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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BMA 뷔르츠버거·H.레비 조각정원[이한빛의 미술관 정원]

2024.06.01

[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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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컬렉션만 1000점
존스홉킨스대학 옆 미술관

[사진=이한빛]볼티모어미술관 입구. 현재는 존 러셀 포프의 본관 옆 확장된 건물을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2024.05.31. *재판매 및 DB 금지

시작은 작품 한 점이었다. 많은 미술관이 그렇듯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9만7000여점을 품고 있다. 앙리 마티스 작품만 1000점이 넘는다. (공공미술관 마티스 컬렉션 중에선 최대규모다.) 뉴욕과 워싱턴 D.C.에 포진한 대형미술관들 사이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발하는 곳, 바로 볼티모어미술관(BMA·Baltimore Museum of Art)이다.

존스홉킨스대학 옆 미술관 BMA
볼티모어 시민들의 보물로 꼽히는 BMA가 생긴 것은 1914년이지만 미술관 건물이 지어진 것은 1929년이다. 1917년 명문 의대로 유명한 존스홉킨스대학이 캠퍼스 일부를 기증해 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건축을 맡은 사람은 바로 존 러셀 포프(John Russel Pope, 1874-1937). 수도인 워싱턴 D.C.에 자리한 내셔널 갤러리 서관을 지은 바로 그 건축가다. (당시에도 이름을 날리던) 포프의 설계로 완공된 건물은 포프 특유의 신고전주의 양식을 담고 있다. 잘생긴 그리스 신전 양식의 파사드가 전면부에 나서고, 그를 향해 올라가는 계단이 인상적인 대리석 건물이다.

지금은 메인 건물 외에도 두 개의 조각 정원까지 있다. 총 3에이커(약3600여평) 규모로, 존스홉킨스대학 숲과 잘 어우러져 꼭 미술관을 찾는 관객만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미술관에는 이 두 개 조각 정원을 여유롭게 조망할 수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거트루드 체사피크 키친(Gertrude’s Chesapeake Kitchen)인데, 20세기 초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파리의 동향을 미국에 소개했고, 작가, 철학가, 컬렉터, 딜러로 활동했던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이름을 땄다. 인근 만(灣)인 체사피크 스타일의 해산물 요리, 미국 남부식 프라이드 치킨, 고추 버터 소스를 곁들인 볼락구이 등 음식도 수준급이라, 원하는 날짜에 식사하려면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한다. 특히 일요일의 재즈 브런치는 특히 인기가 좋다.

[사진=이한빛]콘 컬렉션 하이라이트인 앙리 마티스의 파랑 누드.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이한빛]콘 컬렉션 하이라이트인 앙리 마티스의 마티스의 누워있는 큰 누드.일명 핑크누드로 불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이한빛]BMA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만 1000점 넘게 보유하고 있다. 콘 자매는 이중 약 500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운 마티스 작품들. *재판매 및 DB 금지

두 자매와 한 명의 여자
시립미술관이라고 하나 BMA가 처음부터 대규모 컬렉션을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 미술관의 명성이 쌓이게 된 데에는 볼티모어 출신의 컬렉터들의 힘이 컸다. 그 중 앙리 마티스 컬렉션의 골자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콘 자매(Cone sisters)다. 클라리벨 콘(Claribel Cone, 1864-1929)과 에타 콘(EttaCone,1870-1949)의 기부 덕에 BMA는 현대미술의 골자를 갖추게 됐다.
콘 자매의 부모는 테니시주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했고, 이후 볼티모어로 거처를 옮겼다.

13명의 자녀 중 다섯째와 아홉째 딸이었던 클라리벨과 에타는 볼티모어에서 성장했다. 클라리벨은 존스홉킨스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에서 병리학연구자로 성장했고 에타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집안 살림을 서포트 했다. 다른 형제들은 방직공장을 운영하며, 큰 부를 이뤘다. 두 자매는 평생 싱글로 살며 서로에게 의지했고, 둘 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다.

