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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루브르 상징 '유리 피라미드' 건축가 이오밍페이 별세

2019.05.17

[뉴스1]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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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102세…中 출신 모더니즘 건축가
상업용 건물부터 미술관까지 전 세계에 다양한 작품 남겨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앞을 걷고 있는 이오 밍 페이(좌). © AFP=뉴스1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과도 같은 유리 피라미드(La Pyradmide inversee) 설계자인 중국 출신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貝聿銘)가 16일(현지시간) 한 세기도 넘겼던 삶을 마쳤다. 향년 102세.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사망했다고 아들인 청 페이가 발표했다.

1917년 중국 광저우(廣州)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오 밍 페이는 어린 시절을 홍콩과 상하이에서 보냈으며 상하이를 '동양의 파리'라 부르며 국제적인 감각을 익혔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가였고 이후 중국은행 은행장, 인민은행 총재 등을 역임했다.

그는 여름에 가족들과 방문하곤 했던 쑤저우(蘇州)에서 조상들이 모셔진 사원, 많은 정원들을 보며 상당한 감동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자림(狮子林·Lion Grove Garden)의 특이한 암석의 형태, 돌다리, 폭포 등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고 이후 이를 자신의 건축물에 구현했다.

이어 미국으로 이주, 처음엔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매사추세츠주공과대학(MIT)로 옮겼다. 그러나 두 학교 모두 19~20세기 건축 양식의 하나인 보자르(Beaux-Arts) 양식에만 천착하는 것을 맘에 내켜하지 않았고 혼자서 르 꼬르뷔지에 등 신진 건축가들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버드대 건축대학원(GSD)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후엔 부동산 개발업자 윌리엄 제켄도르프의 회사 웹앤드내프(Webb and Knapp)에 근무하면서 설계를 담당했고 1955년 지인들과 함께 I.M. 페이 어소시에이츠(I. M. Pei & Associates)를 설립하게 된다. 제켄도르프 빌딩의 와플 같은 콘크리트 표면은 그의 초기 작품의 특징이다. 이후 점점 더 모더니즘적 성향을 보인다.

상업용 고층 건물에서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성격이 다른 많은 건물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설계한 건물들이 콜로라도주 볼더 소재 국립대기연구센터(NCAR), 시라큐스의 에버슨미술관, 데스모인 미술관 등이다. 보스턴에 있는 케네디 도서관과 댈러스 시청, 국립미술관(The National Gallery of Art) 이스트 건물 등도 그의 작품이며 홍콩에 있는 초고층 건물인 중국은행(BoC) 건물, 일본의 미호 박물관, 쑤저우 박물관도 설계했다.

이오 밍 페이는 어릴 적 방문한 쑤저우의 정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은 페이가 설계한 쑤저우 박물관. © AFP=뉴스1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와 철재로 된 피라미드를 내놓았을 때 기존 루브르의 구조와 많이 동떨어진 느낌을 주며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처음에 고사했다가 다시 맡아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 최고의 상징이 되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아는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루브르"라고 말히며 소신을 보였다고 한다.

시카고 존 핸콕 타워의 경우 건축 과정에서 폭풍이 불며 유리창이 떨어지는 등의 사태로 많은 우려를 낳았고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후 페이는 해외 설계에 더 많이 나섰다.

2008년엔 카타르 도하에 있는 이슬람 미술관(Museum of Islamic Art) 설계를 맡았다. 이슬람 문화가 낯설었기에 마호메트 전기를 읽으며 연구에 몰두해 완성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평소 '사상의 건축'을 주장해 왔다.

1979년 미국건축가협회(AIA)에서 금메달을, 1983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s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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