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는 2020년 8월 26일(수)부터 9월 27일(일)까지 학고재 본관에서 윤향로(b. 1986, 서울) 개인전 《캔버스들》을 연다. 윤향로는 자신이 '유사 회화'라고 명명한 개념 아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동시대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기술적 측면에 주목하고, 미술 외 다양한 분야에서 참조한 요소를 회화 언어로 변주한다. 이번 전시는 윤향로가 최근 제작한 연작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미술사적 레퍼런스에 개인 삶의 서사를 연결 지으며, 스스로의 자화상과 같은 전시로 구성하고자 했다. 풍부한 서사와 기법의 성숙이 돋보인다. 전시 도록에는 출품작 및 전시 전경,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의 서문 등을 수록한다. 인쇄물 디자인은 ‘도큐먼츠’가 맡았다.
윤향로의 ‘자화상’ 같은 전시 – 역사를 참조하고, 현재를 투영하는 화면
이번 전시는 윤향로의 자화상과 같은 전시다. 작가로서, 개인으로서 겪은 삶의 사건들을 작업의 촉매로 활용한 결과물이다. 화면은 과거를 참조하고, 현재를 기록한다. 윤향로에게 “회화는 세계에 대한 스크린샷”이다. 대중문화, 미술사, 패션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끌어온 요소를 작업의 재료로 쓴다.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로서의 기성 이미지를 참조하고, 재해석하고, 변주하여 자신의 것으로 탈바꿈하는 일이다. 전시에 선보이는 연작에서는 이전 세대 한 추상표현주의 작가 의 활동을 정리한 책 내용을 활용한다. 해당 작가가 고전 회화를 참조해 작업한 사례를 발췌했다. 타인이 참조한 미술사적 요소를 다시 한번 참조하는 행위다. 발췌한 페이지들에 회화와 연관된 단어 가 다수 눈에 띈다(도판 1).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 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 윤향로의 삶을 소재로 한 회화와 드로잉의 층이 그 위에 쌓인다.
서로 관계 맺으며, 저마다의 깊이를 드러내는 ‘캔버스들’
윤향로는 회화의 층위와 평면성에 관심 갖고 작업해 왔다. 새롭게 제작한 연작에서는 화면 안팎의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려는 관점의 확장이 돋보인다. 고민의 범주가 삼차원 공간으로 나아간다. 윤향로는 작품 제작에 앞서 학고재 본관의 모든 내벽을 감싸는 ‘디지털 매핑 이미지(도판 2)’를 만들었다. 전시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가상의 캔버스다. 이 가상 공간의 벽면으로부터 작은 조각 이미지들을 오려 냈다. 캔버스 규격 및 표준 화면비를 기준으로 17종의 판형, 100여 개의 조각을 추출하여 실제 캔버스 천에 출력하고, 전시 공간의 해당 자리에 설치했다. 자신이 구축한 가상 세계를 관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윤향로의 ‘캔버스들’은 하나의 커다란 맥락 안에서 서로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다. 화면은 한층 더 깊어졌다. 기법과 내용 면에서 성숙한 면모가 돋보인다. 서사의 중첩이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다층의 이미지가 투명하고 얇은 막처럼 서로를 투과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