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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문제의 화투그림…대법관 앞 달달 떨며 진술, 최고의 행위예술이었지"

2020.07.19

[뉴스1]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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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의 人사이트] 代作논란 5년 재판 끝 '무죄' 선고 받은 조영남
"조수에게 시간당 만원, 지불하면 끝…그림값 많이 받든말든 뭔 상관"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이 15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0.7.15 / 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화가 났다. 분노가 일었다. 장난감 권총을 샀다. 캔버스에 접착제로 붙였다. 그 권총의 총구 방향에 자신의 벌거벗은 상체를 그려 넣었다. 총구 끝은 머리에 붙어 있다. 표정은 비장하게 그렸다. 그리고 한글로 캔버스에 썼다. “쏠 테면 쏴라.”

한강 영동대교가 환히 보이는 한강변 조영남 작업실©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5년 전이다. 자신이 그리지도 않은 화투 그림을 마치 자신이 그린 것처럼 팔았다고 가수 조영남이 사기죄로 기소됐다.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재판이 진행됐고, 최근 대법원은 조영남의 손을 들어줬다. 무죄였다. 1심에서 유죄를 받았으니, 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많은 대중들은 조영남에 대해 여전히 비호감이다. 사법부의 판단과는 다르다. 그가 지난 5년간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고 동정의 눈초리를 주는 이보다, 그가 재력으로 좋은 변호사를 사서 재판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에게 적은 돈을 받고 그림을 대신 그려준 조수에게 동정하는 분위기다.


5년 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영남은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 장난감 권총을 캔버스에 붙이곤 “쏠 테면 쏴라”고 혼자 외쳤다.

공인(公人)들은 재판에 걸리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한 내상을 입는다. 조영남은 어떨까? 대법원 판결이 나자마자 그는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혜화1117)이라는 책을 냈다. 문제가 됐던 화투그림이 현대미술이라서 그런 제목을 붙였나?

지난 15일, 한강 영동대교가 통유리를 통해 환히 보이는 그의 자택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그동안 그린 그림이 온 집안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알이 큰 검은 뿔테 안경과 후줄근한 검은색 상의, 그리고 맨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답게 거리낌이 없다.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한다. 5년간 ‘고문’을 당해보니 노련해졌다고 했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이 15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0.7.1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재판 전과정이 황홀…내가 자연스럽게 화가가 됐다"

“통유리에 비치는 풍경이 좋다. 일부러 통유리를 설치했나?”

-영동다리는 내 소유다. 밤이면 차들이 불을 켜고 나란히 달리며 나를 즐겁게 해준다. 매일 모습을 바꾼다. 내가 만든 설치미술이다. 남들이 멋있다고 한다.
(그의 집은 강남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하다. 고층 고급빌라 한 층이 모두 그의 집이다. 그래서 비호감이 많기도 하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후 심정은 어떠한가?”

-조심스럽다.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일 후회 안하고, 앞일 생각하지 않고 살려고 애쓴다. 재판을 하면서 내가 자연스럽게 화가가 됐다. 대법관들이 고맙다.

“대법원 상고심 최후진술할 때 한때 울먹이기도 했고, 대한민국 법체계가 너무나도 우아하고 완벽하다고 했다. 당시 어떤 심정으로 그런 표현을 썼나?”

-무지 떨렸다. 5년간 검찰 기소부터 대법원 최종심까지 직접 경험했다. 대법관들은 뜻밖에 미술 대작(代作)과 관련해 공청회까지 열게 했다. 1심부터 최종심까지 진행되는 과정이 내 생애 경험해 본 최고의 행위예술이었다. 황홀하기까지 했다. 대법관들께 최종심 전 과정을 행위미술로 규정하는 것을 허락받고 최후진술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만약 내가 그런 부탁을 했으면 대법관들은 다 허락했을 것이다.

“무죄가 나서 그런 기분이 든 것이 아닌가? 만약 유죄로 끝났다면?”

-아니다. 유무죄 관계없이 대법관 앞에서 달달 떨며 진술한 것은 최고의 행위예술이었다.

