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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조영남이 무시한 회화의 오래된 진실

2016.05.23

[머니투데이]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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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년)의 실크스크린 작품인 '꽃'. 워홀은 그의 스튜디오인(팩토리)에서 조수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회사에서 손과 정신의 이분법이라니…작품은 10만원이 간절한 무명화가의 것일 뿐"

개념미술가 솔르윗(Sol LeWitte)은 한국 땅을 밟지도 않은 채 한국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것이 가능했다. 한국 갤러리에 펙스로 아이디어와 작업지시서가 담긴 에스키스를 전달하는 것으로 작가로서 그의 임무는 이미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화는 개념미술이 아니다. 개념미술이 1970년대의 산물인 반면 회화는 인류의 기원과 맞닿아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건 현대적인 의미에서건, 회화에서는 첫 스케치부터 마지막 완성에 이르기까지 붓질 하나하나가 그림 전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조수의 도움이 물리적인 부분에 국한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이미 개념주의에 감염된 사유의 산물이다. 회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화작업에 ‘진지하게’ 임한 경험이 있거나 임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알고 있다. 안료를 흥건히 묻힌 붓이 캔버스와 접촉하는 과정에 돌입하는 순간 물질적 차원과 아이디어의 이분법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과 정신의 이분법은 여기서 가당치 않다. 기술과 노동, 감성과 인식은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를 밀치고 끌어당긴다. 그러한 과정의 내밀함과 치열함, 어긋남과 일치의 밀도있는 반복에 의해 회화는 조금씩 주인을 닮아간다. 그리고 공감의 공간이 아주 조금씩 확장되어나간다. 미적 수준은 그것의 한 부수적인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존경받아 마땅한 회화, 보는 이를 그 앞에 묶어두는 그림은 대체로 그렇게 만들어진다. 마땅히 조영남의 회화도 그렇게 만들어졌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작은 붓질 하나, 실수로 튄 안료 한 방울에 이르기까지 주인의 땀과 눈물, 고통과 환희, 지적 분출이자 마음의 고백을 담은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조영남의 그림이 상당히 표현적이기에, 붓질들엔 변화무쌍하고 근육의 고유한 작용이 미세하게 반영되어 있기에, 더더욱 그래야만 했었을 그것의 90% 이상이 익명의 A씨에 의해 수행됐다.

조영남의 그림 '가족 여행'.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 그림에 담겨져 있으리라고 믿었던 조영남의 내밀한 것들이 그림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불규칙하고 진동하는 듯한 터치들은 10만원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무명화가의 것일 뿐이다. 여기서 조영남은 소액을 제공한 대가로 수천만 원에 팔릴지도 모를 대작을 획득하는 기지를 발휘하는 인간으로서 등장할 뿐이다. 대필된 터치, 대행된 채색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기만보다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비예술적 혜택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이러한 진술을 과도한 것으로 만드는 '관행'이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조영남은 그 관행으로 자신의 마지막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이 쓴 책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 쪽에선 예술 한답시고 얼마나 거들먹거렸는가. 예술이 무슨 권력이나 되는 것처럼 얼마나 착각해 왔는가” 그래서 그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화투장을 들고 나왔을 때, 그가 말했던 것이 미술계의 관행이었던가?

미술계의 관행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카미유 코로(Jean Baptiste Camille Corot)는 다른 화가의 그림에 숱하게 사인을 해준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을 그 화가만큼은 면하기를 바랐던 코로의 순결한 동정심 때문이었다. 그는 자주 이용당했지만, 결코 남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공장)는 어떤가. 많은 조수와 동료들이 작업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생산을 아메리카화한다는 개념의 산물이었다. 워홀의 공동 작업은 관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깨는 것이었다.

제프 쿤스의 아틀리에에선 127명의 어시스턴트들이 작품제작에 관여하고 있다. 세계 미술 시장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한 작가를 프로모션해 브랜드화하고, 욕망의 조작에 나서고, 페어와 옥션으로 구성된 지구촌 비즈니스망을 통해 대대적인 판매에 나서는 것이다. 헤지펀드들의 자본이 몰리고, 부의 거대한 이동이 일어나고, 투기 붐이 조성되고, 누군가는 정말이지 큰돈을 번다.

이것이 현대미술의 초자본주의적 작동방식이다. 현대미술의 많은 가담자들이 이 길을 따르고 싶어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길이 매우 위험한 길이라는 것만큼은 알아두시길!

그리고 관행을 어떤 실수에도 온정을 베푸는 관용주의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관행 안에는 또 다시 다양한 유형들이 존재한다. 어떤 관행을 따를 것인가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다.

심상용 동덕여대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 교수. /사진=박홍순

※ 머니투데이는 조영남의 '대작 논란'과 관련해 심상용 동덕여대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 교수의 특별 기고를 받았다. 심 교수는 1961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85, 8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각각 회화와 서양화를 전공했다. 1989년 도불해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으로 석사와 D.E.A.(박사 전 학위)를,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학으로 박사학위(1994)를 취득했다. 저서로 『아트 버블』(2015.리슨투더시티), 『예술, 상처를 말하다』(2011.시공사), 『시장미술의 탄생』(2010.아트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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