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 개요
학고재는 2020년 10월 14일(수)부터 11월 15일(일)까지 장재민(b. 1984) 개인전 《부엉이 숲》을 연다. 작가가 학고재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다. 학고재는 국내외 청년작가를 조명하는 전시를 꾸준히 개최해 왔다. 오늘의 동향을 파악하고 내일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장재민은 동시대 미술계가 주목하는 청년 회화 작가다. 첫 개인전을 연 2014년 제36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로 선정되었고, 이듬해인 2015년 제4회 종근당 예술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제15회 금호 영아티스트와 포스코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에 연이어 선정되기도 했다.
장재민은 힘차고 점성 높은 붓질로 그린 반추상적 풍경화를 선보인다. 주로 저개발 지역의 풍경을 소재 삼는다. 낯선 환경에서의 경험이 작업의 동인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재민이 프랑스 브르타뉴 모르비앙과 충청남도 천안 소재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업한 회화 24점을 선보인다. 기법과 관점의 성숙이 돋보인다. 대상과 자신 사이 물리적, 심리적 거리에 대해 고찰하며 시선의 깊이를 확장해낸 면모다. 정현 미술비평가와 박미란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의 서문을 썼다.
2. 전시 주제
풍경을 겪어내는 회화 – 장재민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장재민의 작업은 낯선 장소에 대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목격한 장면과 일어난 사건, 다양한 감각적 경험이 회화의 소재가 된다. 작업실에 돌아와 장면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며 작업을 시작한다. 당시의 생각과 시선을 담은 기록을 참고하기도 한다. 붓질이 크고 빠르다. 신체의 동세를 최대로 활용하며 획을 긋는다. 붓의 무게와 물감의 점성을 극복해가며, 도구와 힘 겨루기 하듯 그린다. 그리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체험하려는 태도다. 장재민의 회화 작업은 이미 겪어낸 풍경을 재차 경험하는 일이다. 경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감정의 고조와 기억의 선명도에 따라 붓질의 세기가 달라진다. 움직임이 빠를수록 직관이 강하게 작동하고, 우연성이 주입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이 뒤섞여 끊임없이 새로운 장면을 이끌어낸다.
회화, 물성을 지닌 예술의 가치
팬데믹 시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가상 세계가 날마다 팽창해간다. 전시와 아트페어가 온라인에서 열리는 시대가 되었다. 접근성을 향상하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한 측면에서 효과적 대안이다. 주목할 것은 이 가상의 창구를 통해 작품의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소장가들은 웹상에 부유하는 복제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전히 비용을 지불하여 실제 작품을 구입한다. 미술의 실체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품은 예술가의 정신과 숨결이 조화를 이루어 창조된 산물이다. 복제 이미지와 가상 경험에 익숙해질수록 진품에 대한 소장 열망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원본의 아우라는 허상이 아니다.
회화는 사람의 몸짓을 크게 반영하는 매체다. 붓질은 마치 지문처럼 각 화가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 좋은 그림은 마음을 움직인다.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의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미술의 매체를 전환하려는 시도가 한창인 이 때, 정통 회화를 고집하는 30대 작가 장재민의 작품세계에 주목하는 이유다. 장재민의 화면은 재료의 물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점도 높은 붓질이 시각에 앞서 촉각을 자극한다. 그리는 이의 호흡과 움직임이 보일 듯 선명하게 느껴진다. 물성에 기반한 회화의 내면이 현실의 화폭 위에서 작동한다. 보는 이의 기억과 감각을 환기하며, 매번 새로운 정서적 안정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