순간 휴대폰 전화벨이 요란히 울린다. 인터뷰가 중단됐다. 그의 휴대폰에서 난 벨소리였다. 그는 진동으로 바꾸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이틀 전까지 2G폰을 썼다가 지인이 선물해 준 최신폰이라고 했다. 그는 지독한 컴맹이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구하고 조영남에 대한 대중의 비호감은 여전하다. 이유는?”

-국민들이 느닷없이 현대미술을 접하며 당황한 탓이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가수가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고, 판매도 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그린 화투 그림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지 설명을 해도 대중들이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잘 설명을 해야 했는데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가 자신의 무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이 화투와 트럼프 카드를 오려 붙여서 만든 그림을 보여주었다.

-이 그림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이 화투를 내가 오려서 붙인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래서 조수에게 이렇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조수가 똑같이 그림을 그려왔다. 테두리를 넓히고, 글씨도 다듬고 해서 팔았다. 현대 미술은 이렇게 한다.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 조각품을 봐라. 내가 싸구려 깡통으로 만든 로봇 인형이다. 서울대 미대 조각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알바를 시켜 비슷하게 만들었다. 알바생들이 만든 쇠 인형의 작가가 누구인가? 아이디어를 내서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조영남의 작품이라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사간다. 화투 그림도 마찬가지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이 15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0.7.1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남이 그린 그림도 아이디어가 내 것이라면 내 그림

그는 문제가 된 화투그림이 자신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남이 그린 것이라도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라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이 현대미술의 상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런 대작 논란을 완전히 클리어 시켰다고 했다. 세계적인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조수가 대신 그림을 수백만원에 팔면서 수고비로 10만원을 준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열정페이의 본보기다.”

-아니다. 조수들이 받는 보수의 기준이 있다. 서울대 미대생들은 1시간에 7000원을 받는다. 나는 만원씩 주었지만. 그것만 지불하면 끝이다. 그 작품을 1000만원에 팔든, 5000만원에 팔든 작가의 몫이다. 그것이 현대 미술의 재미다.

그가 대법원 판결이 난 뒤 곧바로 책을 낸 이유가 대중들에게 이런 현대 미술을 이해시키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그는 13년 전 나름대로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한길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450페이지 두꺼운 책이다. 그는 이 책이 어려워 쉽게 설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재판을 받는 동안, 방송 출연도 없고, 공연도 없어서, 집에서 쉬운 현대미술에 대한 해설서를 썼다고 했다. 스스로 100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현대미술을 쉽게 설명했다고 했다.

화제를 바꾸었다. 그는 가수이며 화가이지만 십수 권의 책을 낸 글쟁이이기도 하다. 쉽게 구어체로 글을 풀어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쓴 책 중에 10년 전에 펴낸 시인 이상에 대한 책이 있다. 어렵기로 유명한 이상의 시(詩) 해설서다. 제목이 재미있다. <이상(李箱)은 이상(異常)이상(以上)이었다>이다.

그는 당시 이상의 시를 고민하다가 가벼운 뇌경색을 앓았다고 한다. 그때 이후로 말투가 좀 어눌해지고, 동작도 느려졌다고 했다. 이상 시를 풀어내려고 잠을 설쳤다고 했다.

-이상 시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였다. 그러나 시원찮았다. 확실히 이상을 대중에 띄우고 싶다. 그래서 9월에 새 책이 나온다. 책 이름은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다.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이상과 다른 4명이 보컬을 만들어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다.

그의 몸에 엔도르핀이 확 도는 느낌이다. 그가 신이 났다. 말이 빨라지고 톤이 높아진다. 책 표지를 직접 그린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과 함께 보컬을 꾸미는 이들이….

기타엔 화가 파블로 피카소, 피아노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바이올린엔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지휘에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다 세계적인 인물이다.