[사진=이한빛] 거트루드 스타인과 교류했던 콘 자매. 1903년 스페인에서 만났던 기념사진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 자매가 현대미술에 눈 뜨게 된 데에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역할이 컸다. 1900년부터 약 2년간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 다녔던 거트루드는 콘 자매와 만나게 됐다. 1903년 스타인이 파리로 건너가기 전까지 짧은 기간동안 함께 교류하며, 예술적 취향에 대해 서로 영향을 받았다. 이후 거트루드는 콘자매의 아트 어드바이저가 된다. 1903년 자매는 휴가차 유럽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파리에 자리잡은 거트루드를 방문, 파블로 피카소를 소개받았다. 이듬해에는 피카소를 통해 앙리 마티스도 만났다.

콘자매의 마티스에 대한 열정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작품을 보자마자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컬렉션했음은 물론이다. 작가한테 직접 사들이기도 했고, 거트루드를 통하기도 했다.

마티스의 파랑 누드(Blue Nude),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the Bibemus Quarry)가 클라리벨의 컬렉션에 더해졌다. 동생인 에타는 1935년 마티스의 누워있는 큰 누드(Large Reclining Nude/Pink Nude)를 사들였다. 콘 자매는 실제로도 마티스와 가까웠다. (마티스 작품 중 자매의 초상화 스케치도 있을 정도다) 마티스는 콘 자매를 ‘내 볼티모어 아가씨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진=이한빛]조카인 에드워드 콘의 증언대로 빽빽하게 그림이 걸려있었던 아파트를 복원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집안의 막강한 부와, 본인 직업에서 오는 수입으로 콘 자매가 컬렉션 규모는 기하 급수적으로 커졌다.

수천점에 달하는 작품이 보관됐던 곳은 볼티모어 유타가(Eutaw Street)의 말버로 아파트였다. 조카인 에드워드 콘(Edward Cone)은 “벽은 물론 화장실까지 빽빽하게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정말로 원하는 것들만 구매했고, 컬렉션을 한 뒤에는 무척 아꼈다”고 설명한다. 언니인 클라리벨이 1929년 세상을 떠난 뒤, 에타는 언니의 컬렉션을 쭉 관리하다 사후 언니의 유지에 따라 BMA에 대부분 작품을 기증했다.

규모는 약 3000여점. 마티스 500점을 비롯 자매가 50여년간 모은 유럽회화, 미국 작가 작품, 보석, 가구, 아프리카와 일본 판화, 이집트 조각품까지 그 범위도 방대하다. 콘 자매 컬렉션의 가치는 2002년 기준 10억달러(1조3600억원)에 달한다. 지금 BMA는 콘 자매의 기부를 기리며 이들 컬렉션만 전용으로 전시하는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슈퍼 컬렉터의 기부 이후 BMA는 꾸준히 그 컬렉션의 수준을 높여왔다. 콘 컬렉션 만큼은 아니지만 메이 자매(세이디 메이, 블랑슈 메이)도 기부와 함께 미술관 운영에도 참여했다. 미술관 옆에 자리한 두 개 정원도 기부자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진=이한빛] 앨런∙자넷 뷔르츠버거 조각 정원의 중앙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노구치 이사무의 조각 ‘무제’(1958)이 놓였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이한빛]'비밀의 정원’처럼 콘크리트 벽 사이 육중한 철문을 통과해야 뷔르츠버거 조각공원에 들어설 수 있다. 크고 작은 조각들이 나란히 놓인 가운데, 관객들은 거트루드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야외 정원과 조각을 감상할 수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1980년과 88년, 나란히 완성한 두 개의 조각 정원
BMA 조각정원은 앨런∙자넷 뷔르츠버거 조각 정원(Alan and Janet Wurtzburger Sculpture Garden)과 리다∙로버트 H. 레비 조각 정원(Ryda and Robert H. Levi Sculpture Garden)으로 나뉜다. 각각 1980년과 1988년에 대중에 공개됐다. 나중에 오픈한 H. 레비 조각정원이 뷔르츠버거의 두 배 사이즈다.

미술관 레스토랑과 주차장 사이 자리한 뷔르츠버거 조각 정원에 들어가려면 콘크리트벽에 달린 육중한 철문을 통해야한다. 건축가 조지 E. 패튼(George E. Patton, 1920-1991)이 디자인한 이곳은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구조라 ‘비밀의 정원’이 떠오른다. 문을 따라 들어오면, 초록의 풍경이 펼쳐진다.

