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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시장인가, 미술관인가…뉴욕 첼시마켓 가보니

2018.01.08

[머니투데이] 김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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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6일 방문한 미국 뉴욕 맨하탄의 첼시마켓 /사진=김민중 기자

[전통을 혁신하다 시장의 대변신2회-①]옛것과 새것 조화시킨 디자인 인상적, 상품 품질도 훌륭하고 가격도 싸

편집자주같은 전통시장이지만 너무나 다르다. 어떤 시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장사도 잘 된다. 반면 어떤 시장은 고객의 발길이 뚝 끊어져 내리막길을 걷는다. 잘 나가는 시장과 망해가는 시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답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특유의 스토리로 무장한 '특별함'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전통시장이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일상의 장소이자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성공한 국내외 전통시장을 방문해 성공한 시장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스토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전통시장 성공의 키워드를 도출해봤다.

시장인가, 미술관인가.

지난해 11월6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하탄의 첼시마켓에 갔을 때 처음 든 생각이다. 8층짜리 건물 1층(길이 225m·폭 60m)에 자리잡은 첼시마켓에는 시장(市場)과 어울릴까 싶은 현대적 사진작품, 조각가 마크 메닌의 작품 등이 다수 설치돼 있었다. 쓰레기통과 ATM(현금입출금기), 벤치까지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이었다. 엘리베이터 10여 개는 기하학적인 바닥 무늬가 제각각이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화장실도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로 세심한 조명과 장식이 돋보였다. 전반적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의 분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할로윈 데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시장 전체가 해당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디자인으로 변신한다고 전해진다.

첼시마켓에서는 예스러움도 느낄 수 있었다. 1890년대 지어진 해당 건물은 원래 과자(오레오 쿠키) 공장이었는데 당시 기계설비들을 활용한 복고풍의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18개 건물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철거된 벽체들 중 일부의 흔적(벽돌 파편)을 남겨 놓기도 했다. 시장 중간쯤의 천장 수도배관에서는 물이 끊임없이 쏟아지며 인공폭포 역할을 했다. 첼시마켓에서는 한마디로 옛것과 새것이 공존했다.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면서도 짧은 역사에 갈증을 느끼는 뉴욕 주민들에게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인근에 사는 크레이그 스미스씨는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든다"며 "무언가를 살 때뿐만 아니라 나들이를 하고 싶을 때 자주 온다"고 말했다.

뉴욕 주민들이 몰리자 덩달아 관광객도 모이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방문해 단체 관광 등은 상대적으로 한산한 시간(평일 기준 오전 8시30분부터 11시까지 혹은 오후 4시부터 저녁 7시까지)에만 허용됐다. 일본에서 가족 3명과 함께 관광 왔다는 시호 사토씨는 "한마디로 멋지다. 뉴욕답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레바논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온 신시아 데미안씨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시장에 가는데 여기서는 뉴욕의 소울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복수의 상인들에 따르면 건물주인 유럽계 부동산 업체는 공용공간뿐만 아니라 상점 40여 곳 내부의 인테리어도 하나 하나 관여한다고 한다. 상인이 조금이라도 디자인을 바꿀 때마다 보고를 하고 승인을 받는다. 건물주 사무실에는 디자인 관리 팀이 따로 있다.

건물주가 지나치게 깐깐하다고 할 정도로 디자인에 신경 쓰지만 이곳에 입점하려는 상인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첼시마켓에서 한국식 퓨전음식점 '먹바'를 운영하는 에스더 최씨는 "4년 전쯤 3개월간 하루에 3~4시간만 자며 수천 명의 상인과 프리젠테이션 경쟁 등을 벌인 끝에 입점할 수 있었다"며 "임대료가 뉴욕에서 가장 비싼 수준인데도 들어오려는 상인들은 줄을 섰다"고 밝혔다.

첼시마켓을 디자인한 건축가 제프 반더버그씨는 "창의적인 공간, 매 순간 눈을 사로잡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면서도 "더 중요한 건 로컬(local)이다. 지역 주민이 이런 식의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첼시마켓을 8개 층 중 1층에만 만든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반더버그씨는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지금보다 더 크면 중복되는 상점이 생기고 방문객들은 지루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득 비슷비슷한 상점 수백 개가 붙어 있는 서울의 한 재래시장이 떠올랐다.

고가도로형 공원인 하이라인 파크가 첼시마켓을 관통하는 점도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는 비결이다. 하이라인 파크는 서울역 고가 공원의 모델이기도 하다. 실내형 시장이기 때문에 여름의 더운 날씨나 겨울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점 역시 장점이다.

지난해 11월6일 방문한 미국 뉴욕 맨하탄의 첼시마켓 /사진=김민중 기자

◇디자인의 첼시마켓, 상품 품질도 훌륭하고 가격도 싸

겉만 번지르한 건 아니다. 질 높은 음식과 식재료 등을 싼 값에 팔기로 유명하다. 이곳을 찾은 주민들은 "뉴욕에서 다양한 음식을 가장 싸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첼시마켓"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가격만 보면 다른 곳보다 평균적으로 10%가량 싸다는 평가다. 건물 2~8층에는 방송국과 인터넷 기업 등이 입주해 있는데 직원들은 점심식사를 첼시마켓에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최고의 복지 혜택을 누린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이 같은 최고의 시장을 만드는 데 든 돈은 200만달러(약 22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것도 순전히 민간 자본으로만 조달됐을 뿐 공적 자본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당국이 시장 설립과 관리에 관여한 부분도 전혀 없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하고도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 시사점을 던지는 대목이다.

첼시마켓의 성공 뒤에는 수차례에 걸친 시행착오가 있다. 건물의 원래 주인인 과자 업체가 1960년쯤 높은 세금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자 인근은 갱들이 출몰하는 우범지역으로 전락했다. 독특함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알려진 한 개인 사업자가 1990년대 초 건물을 인수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전자제품 상가로 꾸몄다가 꽃 시장, 식료품 도매 시장을 거쳤고 음식과 식료품 소매 상점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시장이 자리잡았다. 이후 부동산 업체로 건물주가 바뀌었다.

첼시마켓이 인기를 끌면서 지역 전체가 활기를 띠고 있다. 기피 지역이던 첼시 지역은 한적한 주택가로 변신해 있다. 시장 건물 앞에는 구글의 뉴욕 지사 건물이 우뚝 서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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