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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박계배 예술인복지재단 대표 "제 몸값 당당히 요구하라"

2015.02.11

[뉴시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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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사진=한국예술인복지재단)

박계배(58) 새 상임 대표이사가 선임된 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고 조직이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박 대표가 부임하기 전까지 약 1년간 이 자리는 공석이었다. 그런 여건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조직을 잘 추스르고 틀을 빨리 갖춰가고 있다는 평가다.

2012년 설립됐다.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중 가장 일이 많은 곳이다. '예술인 복지법' 시행에 따라 예술인이 안정적 기반 위에서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원로 예술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대표는 이와 함께 최근 대학로에서 뉴시스와 만나 '열정 페이'로 새삼 부각된 젊은 예술가들의 복지 문제도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순수 예술쪽에 내려오는 유전자가 있다. 예술은 배고프다는 것, 항상 예술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춥고 배고파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등 따뜻하고 배 부르면 예술이 안 나온다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

특히 박 대표는 연극계 현장경험이 풍부하다. 샘터파랑새극장 극장장,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국립극단 이사,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로도 활동했다.

그런 박 대표에 따르면 대학로의 열정 페이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게 원인이다. 1990년대 초 문화 붐이 일면서 대학로의 극장과 극단이 한꺼번에 수십개가 늘었다. 대학에서 관련학과가 파격적으로 많아진 것도 이 때다.

하지만 1997년 IMF 금융 위기를 맞으면서 공연계가 어려워졌다. 당시 죽어가는 예술인을 살려야 한다는 명목 하에 정부가 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어긋나면서 실제 보호해야 할 예술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박 대표의 판단이다. 그로 인해 배고픈 인력이 넘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경력을 쌓아야 하는 구조가 됐다. 100만원을 줘야하는데 20만원 밖에 없어서 이것밖에 못 주겠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일은 할 수밖에 없고, 자기 몸값을 스스로 깎게 됐다."

박계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사진=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구조를 바꿔야한다"는 판단이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제 값을 알아야 한다. '나는 얼마를 주지 않으면 출연을 못하겠다'고 말하고, 정정당당하게 계약서도 써야 한다. 더 이상 열정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이 몸값을 제대로 받아야 제값을 주고 만들려는 제작자도 나온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빈손으로 제작하려는 관행은 없어져야 하고 그런 제작사는 퇴출돼야 한다. 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야박해보이고, 예술하는 사람이 돈만 밝힌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력조정이 될 것이라고 봤다. "물론 초반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고급 인력들이 막연하게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낭비다. 젊은이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몸값을 요구하라고 말하고 싶다. 뻔뻔해지라는 것이다. 그게 진짜 뻔뻔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다. 예술인은 왜 춥고 배고파야 하는가. 처자식이 있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 값을 하게 된다."

박 대표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조직 개편이다. 사업팀·기획팀, 2개 팀으로 나뉜 팀제를 4개팀 1센터로 변경했다. 직업 역량팀·창작 역량팀·사회 안전망 팀·경영지원팀에 예술인들을 직접 상대하는 센터를 뒀다.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홍보팀은 대표 직속으로 뒀다.

무엇보다 수혜자를 발굴하는 일에 중점을 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수혜자들 대다수는 60대 이상 원로 예술인들이다. 그분들은 자존심으로 살아온 분들이다. 도와달라고 못 하신다. 그런 분들을 우리가 찾아봬야 한다."

앞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지난달 26일 연 '창작준비금 지원사업' 설명회에는 예상 인원보다 150여 명이 많은 650여 명이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

예술 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예술인이나 창작 기회가 적은 원로예술인의 예술 활동 및 사회적 기여 확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예술인 전체 복지사업의 수혜자는 약 3500명이었다. 올해는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을 통해서만 3500명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박계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사진=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진정한 복지는 끊임없이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들이 예술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예술인 복지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특히 예술인의 파견을 희망하는 지역과 기업 등에 예술인을 연결하는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은 마당 쓸고 동전 줍는 '알짜 사업'이다. "지역과 기업이 예술인들이 귀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되고 예술가는 활동비(월 120만원)를 지급 받아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된다. 한달 중 열흘만 시간을 내면 되니 자신의 예술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특히 열정 페이에 시달리는 젊은 예술인들에게는 좋은 기회다."

박 대표는 '예술활동증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예술인 복지법' 상의 예술인임을 확인하는 절차다. "이 증명을 받으면 국가가 예술인을 관리하게 된다. 인력풀이 돼서 국가가 예술가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예술인들이 증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좀 더 안정적인 보호망에 들어오는 거다."

국가가 예술인들의 복지를 위해 법을 기반으로 공공기관을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우리가 처음 하면 세계 최초가 되는 거다. 임기 3년을 끝낼 때 예술인복지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고 싶다. 다른 나라가 벤치마킹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예술 관련 분야는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철학을 가질 수 있고 흔들리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무실은 대학로 뒷편에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자리잡고 있다. 묵묵하게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박 대표와 재단의 모습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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