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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 왜 항아리 그렸나

2013.03.30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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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in Question(마음이 몸을 주재한다), 2009, welded steel, 142.2(h)x50.8x50.8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우리 민족의 진정한 얼(예술)은 결국 항아리에서 멎었다. 고려청자, 조선백자는 그야말로 하늘에 순응하는 민족이 아니고는 낳을 수 없는 지예(至藝)다. 내가 항아리를 즐겨 그리는 것도 단순한 취미나 기호가 아니라 그러한 조상들의 피의 유전인지도 모르겠다."

수화 김환기(1913~1974)는 왜 항아리를 그리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항아리가 우리 민족의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기에 조선인으로서 항아리를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한국 추상·반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수많은 명화를 남긴 김환기.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도 그가 왜 항아리를 그렸는지, 그의 예술 원천은 어디에 있는지 깊숙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에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예술정신을 온전하게 복원한 '정본' 김환기 전기가 나왔다. 책의 제목은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대로 차용했고, 표지는 그가 즐겨 썼던 파란색으로 했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이미지를 연출했다.

책에는 부분적으로만 알려졌던 김환기의 삶은 물론이고, 그의 예술세계를 꼼꼼한 자료조사와 그와 알고지낸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상히 밝혔다. 그의 삶과 예술은 크게 4기로 나눠진다. 제1기 일본유학 시절(1927~1937)은 화가 입문기다. 제2기 안좌도·서울 시절(1937~1956)은 파란만장 격동기, 제3기 파리시절(1956~1959)은 도전과 좌절의 시기. 제4기 서울·뉴욕 시절(1959~1974)은 절정과 아쉬움으로 미술의 새로운 메카 뉴욕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할 때 곧 생을 마감하게 된다.

김환기가 뉴욕에 간 것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과 조선의 특색으로 세계 화단과 한 판 승부를 보려고 간 것이다.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은 김환기에게 "불란서 물만 마시고 와도 모두 그림들이 홱 바뀌는데 수화 그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이에 김환기는 "실은 불라서에서 개인전을 열기 전까지는 그곳 작가들 그림에 물들까봐서 전람회 구경도 안 다니고 나를 지키노라 매우 애를 썼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는 '평범한 것의 위대함'을 조선의 백자 항아리에서 찾았고, 그것을 자신의 작업에 접목했다.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따른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를 소중하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한국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를 가깝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충렬 지음. 유리창 펴냄. 328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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