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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미술 전시회

2018.04.23

[머니투데이] 황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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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캔버스에 두껍고 커다란 붓으로 남긴 듯한 점 하나가 덩그러니 찍혀 있다. 뭐 특별한 게 있나 살펴봐도 그 점 하나가 다인데, 앞에 선 사람들은 인증샷을 찍어대고 그 썰렁한 작품은 수억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띄엄띄엄 놓인 캔버스들의 행렬을 보러 멀리까지 찾아가 전시란 것을 관람하고 기록하고 또 즐기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전시를 관람하는 일이란 꽤 낯설고 어려운 행위인 것 같다. 특별히 교육받은 적도 없는 분야인 데다가 사실 정해진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즐기고 소비하는 소위 대중문화들은 많은 부분 생활 속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은데, 방송을 본다든가 음악을 듣는다든가 하는 것들은 거실에 틀어놓은 텔레비전이나 카페에서 들려오는 음악같이, 어느 정도 각자의 생활에 오랜 시간 속해 있어 특별난 접근법 없이도 쉽게 수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술전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지가 않아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생활하는 장소와 멀리 떨어진 곳에 능동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그것을 직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낯선 경험은 많은 사람들을 미술전시, 특히 현대미술과 멀어지게 하고,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열쇠가 있다. 우리가 직면한 바로 그 낯섦이 현대미술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핵심적인 대상인 것이다. 생활하는 장소를 떠나 찾아가는 전시는 공간적 특성을 갖는데, 우리가 방문하는 전시장은 늘 그대로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매일매일 변화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시장은 전시의 콘텐츠에 맞춰 늘 새롭게 조성되는데, 새로운 벽이 생기고 새로운 색이 덧대지고 또 새로운 빛이 들어선다. 게다가 그러한 환경은 정해진 전시 기간 동안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으로, 전시가 끝나면 정리되고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마는, 조금은 허무하면서도 찰나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관객은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환경 속에서 작품을 대하게 된다. 그 순간은 반복적인 일상생활과는 꽤나 괴리된 시간인데, 조명이 떨어진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일이란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드물기 때문이다. 콘서트장의 가수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텔레비전 속 장면은 박진감 넘치게 변하지만, 전시장의 작품들은 정해진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다. 전시를 관람하는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해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으로 전시를 관람해야 할까. 작품이 아름답다, 좋다, 싫다, 혹은 모르겠다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나간 연인을 떠올릴 수도, 가슴 아픈 역사를 되짚어볼 수도 있으며,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상상해볼 수도 있고, 큐레이터의 해설을 적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커피를 쏟거나 고성을 지르지 않는 한, 정해진 방법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영화를 관람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낯섦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도 전시 전경은 충분히 찾아볼 수 있지만, 내 휴대폰에 굳이 남기고픈 작품, 인스타에 올려 자랑해보고 싶은 공간,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멋진 순간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시를 관람하고 소비하면 된다. 작품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폼을 잡아도 좋고, 남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속으로 욕해도 되고, 소장하고픈 작품을 발견할 수도 있고, 낯선 분위기 속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도 된다. 흥미를 느낀다면 전시도록을 정독하고 참여 작가의 이력도 살피며 전시의 맥락도 따져보면 더욱 재미있겠지만, 이는 비평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분석적으로 영화를 관람해도 되지만, 단지 영화를 즐기는 데는 팝콘과 콜라면 충분한 것처럼. 그냥 그 낯선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나 자신을 연기해보자. 당신은 동시대의 생산물을 즐기는 (재미있는 의미의) 힙스터로 빙의되어 있을 것이다.

TIP
가볍게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힙하게 전시를 관람하고 싶다면, 미술사 개론을 공부해 계보적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좋지만 미술잡지를 읽어보는 게 빠른 도움을 준다. 무작정 느낌 따라 전시를 찾기보다는 국공립미술관의 전시를 훑어보는 것도 실패율을 줄여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2018 아시아 기획전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가 전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규모에서부터 압도되는 다양한 사이즈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희소한 공간으로, 꼭 한 번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전시는 ‘아시아’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해석하는 다채로운 관점의 작업들을 선보이는데, 아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선들 속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2018.04.07 – 2018.07.08.)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유령팔’전을 관람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 본관을 포함한 여러 개의 분관이 있는데, 북서울미술관은 상대적으로 문화 콘텐츠가 부족한 북서울에서 지역 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는 곳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지역민들에게 조금 더 문턱을 낮춘 지역특성화 미술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 전시는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는 창작 환경을 반영한 작업들을 소개하는 전시로, 첨단 매체와 만난 미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재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게 한다. (2018.04.03. - 2018.07.08.)

스페이스 씨는 ‘히든 워커스’전을 개최한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오랜 시간 무시당했던 여성들의 노동을 조명하는 전시로, 낯설지 않은 과거, 현재 여성들의 모습을 작품으로서 관람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오래된 논의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많은 이들의 몰이해 덕분에 아직도 생생한 작품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오늘의 상황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이번 전시는 페미니즘 미술을 좀 더 친절하게 소개하며 소리 없는 외침을 마음속에 남긴다. (2018.04.05. -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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