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 )
김시연은 결혼 후 여성이 겪는 가정 내 소외와 불안을 일상적인 사물들을 통해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소금, 비누, 유리병 등 물에 녹거나 깨지기 쉬운 연약한 사물들이 저마다 무리 지어 일상의 반란을 꾀하는 2008년 부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원래의 매끈한 모습을 잃어버린 사물들을 담담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2013년 까지, 김시연의 작업 전반에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가며 가정이라는 공간에 함몰되어가는 여성의 불안과 고독이 내재되어 있다.
작가는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물들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과 공명하는 지점을 작업으로 담아낸다. 가시처럼 뾰족하게 깎은 비누조각을 주방 가득 배치해 마치 집이 비누로 잠식되어가는 듯한 상황을 연출한 , 소금과 물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원뿔 형태로 빚은 소금기둥을 마치 집안에 솟아난 종유석처럼 설치한 등, 특히 2004년에서 2012년까지 선보여온 작업들은 사물들이 집 안 곳곳을 점거해나가는 듯한 공간 연출을 통해 작가 자신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공허와 우울을 극대화하는 한편, 작업을 위해 사물을 반복적으로 깎고 쌓는 행위는 작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김시연의 부단한 투쟁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시리즈인 은 “차 한잔 해요”라는 상투적인 인사말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이 말이 앞으로 있을 만남과 소통을 기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인사 치레로 별 의미 없이 소비되는 상황을 “잔”이라는 단어의 중의성을 빌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잔”은 물, 술, 차 같은 것을 담는 그릇을 지칭하거나 그것에 물, 술, 차 같은 것을 담아서 세는 단위명사인 동시에 “가는”, “작은”, “하찮은”을 뜻하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김시연은 이라는 작업을 통해 “차 한잔 해요”라는 기약 없는 약속에서 오는 공허함을 위로하고 마실 수 없는 차를 위한 치유를 제안한다.
김시연이 제시하는 치유방식은 총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비어있는 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살아 있지 않은 식물, 위태로운 받침대, 조용한 공간, 그리고 기다림. 작품 속에서 찻잔은 그 안에 차가 아닌 종이 잎사귀를 담고 자신의 본래 기능을 상실한 채 작은 테이블 위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으로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온통 흰색으로 뒤덮인 사물들과 잔 안에 들어있는 잎사귀의 인공적인 색감은 사진 속 실제 생활 공간을 심리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며, 실현되지 않을 비현실적인 언약과 유예된 만남을 시적으로 보여준다. 친밀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소통이 사라진 생활의 지점을 보여주는 김시연의 이번 작업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공감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