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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rief삼성전자와 38년 인연 백남준 '다다익선' TV탑 부활

2022.09.28

[머니투데이] 유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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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스1) 이재명 기자 = 1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 작품이 보존·복원 사업을 완료한 후 재가동 되고 있다.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등 국가적 행사와 맞물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건축 특성에 맞게 기획·제작된 상징적 작품이다. 총 1003대의 브라운관(CRT) 모니터가 활용되어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로 1988년 9월 15일 최초로 제막됐다. 2022.9.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립현대미술관(과천)은 3년만에 백남준의 '다다익선' 재가동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연다. 백남준 관련 전시물이 가득한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도 내년 2월26일까지 진행한다. 오는 11월9일엔 대규모 기획전인 '백남준 효과'를, 11월18일엔 국제학술심포지엄 '나의 백남준'을 개최할 예정이다.

재가동 된 '다다익선'은 다음 달 3일까지는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점등된다. 이후부턴 작품 안정화를 위해 매주 목·금·토·일 주 4일, 오후 2시부터 2시간만 가동한다.

사실 '다다익선'은 삼성과의 인연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4월11일 현대미술관(과천)에선 비디어아트 작가 백남준이 참석한 가운데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삼성전자가 '다다익선'에 쓰일 TV모니터 1300대를 기증하기로 하는 약정식이었다.

'다다익선'은 세계 유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이전에 설치된 백남준 작품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86아시안게임에서 백남준의 '바이바이 키플링'이라는 작품이 전세계 위성네트웍을 통해 TV에 방영되면서 국내에도 KBS에서 방영됐지만, 설치작품이 아니라 비디어아트 영상 뿐이었다.

일반인들은 1988년 이전엔 국내에선 백남준 작품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 백남준의 드로잉이나 판화 정도가 소개됐고 비디오아트 작품은 이동 전시가 가능한 소품이 극히 일부 잠깐 전시된 정도였다. 당시 유행하던 전위예술의 선봉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백남준의 유명세를 국내에선 작품이 아니라 외신 뉴스로만 접할 뿐이었다.

과천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 '다다익선' 복원사업 관련 1988년 당시 보도자료 복사본. 삼성전자의 모니터 기증 약정식 관련 내용/사진= 유동주

1988년 9월 첫 설치 당시 '다다익선' 모습/사진=국립현대미술관 자료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에 기념비적인 설치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백남준은 1986년 10월 개관한지 2개월째인 과천 현대미술관을 방문해 '다다익선'이라는 작품 설치계획을 밝혔다. 과천 현대미술관의 중앙에 있는 램프코어라고 불리는 원추형 넓은 공간에 백남준의 작품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미술관은 정부에 예산 3억원을 요청했다. 정부 예산은 2억2362만원으로 확정됐고, 약 3억원 규모의 TV모니터는 삼성전자가 제공하기로 했다.


'소니' 쓰던 백남준 '삼성' TV 120대 첫 후원..'TV 깔때기' 제작해 독일 기증
삼성전자는 1984년 9월 예정된 독일(당시 서독) 뒤셀도르프 전시회를 준비하던 백남준에게 TV를 작품 재료로 처음 기증했다. 작품 제작에 필요한 TV 120대와 제작비용 3만 달러를 제공한 게 첫 인연이다. 99대의 삼성 모니터로 만들어진 'TV 깔때기'라는 이 작품은 뒤셀도르프 박물관에 영구기증됐다. 형태가 가운데가 비어있는 '원추형'으로 '다다익선'과 비슷하다.

백남준은 처음으로 한국산 TV를 작품에 쓰게 된 소감을 독일 언론이 묻자 "한국 사람들이 감정이 섬세해서 TV 색깔도 예쁜 모양"이라며 특유의 너스레 섞인 농담과 함께 삼성 TV 품질에 만족한다는 취지로 답하기도 했다.

