 그동안 작가가 틈틈히 스케치북에 써 왔던 것들을 실현시키고 그것을 다시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진행한다.

안규철 작가가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7.2.1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미술시장의 천편일률적인 취향…개념미술도 상품이 될까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안규철은 197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계간미술' 기자로 활동하면서 1985년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다. 1987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뒤 이듬해인 1988년 독일로 이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학부와 연구과정을 마쳤다. 1997년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안규철은 한국의 개발과 성장 위주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규모 조각 작품들이 성찰없이 반복 생산되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작은 규모의 종이점토와 석고를 이용한 '이야기 조각'을 선보였다. 단순하고 다루기 쉬운 재료로 연극의 한 장면처럼 특정한 상황들을 묘사하는 작업으로 기존 조각 작업들의 규범에 비평적인 태도를 취했다. 독일 유학 이후에는 일상의 사물들에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부여하는 '오브제 조각'과 언어를 이용한 작업을 발전시켰다.

미술관, 비엔날레 등 비영리 전시를 주로 해 온 작가에게 국내 최대 상업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는 이것을 '도전'에 비유했다. "국내 미술시장의 협소한 컬렉터 층이나 천편일률적인 취향 속에서 나같은 사람의 '허접한' 작품도 상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그는 "개념미술가라는 '원치 않았던' 꼬리표를 달고 해 왔던 작업들이 미술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보이지 않는 노동'도 노동으로 인정받고 그것을 물질로 상환받을 수 있을지를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도전하는 전시"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노동들이 있어요. 시 한편으로 밥벌이를 할 수 없고, 화가들 중에서도 물질적으로 가치가 있어 보이거나 감각적으로 매력적인 것을 다루지 않는 화가들은 미술시장에 진입조차 할 수가 없죠. 이런 환경을 좀 더 다양하고 포용력 있는 환경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규철 작가가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작업실에서 작업도구를 정리하고 있다. 2017.2.1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진영 바뀐다고 검열 사라질까…중요한 건 미술의 비판적 기능

안규철 작가를 미술계로 이끈 건 보성고교 시절 간송 전형필 선생의 아들인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었다. 고교 3학년 때 뒤늦게 미술을 시작하겠다고 한 작가를 "잘 지도해서 서울대 보내라"고 한 게 당시 미술교사였던 전성우 이사장이다.

6개월 화실을 다니고 서울대 조소과에 들어간 안규철 작가는 대학생활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미술대학에서 '딴 짓'하는 여느 학생들처럼 연극반으로 빠졌다. 당시 민정기, 임옥상, 황인기 등이 활동하던 연극반에 들어간 안규철 작가는 3학년 때 연극반장을 할 정도로 연극에 몰입했다. 그러나 삼엄했던 시기, 안톤 체호프 작품도, 아서 밀러 작품도 모두 '검열'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미술 잡지사에서 일하면서도 정부의 검열은 계속됐다. 잡지 가제본을 들고 시청에서 검열 도장을 받아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안규철 작가는 최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상기시키며 "그와 같은 검열이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었다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했다.

"민주정부 시절에도 검열은 있었어요.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예술의전당에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주관하는 전시를 열었는데, 대통령을 희화화한 그림이 문제가 됐어요. 결국 전시장에 걸리지 못했죠. 진영이 바뀐다고 검열 문제가 쉽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지금은 큰 산 하나를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죠."

그는 이 때문에 미술의 비판적 기능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본질을 포착하는 미술 본연의 기능 때문에, 미술은 근본적으로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대상을 보고 그대로 복제, 재현하는 기능은 이미 다른 여러 매체들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 고유의 비판적 역할이 더욱 필요한 겁니다.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고 문제를 지적하는 기능, 이것 없이 의미있는 미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안규철, 2대의 자전거. (국제갤러리 제공) © News1

◇"나의 작업은 여전히 질기고 불편한 음식"

이번 전시에서는 일상 속 사물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삶을 반추한다. 표범 가죽을 뒤집어 쓴 양,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듯 다리가 점점 길어지다 결국 '노'가 돼 버린 의자, 펠트 천으로 만든 소리나지 않는 종 등, 정상인 듯 보이나 모두 변형되고 왜곡된 상태의 사물들이다. 얼핏 보면 자전거 2대가 나란히 있는 것 같지만, 핸들과 안장이 따로 떼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가 돼 있다.

전시장 벽면에 지그재그 형태로 경사를 이루며 설치된 목재 레일 구조물을 따라 나무 공이 천천히 굴러 내려가게 한 설치작업 '머무는 시간 I, II'를 중심으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오브제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공 하나가 중력에 의해 계속 굴러 내려가요. 가장 원시적인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움직이는 조각)죠. 정해진 궤도 안에서 나선형의 움직임이 무한히 반복되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부조리하고 착종(錯綜)된 사물들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만을 위한 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개념을 내세우는 안규철 작가의 작업들은 때로 무미건조할 정도로 불친절하며, 개념미술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이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확고하다. 자신의 작업은 여전히 '질기고 불편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첫번째 개인전을 하면서 카달로그에 이런 말을 썼어요. '내가 하는 작업을 요리로 비유한다면, 이것은 아주 질기고 불편한 음식'이라고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요리를 기대한다면 나는 그것을 채워주지 않겠다, 초근목피로 만든 음식 맛도 좀 봐라'하고 도발적인 선언을 한 거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해요. 다만 그 때와 지금이 달라진 게 있다면 작가와 관객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 저는 그것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워하는 것, 슬퍼하는 것, 사랑하는 것, 그 일상적인 감정들을 연결고리로 관객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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