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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1]

2023.05.22

[뉴시스] 윤종석-박성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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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사람은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는 것이다.”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어떤 여행이든 특별한 설렘과 기대감을 선물합니다. 독창적이고 따뜻한 감성의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는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가 아시아와 유럽을 횡단하는 약 7개월간 대장정의 자동차 미술여행을 떠났다.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해 스웨덴, 독일, 체코,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루투갈 등을 거쳐 귀국할 예정이다. 특히 오는 10월경 튀르키예에 도착하면 대한적십자사가 지진 피해지역에 마련한 ‘컨테이너 빌리지’에서 아이프칠드런이 제공해준 미술용품을 활용해 어린이들과 특별한 예술나눔 미술수업도 진행한다.<편집자주>

부부화가 윤종석과 박성수. 윤종석은 '주사기 작가'로 유명하다. 주사기에 물감을 넣어 찎어 그리는 신점묘법의 대가다. 박성수 작가는 빙고와 모모라는 하얀 개와 빨간 고양이를 의인화해 일상의 희망을 전하는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5월 9일 오후 4시,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횡단을 계획한 것은 3년 전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문이 닫혀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이번 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지금 러시아 지역은 전쟁 중이지만, 우리의 도전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새롭게 꿈꿀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으로 믿는다.

직접 차를 운전해 떠나는 자동차 여행.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위한 자동차 내부 구조변경, 자동차 일시반출에 따른 온갖 서류와 까다로운 절차 등을 준비하는 것만 두 달이 넘게 소요됐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부부 미술가의 여행에 대한 갈증을 막진 못했다.

문제는 엄청난 짐이었다. 캠핑카로 구조변경된 차이지만, 규정상 반출 절차를 마칠 때까진 모든 짐을 차에 실을 수가 없단다. 무려 150kg의 짐을 6개에 나눠 직접 운반하여 위탁수화물로 실어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서도 다시 그 150kg의 짐을 들고 입국심사를 거친다니 너무나 가혹하다. 물론 자동차도 별도의 통관 절차를 밟아야 해서 일주일 정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다리게 된다.

러시아의 극동군함 *재판매 및 DB 금지

러시아는 지금 전쟁 중이고 마스터나 비자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가져간 원화를 러시아에서 직접 환전해야 한다. 환전 후 러시아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체크카드를 발급받아야 현금인출기(ATM기)에서 입출금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모든 번거로움을 마다하고 루블화를 가지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여행자가 현금을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320명을 태운 이스턴호는 동해항을 출발해 24시간 만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하루를 보낸 이코노미 2층 침대칸은 러시아인과 재러 고려인들로 둘러싸였다. 왁자지껄 러시아어, 거친 파도를 가르는 배의 진동과 소음이 여행을 실감 나게 한다. 이튿날 10일 오후 7시쯤 블라디보스토크에 접안을 했지만, 짐 많은 외국인 순서는 마지막 하선이어서 오후 9시에나 블라디보스토크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힘들기로 유명한 입국심사를 거쳐 숙소인 ‘슈퍼스타게스트’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다 돼서다. 슈퍼스타게스트는 유라시아횡단을 하는 여행자들의 성지로 며칠 동안 러시아 여행의 많은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 환전도 하고, 체크카드도 발급받고, 러시아 통신사 유심도 샀다. 이제는 차량의 무사 통관만 잘 마무리되면 진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차량통관이 되기 전 먼저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19세기 말 한인들의 이주로 형성된 신한촌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불행히도 1937년 중앙아시아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면서 신한촌은 폐허가 됐다. 1999년 3·1 독립운동 80주년을 맞아 재러·중앙아시아 고려인 선조들의 넋을 기리고자 세워진 기념비만 남았다. 그러나 열악한 아파트촌 사이에 덩그러니 선 신한촌 기념비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기념비의 글씨를 소리 내어 읽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민족의 최고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내외 지사들은 신한촌에 결집하여 국권 회복을 위해 필사의 결의를 다졌다.”

고려인학교 내에 있는 홍범도 장군 기념비 *재판매 및 DB 금지

고려인 학교 내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비 *재판매 및 DB 금지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과 독립운동의 자취를 횡단의 첫 번째 도시 우수리스크에서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정보다 하루 앞선 5월 15일 오후 4시 30분, 드디어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 할 차량을 무사히 만났다. 이른 아침 러시아 영사관에 들러 국제운전면허증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공증까지 받아왔다. 다음날 차량에 짐을 정리해 싣고 약 1시간 30분 정도 달려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 헌병대에게 학살되기 전까지 지냈던 고택과 고려인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유라시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때부터, 윤 작가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였다. 이날은 24시 KFC 주차장에서 첫 차박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우수리스크를 떠나 극동 러시아의 가장 큰 도시 하바롭스크로 향했다. 땅은 넓고 도시는 듬성듬성, 곧게 뻗은 길의 끝이 없다. 오직 평야와 늪지, 자작나무 숲만 있을 뿐이다. 간혹 만나는 트럭카페에서 점심이나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다. 러시아는 대표적인 도시를 제외한 외곽은 정말 낙후되었다는 말이 실감 난다. 하바롭스크는 역시 소문대로 멋진 도시였다. 거친 여정을 이겨낸 보람이 있다. 성모승천 사원, 극동예술박물관, 아무르 강변 등 꼭 미술가가 아니더라도 너무나 매력적인 색과 정취를 전하는 도시였다. 또 어떤 에피소드가 기다릴까.

블라디보스톡의 슈퍼스타 게스트 하우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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