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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금호미술관] 강미선 초대전 《水墨 쓰고 그리다》

2021.11.26

Writer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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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전시 개요

 

- 작 가 : 강미선 (b. 1961~)

- 전 시 명 : 《水墨, 쓰고 그리다》

- 소 : 금호미술관 전관 (B1 ~ 3F, 총 7개 전시실)

- 전시기간 : 2021년 11월 19일 (금) ~ 2022년 2월 6일 (일)

- 성 : 총 35점

3층 전시실 – 〈금강경(金剛經) - 지혜의 숲〉 등 6점

2층 전시실 – 〈관심(觀心)〉 연작 등 15점

1층 전시실 – 〈서가도(書架圖)〉 등 2점

지하 1층 전시실 – 〈한옥(韓屋)〉, 〈무언가(無言歌)〉 연작 등 12점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입장마감 오후 5시 30분 / 매주 월요일 휴관)

▶ 전시 및 연계프로그램 문의 : Tel. 02-720-5114, www.kumhomuseum.com

 

 

II. 전시 내용

 

금호미술관은 2021년 11월 19일부터 2022년 2월 6일까지 강미선 초대전 《水墨, 쓰고 그리다》를 개최한다. 강미선은 오랜 시간 동안 한지의 물성과 먹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는 여러 겹의 한지를 쌓아 올리고, 표면을 두드려 한지 고유의 질감이 잘 드러나는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담담한 먹빛으로 그려내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강미선 작가의 작업은 더욱 확장된 세계로 나아간다. 소소한 풍경과 정감 있는 정 물을 담묵으로 부드럽게 표현한 <관심(觀心)>연작과 강한 묵의 필선을 통해 새로운 조형미를 보 여주는 <한옥(韓屋)>연작, 명상을 주제로 자연의 재료인 감을 이용한 <무언가(無言歌)> 등의 신 작을 선보인다. 또한 전통 서가도 형식을 차용하여 현대적으로 구현한 <서가도(書架圖)>, 금강경 5,149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 간 대작 <금강경(金剛經)-지혜의 숲> 등 색다 른 형태의 수묵 설치 작업을 통해 관람객들을 아늑한 사유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작가는 종이와 먹이라는 단순한 질료의 개념을 넘어 수묵화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 상과 정신을 함께 담아낸다. 나아가 글과 그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오늘날 수묵화의 지 평을 넓히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III. 전시 평론

  

수묵의 정서와 한지의 조형 -강미선의 근작에 대해-

오광수(미술평론가)

 

 

강미선의 작업은 지지체에 가해지는 일반적인 그리기의 과정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수제 한지이 면서 작가는 이를 자신의 공정(工程)으로 또 하나의 작업을 진척시킨다. 공장(工匠)이 기술적으로 만든 한지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작업으로서 평면을 표면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평면을 표면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능적인 쓰임새로서의 평면이 아닌 독특한 표면의 창조를 전 제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리기에 앞서 이루어지는 이 과정은 회화 일반의 차원에 못지않은 중 요성이 확인되는 일이자 조형적 실현이란 과정에 상응되는 것이다.

여러 겹을 발라올린 한지의 표면은 일반적인 종이로서의 수용성의 기능에 머물지 않고 그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태어난다. 미세한 융기로 덮이는 표면은 일종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위에 이루어질 어떤 행위를 수용할 준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표상의 체계가 아 닌 수묵과 한지의 만남이란 구조화는 단순한 바탕과 이 위에 가해지는 일정한 행위의 관계라기보 다 하나의 실존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그 독자의 조형 전개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의미로 본다면 이는 일반적 회화로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진행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다름없다. 완결되지 않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생명체이다. 단순히 기능적으로 만듦이 이루어지는 것 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으로서 말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풍경이나 정물이 일반적인 보는 행위로서 설명을 넘어 서서히 다가오는 어떤 기대감으로 설레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내세운 《水墨, 쓰고 그리다》란 표제는 단순한 서화동원(書畵同源)의 형식의 환원을 기도한 것이 아니다. 바탕(지지체)과 이 위에 가해지는 수묵은 단순한 표상의 체계가 아니다. 바탕과 이 위에 가해지는 수묵은 행위와 물성의 만남이란 극적인 과정을 거처 그 고유의 존재로서 다시 태 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설명을 앞질러 오는 존재감이다. 완결되지 않은 하나의 경향성이라 말할 수 있다.

화면은 더없이 내밀하다. 담묵에 의해 시술되는 표면은 부드럽고 아늑한 공간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안으로 가라앉으면서 한편으론 은밀히 밖으로 솟아오르는 경향으로 인해 더욱 구조적인 차 원을 만든다. 담묵과 더불어 감물이나 옻물로 이루어지는 표면은 일종의 포화상태를 만들면서 표 면에 풍부한 표정을 일구어낸다. 이 같은 복합적인 화면조성은 깊이로서의 구조에 상응되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잠식된다는 것은 화면의 구조적인 일체화를 높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속된 것을 가라앉히는 정신의 순화와도 대응된다.

 

《水墨, 쓰고 그리다》 평론 글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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