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 개요
학고재는 2022년 2월 16일(수)부터 3월 20일(일)까지 안드레아스 에릭슨(b. 1975, 스웨덴 비외르세터) 개인전 《해안선 Shoreline》을 연다. 지난 2019년 학고재와 학고재청담에서 선보인 아시아 첫 개인전 이후 3년 만이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동해의 해안선을 주제로 한 전시를 구상했다. 전시명인 ‘해안선’은 두 세계 간 경계를 상징한다. 서로 다른 세상을 구분하는 동시에 연결 짓는 매개로서의 장소다. 지난 전시가 회화,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를 폭넓게 소개했다면, 이번 전시는 작품세계의 중심 매체인 회화를 집중 조명한다. 캔버스 14점과 종이 작업 44점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전시 도록에는 작가의 글과 사라 워커의 에세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 발췌문이 수록된다.
2. 작가 소개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1975년 스웨덴 비외르세터에서 태어났다. 1998년에 스웨덴 왕립예술원 스톡홀름 미술대학교(Royal College of Arts, Stockholm)를 졸업한 후 베를린에 건너갔다.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업에 몰두했으나, 2000년경 전자기과민성증후군을 얻어 귀향했다. 이후 스웨덴 메델플라나 인근의 시네쿨레 산속에 살며 작업하고 있다. 2011년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북유럽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주목받았다. 지난 2019년 학고재와 학고재청담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동시 개최하여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2001년 스톡홀름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보니어스 콘스트할(스톡홀름), 레이캬비크 아트 뮤지엄(레이캬비크), 루드비히 재단 현대미술관(mumok)(빈), 트론헤임 쿤스트뮤지엄(트론헤임, 노르웨이), 스케치 미술관(룬드, 스웨덴), 드 11 리넨(아우덴뷔르흐, 벨기에)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파리),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스톡홀름), 오슬로 국립미술관(오슬로), 예테보리 미술관(예테보리, 스웨덴), 리드쇠핑 콘스트할(리드쇠핑, 스웨덴) 등 다수의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7년 아트 바젤 발로아즈 예술상(바젤, 스위스), 2012년 카네기 미술상(스톡홀름), 2015년 스텐 에이 올슨 재단상(예테보리, 스웨덴)을 수상했다. 퐁피두 센터(파리), 루드비히 재단 현대미술관(mumok)(빈), 예테보리 미술관(예테보리, 스웨덴)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3. 전시 주제
안드레아스 에릭슨의 회화 – 자연의 색채와 질감으로 직조한 화면
2000년 이후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스웨덴 메델플라나 인근 시네쿨레 산속 집에 머무르며 작업해 왔다. 바네른 호수를 근처에 둔 숲 한가운데서다. 일상에 만연한 자연으로부터 발견한 요소를 작업 안에 풀어낸다. 화면은 낮과 밤의 순환,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의 색조에 크게 영향받는다. 에릭슨은 초록으로 가득한 여름보다 봄과 가을의 풍성한 색채를 선호한다. 심리적으로 고독한 겨울 또한 회화의 색조로 삼기에 좋은 계절이다.
에릭슨의 작품세계는 감각주의와 개념주의를 동시에 드러낸다. 풍부한 시각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개념적인 작품을 이끌어낸다. 회화,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식을 아우르는 한편 내용적으로 긴밀한 연관성을 띤다. 중심 매체는 회화다. 지도 위 등고선을 연상시키는 회화의 구조가 다른 작업의 밑그림을 이루는 식이다. 때로 캔버스 위에 수직 수평의 물감 획을 중첩하며 태피스트리의 씨실과 날실을 떠올린다. 자연의 색채와 질감으로 회화의 화면을 직조해 내는 일이다.
《해안선》 –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중립지대
전시 구상의 출발점은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였다. 남북으로 갈린 나라의 경계를 이루는 지대이자 자연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특별한 땅이다. 장소의 이념적 성격을 배제하고 환경적 특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에릭슨에게 비무장지대는 회화의 메타포다.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생하는 자연의 영토를 회화의 화면에 빗댄 것이다. 2020년, 팬데믹 상황을 마주하며 환경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작가의 시선은 지도 위 가로 놓인 경계선을 따라 동해안 인근으로 향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신작 회화의 작품명인 ‘해안선’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구분하는 동시에 연결 짓는 매개다. 남북의 영토, 땅과 바다, 자연과 문명이 만나는 중립지대를 상징한다.
4. 작가의 글
해안선
학고재에서 연 첫 개인전은 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풍경의 층이 겹겹이 쌓인 화면으로서의 산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시작점은 DMZ였다. 이는 예술과 회화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다. 소유권이 없으며, 스스로 자라나는 영토로서다. 얼마 후 DMZ가 내게는 너무나 정치적인 매개임을 깨달았다. 회화가 주제에 가려질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여러 검색 끝에 내 생각은 한국 해안에 가 닿았다. 특히 동해에 말이다.
나에게 있어 회화란 물질성에 관한 것이다. 전제 조건은 두 가지 물질의 만남이다. 예를 들면 물과 돌, 모래와 나무, 이끼와 하늘 등이다. 〈해안선〉 연작에서 나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그 만남의 지점에 도달한다. 전시에 선보이는 다수의 드로잉을 격리 중에 제작했다. 이들 없이는 새로운 회화 또한 시작되지 않았을 터다.
2022년 1월 18일, 안드레아스 에릭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