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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예술계와 패션계, 스톡홀름에 매료되다

2013.12.27

[머니투데이] 안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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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스톡홀름의 인질 사건을 기억하는가. 6일 동안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이 인질범에 동화되거나 심지어 사랑에 빠진 그 사건을 심리학자들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일컫는다. 4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전 세계 패션계는 이 스톡홀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왜 우리는 북유럽의 이 작은 도시에 매료되는가.

북유럽 디자인의 보물들이 숨 쉬고 있는 갤러리 파스칼과 세계에서 가장 긴 갤러리라고 불리는 스톡홀름의 지하철, 말괄량이 삐삐와 아바의 노래들까지. 스타일을 논할 때 전 세계는 스칸디나비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실용주의를 앞세워 그들만의 패션 판타지를 설파하는 스톡홀름이 존재한다.

영화 <페르소나>(1966).

마법 같은 이곳의 에너지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추종자를 거느리며 스톡홀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신흥 패션 왕국 아크네를 비롯해 칩 먼데이와 누디 진, H&M과 코스, 앱솔루트 보드카와 헬싱보리 라놀린 에그 비누, 이케아와 허스크바나 모터사이클까지. 스톡홀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들과 요니 요한슨의 아크네는 이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페르소나란 영화 속에서 감독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영화 혹은 사조의 대변인을 뜻한다. 작가주의 감독들은 자신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특정한 배우와 오랫동안 깊이 교류하고 그 배우는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다. 장 뤽 고다르 감독과 장 폴 벨몽도,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레오 카락스 감독과 드니 라방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에 대한 사념과 성찰을 북유럽 특유의 ‘차가운 모호함’으로 정의 내린 스웨덴 출신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그 스스로 최고의 영화라고 손꼽는 영화 < 페르소나(Persona) >(1966)를 두고 < 더 뉴요커 >는 “가장 숭배된 이미지의 우상, 황홀하게 아름다운 예술의 표본”, < 타임 아웃 런던 >은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 20세기 예술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영화 < 페르소나 >가 당대 문화 예술계에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내러티브를 다루는 그 ‘새로운 방식’ 때문으로, 그는 자신의 영화가 한 편의 시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즉,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읽히기를 원했고, 그 의도는 영화 속에서 어떤 설명도 없이 나열하는 방식으로 표현됐다.

그의 다른 영화 < 화니와 알렉산더(Fanny and Alexander) >(1982)에서는 이전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디킨스식의 드라마와 동화 같은 신비로움을 마구 뒤섞어놓았고,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눈부시도록 환한 조명은 모든 장면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됐다. 이 같은 잉마르 베리만의 미학은 패션의 미학과도 일맥상통한다. 패션이 우리에게 판타지를 선사하는 것처럼. 또한 1953년 작 < 모니카의 여름(Summer With Monika) >에서 봄에 만나서 여름에 사랑하고 가을에 이별하고 겨울에 어른이 된 모니카의 이야기는 마치 패션의 사계절을 표현하는 방식과 꼭 닮아 있다.

2014년 봄/여름 아크네 클러치

패션 브랜드 아크네는 잉마르 베리만이 추구했던 컬트적 요소를 추종한다. 첫사랑의 열병과 함께 찾아오는 사춘기 여드름 같은 브랜드 아크네는 스톡홀름에서 시작해 전 세계 패션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상, 즉 어떤 문화적인 사조인 ‘아크네이즘(Acne-ism)’으로 성장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던 네 명의 젊은이가 1996년 탄생시킨, 이제 고작 걸음마를 뗀 이 패션 브랜드는 스톡홀름 젊은이들만의 ‘쿨’함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들이 패션계를 매료시키더니 출판과 라이프스타일 전반까지 뒤흔들고 있다. 아크네는 기존의 패션 브랜드가 갖지 못한, 불완전하기에 오히려 완벽한, 어떤 ‘쿨’한 정신을 대변한다. 그들은 ‘스웨덴스러운’ 것을 고집하지도 않고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를 향한 광적인 공략도 하지 않는다.

2014년 봄/여름 아크네 맨즈 컬렉션

자신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 매진하고 패션 자체보다는 스타일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디자인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난스럽지 않고, 끊이지 않는 패션계 사건 사고 속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의 ‘쿨’한 정신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스타일은 물론 애티튜드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스키니 진 브랜드라는 벽을 뛰어넘어 패션계를 장악했으며, 자신들만의 이상을 페이퍼를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극히 스웨덴스러운 생각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패션은 캘리포니아의 힙합 패션이나 파리의 록적인 스타일에 익숙해 있던 우리들에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패션은 하이엔드의 완벽한 정수를 보여준다거나 손댈 수 없이 정밀한 테일러링을 보여주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일련의 행위들은 날이 서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옷에 대한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크네를 위해 강아지 사진가 윌리엄 웨그만이 찍은 사진.

아크네가 패션에 접근하는 이런 방식은 ‘말하는 것’이 아닌,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마치 잉마르 베리만이 추구했던 영상 미학처럼. 그 보여줌은 직접 화법이 아닌, 기타의 줄을 튕기며 허밍하는 것과 같은 모호함이며 명백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어와 단어의 연속일 수도 있고, 남자와 여자의 모호한 경계일 수도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처럼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이미지가 중요하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살아 있는 감각이면 돼”라는 식인 것이다.

1990년대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헬무트 랭이나 아방가르드한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마틴 마르지엘라를 기억하는가. 그들의 방식 또한 규정지을 수 없는 모호함으로 더 명확한 스타일이 됐고, 전 세계 패션계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우리를 열광케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신드롬을 스톡홀름에서 발견한다.


글 안영환 기자(로피시엘 옴므 코리아)
사진 COURTESY OF AC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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