1984년 삼성전자가 후원해 준 TV모니터로 처음제작했던 'TV 깔때기'. 서독 뒤셀도르트 박람회 '현대독일미술전람회'에 출품됐던 모습. 원추형으로 만들어져 백남준이 어릴 적 갖고 놀던 '팽이'를 뒤집은 형태로 만들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

이 'TV 깔때기'는 나중에 'TV 샹들리에' 연작으로 조금씩 변형돼 제작됐다. 1995년 완공된 서울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센터에 공공미술품으로 설치돼 1층 로비 천장에 현재도 매달려 있는 '철이 철철-TV 깔때기'와 유사한 형태다.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로비에 설치된 백남준의 'TV 깔때기(오른쪽 상단)'와 그의 부인 구보다 시케오의 'TV 나무(왼쪽 하단)' /사진=포스코갤러리

1984년 이전 백남준의 작품은 대부분 일본 '소니' TV로 만들어졌다. 당시 소니 제품이 기술력에서 가장 앞선 수준이기도 했지만, 소니 측도 백남준의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홍보에 이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의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했다.

백남준. 사진출처=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행한 '백남준 다다익선 이야기'에 수록

취재진 및 환영 인파 속에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1984년 6월22일의 35년만의 '귀국행'도 사실은 삼성전자와의 후원계약을 위해서였다. 엿새 후인 6월28일 백남준은 삼성과 첫 후원 계약을 맺었다.


'35년만의 귀국' 백남준, 삼성과의 후원계약 '출장'

1984년 1월1일 '굿모닝 미스터오웰'이 미국과 유럽에서 위성TV로 동시 방영되면서 유명세를 탔던 백남준이 "한국산 TV도 기회가 되면 작품에 써 보고 싶다"고 인터뷰한 내용을 유심히 본 삼성에서 기증의사를 밝혔다.

한동안 소니 제품과 혼용하던 백남준은 이후 삼성전자 제품만을 쓰며 90년대엔 삼성전자 TV 광고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소니 제품만을 쓰던 그에게 삼성 측의 적극적인 구애도 있었지만, 기술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 백남준 입장에선 삼성전자 제품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소니 역시 무상으로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1992년 8월 백남준의 환갑 기념으로 국내에서 대규모로 열렸던 회고전 당시엔, 대부분 소니 제품으로 만들어졌던 과거 작품들을 본 관람객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국내 업체들은 한국 작가의 작품에 국산TV도 제공하지 못했느냐"는 지적이다. 삼성은 "백남준을 후원하기 시작한 지 이미 8년이 지났고 수천대의 삼성TV가 이미 작품으로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 설치돼 있고 계속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해야 했다. 삼성 후원 이전 작품은 소니제품이 대부분이라 벌어진 해프닝이다.

지난 9월15일 '다다익선'의 재가동 점등식은 34년전 1988년 9월15일 제막식을 기념해 날짜를 맞춘 것이다. '다다익선' 모니터 기증 약정식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었던 유준상씨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경쟁하던 국내 유력 전자업체도 '다다익선'에 TV를 기증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백남준은 '다다익선'에 삼성 제품을 계속 쓰기로 했고, 이후로도 줄곧 삼성 TV로 작품을 제작했다.

계단에 앉아 있는 백남준, 1963, 만프레드 몬트베/사진=백남준아트센터 캡처

삼성은 1003대의 CRT(브라운관) 모니터가 쓰인 '다다익선'의 보수작업에도 30여년간 계속 참여했다. 2003년의 모니터 전면 교체 등을 포함해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고장난 모니터와 부품을 수급해 보수해왔다. 2018년 2월 가동이 중단된 것도 삼성 기술진의 점검시 화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3년여 걸린 이번 보존복원 사업도 삼성이 제품과 기술진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과천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 '다다익선' 복원사업 관련 아카이브 기획 전시물/사진= 유동주

중고 모니터와 부품을 수급해 손상된 부분을 교체 및 수리하고, CRT 모니터로는 더 이상 사용이 어려운 상단부엔 LCD(액정표시장치) 모니터를 넣고 외형은 볼록한 CRT 형태를 유지시키는 식의 복원작업에 삼성의 기술진이 투입됐다. 물론 여기엔 과거에 백남준과 작품을 함께 해왔던 중소전자업체 기술진 등도 큰 도움을 줬다.

과천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 '다다익선' 복원사업 관련 아카이브 기획 전시물/사진= 유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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