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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29살 청년의 부채 의식과 책임감, '가나'란 신뢰가 되다

2023.02.23

[뉴스1] 김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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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 창립자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 간담회…"예술인마을 만들기 집중"
서울옥션 매각설에 '소더비서 관심' 인정…"대자본 들어와서 판 키워야"

가나아트 창립자인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이 2023년 2월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1983-2023 가나화랑-가나아트'전에서 가나아트의 연대기를 살펴보고 있다. 2023.2.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어느 분야든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곳이 있다. 이 '신뢰'는 실력과 적절한 운, 두 요소가 버무려져 성공으로 꽃피우고 그 '역사'를 차분하게 쌓아야만 얻을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화랑계에도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곳이 있다.

1983년 미술과는 거리가 먼,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29살 청년은 서울 인사동에 화랑을 열며 미술계에 뛰어들었다. 화랑의 이름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의 '가나'. 그로부터 정확히 40년이 흐른 2023년, 가나화랑은 국내 최대의 미술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을 거느리고, 재단을 설립해 미술가를 후원하는 '가나아트'로 발돋움했다.

29살 청년이 '가나아트'를 만들어내기까지 40년의 세월은 한국 화랑의 역사가 됐다. 갤러리 전속작가 제도를 도입하고 IMF로 어려운 시기 미술가들의 생활을 돕기위해 아트숍을 차리고, 서울옥션을 론칭한 일 등은 모두 국내 최초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가나아트' 창립자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이 지난 21일 40년 만에 '기자들'과 마주 앉았다. 갤러리를 창립하고 지금껏 두세 차례 정도만 인터뷰할 만큼 언론 앞에 나서길 꺼려한 그가 '기자단'과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2시부터 1시간여 진행된 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40년의 세월을 압축해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는 가나아트를 키워낸 원동력으로 미술계에 가진 '부채 의식'과 직원과 작가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두 가지를 꼽았다.

이 회장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화랑을 운영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미안했다"며 "제 나름대로 미술계에 마음의 빚이 있어서 돈이 생기면 훌륭한 작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가나아트 창립자인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이 2023년 2월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1983-2023 가나화랑-가나아트'전에서 가나아트의 연대기를 살펴보고 있다. 2023.2.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화랑 개관 1년만인 1984년 이 회장은 국내 화랑으로는 처음으로 전속작가 제도를 도입하고, 그 첫 작가로 소산 박대성과 관계를 맺었다. 화랑계에 젊은 대표가 없어 '대표' 직함을 달지 않고 스스로 '상무'라고 호칭했던 시절의 일이다.

박 작가는 올해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인전을 비롯해 순회전이 예정돼 있고, 미국 학자들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논문집을 발표하는 등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안목이 틀리지 않은 셈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재단과 컬렉터는 '가나아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본보기였다. 프랑스 생폴 드 방스에 자리한 매그 파운데이션(Maeght foundation)과 아트바젤의 창시자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 1921~2919)가 대표적이다.

특히 매그 파운데이션은 전속작가 제도 도입뿐 아니라 현재 이 회장이 주력하는 평창동 예술인마을 조성에도 영감을 줄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1998년 터진 IMF 사태는 승승장구하던 가나에도 커다란 위협이었다. 작품값이 구입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미술시장이 크게 위축됐고, 화랑 운영은 물론 작가들도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트숍과 서울옥션(구 서울경매)이다. 이 회장은 "1998년 IMF는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고객들이 그림을 팔아달라고 하는데 구입가보다 작품값이 떨어지다 보니 화랑은 고객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피해서 도망을 다닐 정도였다"며 "제가 일을 중단하면 수십명인 직원뿐만 아니라 작가선생들도 먹고 사는게 어렵게 된다, 그래서 아트숍을 만들었고 판화를 찍기 위해 공방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판권료를 통해 수입을 얻었다, 사업마인드를 갖고 시작한 게 아니라 어떻게라도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가나아트 창립자인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이 2023년 2월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1983-2023 가나화랑-가나아트'전에서 가나아트의 연대기를 살펴보고 있다. 2023.2.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서울옥션은 작품을 사고파는 것이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투명한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이 회장은 "옛날에 얼마에 팔았든 경매에 올리면 되니까 고객에게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2008년에 기업공개를 했는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사업의 단계에서 이 미술이란 아이템 자체가 산업화되는 하나의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서울옥션의 족적은 그 과정 중 하나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옥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매각설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서울옥션은 2019년까지 20년 가까이 작품을 팔았는데 그 기간 작품을 한 점이라도 산 사람이 6000여명"이라면서도 "그런데 2020년과 2021년 각 해에 구매자가 1만명씩 나타났다, 시장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999년도 서울옥션 매출이 10억원이었는데, 지금은 많을 때는 2100억원까지 올라갔다"며 "그러나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1년 매출 약 10조원에 비하면 부족하다. 서울옥션이 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지만 이 시장을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힘이 조금은 부족하다. 그래서 대자본이 들어와서 판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소더비와 접촉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속도는 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소더비가 관심을 보인 건 맞지만 우리도 미국도 미술시장이 주춤한 상황"이라며 "그래서 성급하지 않게 잘해서 서로 윈윈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이 발언이 공개되자 서울옥션의 주가는 22일 장초반 강세를 보였다.

지난 40년간 이 회장을 거쳐 간 전속작가만 200여명에 이른다. 현재는 약 40명의 작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회장은 박대성과 함께 임옥상을 기억에 남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가나아트 창립 40주년 기념전 포스터. (가나아트 제공)

그는 "유홍준 소개로 1986년 소개받아 작품을 구입했다, 임옥상이 파리에 있을 때라 얼굴도 못 봤는데 작품이 좋아 그냥 사겠다고 해서 구입했다"며 "임옥상이 이슈가 되면서 시끄러운데 이번 국립현대 전시를 보면서 분위기가 안정된 거 같다,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를 떠나서 저 작가는 '큰 작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작가'라고들 생각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라크마에 걸린 박대성 작가의 그림은 3000호짜리인데,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가가 제 옆에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민중미술작가들이 주목받지 못하자 1988년 미술전문지 '가나아트'를 창간하고, 갤러리가 커지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어 100호를 발간하고 폐간한 바 있다.

현재 가나아트는 장남 이정용씨가, 서울옥션은 친동생 이옥경씨가 운영하고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이런 그가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일이 있다. 이 회장은 "평창동은 생폴의 모습과 흡사하다, 화랑과 옥션은 내가 관여 안 하지만 매그화랑 같은 전시장도 짓고 아티스들이 모여 사는 평창동 예술마을 만들기는 제가 직접 나서서 하고 있다"며 "서울에 관광객 3000만명이 오려면 문화적 요소가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외국에서 K아트를 배우려는 사람이 와서 머물 시설이 꼭 필요한데 종로구와 함께 평창동에 레지던시를 마련해 오는 9월 문화축제 전에 작가들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작가 아틀리에(가나 장흥아틀리에)를 처음 만들고 지자체와 합심해 제주 이중섭미술관과 대전 이응노미술관, 양주 장욱진미술관 등 건립에 힘을 보탠 이도 이 회장이다.

한편, 가나아트는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3월19일까지 '1983-2023 가나화랑-가나아트'전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진행한다.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이중섭 등 이 회장의 컬렉션 60여점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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