정원 가운데에는 징검다리와 분수가 있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안에 미니멀리즘 일본 작가인 노구치 이사무의 조각 ‘무제’(1958)가 자리잡았다. 노구치의 작업을 필두로 이곳엔 알렉산더 칼더, 오귀스트 로댕, 헨리 무어 등 초기 모더니스트 작가 19명의 작품 34점이 놓였다.

[사진=이한빛]왕게치 무투, Water Woman, 2017. Cast 2018. *재판매 및 DB 금지

가장 최근에 정원에 합류한 작품은 왕게치 무투의 ‘워터 우먼(Water Woman, 2017)’은 흑인 여성을 모델로 한 인어조각인데, 보자마자 지난해 개봉전부터 논란에 시달렸던 디즈니의 실사영화 ‘인어공주’가 떠올랐다. 영화속 할리 베일리와는 또 다른 매력의 ‘흑인’ 인어공주다.

구상부터 추상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의 모더니즘 역사를 압축한 이 정원의 작품은 원래 뷔르츠버거 부부의 저택 정원에 설치되어 있었다. 뷔르츠버거 부부의 현대조각컬렉션에는 사실 BMA 관장이었던 아델린 브리스킨(Adelyn Breeskin)과 큐레이터 거트루드 로젠탈(Gertrude Rosenthal)의 협력이 있었다.

부부가 BMA에 아프리카, 고대 아메리카, 태평양 섬의 미술품을 구입해 기증 한 것을 인연으로 컬렉션에 도움을 준 것이다. 이후 이 현대조각컬렉션은 부부의 사후, 그대로 BMA로 넘어와 지금의 조각정원이 됐다.

[사진=이한빛] H.레비 조각정원으로 이어지는 길, 그 끝엔 호세 루이즈 데 리베라의 ‘건설 140’(1971)이 놓였다. *재판매 및 DB 금지

H.레비 조각정원
뷔르츠버거 정원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정원 중간쯤에 위치한 통로를 따라가면 넓은 테라스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5각형의 오목한 그릇 형태인 H.레비 정원은 뷔르츠버거 정원보다 한 층 정도 높이가 낮다. 때문에 설계를 맡은 사사키 어소시에이츠는 이 지형을 활용한 디자인을 제시했다.

정원의 가운데는 밝은 색상의 식물을, 바깥쪽은 어두운 색상의 나무를 심은 것. 경사진 정원길을 따라 단풍나무가 나란히 자리해 가을이면 더 운치가 있다. 이 정원엔 안토니 카로, 토니 스미스, 엘스워스 켈리와 같은 1970~80년대 미국 작가들의 작품 14점으로 채워졌다. 모두 레비 부부가 28년간 수집하고, 기증한 작품들이다.

[사진=이한빛]토니 스미스의 작품 뒤로 칼더의 빨간 조각, ‘100야드 대시’(1969)가 보인다. *재판매 및 DB 금지

정원에 들어가자 마자 만나는 작품은 호세 루이즈 데 리베라의 ‘건설 140’(1971)이다. 리본 체조의 끈을 연상시키는 얇은 철제 조각인데, 매 4분마다 천천히 회전한다.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로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스스로 움직이는 조각은 작가의 의도대로 공간을 차지하고, 반사하며 끊임없이 주변환경과 소통한다.

이 정원의 주인공은 알렉산더 칼더의 빨간 조각, ‘100야드 대시’(1969)다. (지금은 없어진 종목인) 100야드 마라톤처럼,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기운과 즐거움이 위트 있게 표현된 작품이다.

토니 스미스의 대형조각 뒤로 칼더의 작품이 보이고, 그 옆엔 엘스워스 캘리의 작품이 놓였다. 큰 작품들이 하나의 시선 안에서 겹치고 또 멀어지며 나름의 앙상블이 펼쳐진다. 계절마다 그 배경이 새로운 색을 입는 것은 조각정원을 즐기는 또 다른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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