-실제 니체는 피아노를 잘 쳤다. 이들이 이상이 어릴 때 살았던 서울 통인동에 모여 철학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음악과 과학을 이야기하고 놀다가 막판에 대규모 콘서트를 연다. 피카소의 여인들이 모두 초대되고, 말러가 지휘하는 교향악단이 웅장한 연주를 한다. 그리고 이상이 쓴 최고의 연애시를 합창한다. 시를 어렵게 쓴 이상이 쉽게 쓴 유일한 시이다. 내가 단언컨대 이상은 셰익스피어 이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시인이다.

조영남은 자신이 곡을 붙인 이상의 시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시는 정말 이상의 시라고 믿기 어렵게 ‘알아 먹을 수 있는 시어’로 존재했다. 시의 제목은 <이런 시>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그는 이상이 쓴 최고의 연애시라고 표현했다. 또 한번 노래를 부른다. 처절한 느낌이 든다. 내친김에 어려운 이상의 시 한 수를 쉽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이 15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7.1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이상에 빠져…그의 '이런 시'는 최고의 연애시
 
“이 시를 읽는 순간 아! 나는 드디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를 방금 읽었구나라고 소리쳤다. 내가 그동안 부른 노래, 그림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주저한다. 그러나 이상 시 가운데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금방 꼽을 수 있다. 바로 오감도의 <시제 1호>다. 이렇게 시작된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 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러오/…/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 좋소/…/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은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조영남은 이 시를 왜 최고의 시라고 말했을까?

-현대인의 본질을,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현대인의 참모습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아니 내 개인의 본질과 심리상태가 몽땅 담겨 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불길함을 상징하는 13의 숫자와 함께.

그는 이 시를 그림으로 그렸다. 13장의 화투가 어지러이 서있다. 다시 화제를 현대미술로 돌렸다.

“왜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인가? 설명을 쉽게 할 수 있나?”

-음악은 규칙이 있다. 베토벤 교향곡은 박자와 규칙이 명확하다. 규율이 있고 그것이 엄격하게 지켜지면 된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어떤 규격과 규칙이 없다. 100% 자유이다. 내가 음대를 다니며 음악의 규칙은 배웠다. 미술은 굳이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가능하다. 현대미술의 가장 큰 덕목이 독창성이다. 화투는 푸대접 받고 홀대받았다. 심지어 일본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것이 됐다. 서민들의 가장 친근한 벗이 됐다. 내가 그것을 캔버스에 옮겼고, 이제 우리 것이 됐다. 일본 문화 정복의 의미도 있다.

조영남은 그의 책을 통해 에두아르 마네가 현대 미술의 시작이라고 했다. 마네가 그린 <풀밭위의 식사>를 ‘감히 어느 누구도 상상 못할 발칙 위대한 개념’이라고 표현했다.

-정장 입은 신사들 사이에 벌거벗은 여인이 앉아 있다. 당시 마네가 그린 이 그림은 공모전에서 딱지 맞았다. 이 그림을 보고 흉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상에 친근한 화투를 소재로 삼았다. 이제 시리즈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화투를 그리면서 사이사이 다른 소재를 찾을 예정이다.

그는 ‘재미스트’로 불린다. 일상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자유인이라는 인상을 대중에게 준다. 하지만 그를 숨막히게 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숨막히도록 감동받은 적이 있나?”

-딱 두 번있다. 한번은 이상의 시를 읽고 숨이 막혔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그리고 최근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했다. 특히 말러의 교향곡 3번 마지막 부분은 들어본 음악의 최고였다.

자신의 작업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조영남 ©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두번 이혼한 엄용수 또 결혼 준비…부럽다
 
“이혼을 두번 했다. 여성에게 숨이 막히도록 감동한 적은 없나?”

-콤플렉스가 있다. 이성과의 사랑에 불감증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여성이 아닌 다른 분야에 많은 신경을 쓰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는 이혼을 두번 한 것에 대해 자신에게는 그것이 정상적인 일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앞으로는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나?”

-개그맨 엄용수는 나처럼 두번 이혼했는데, 또 한번 결혼할 것 같다. 부럽다. 나도 가능하다면 한번 더 하고 싶다. 조카나 딸이 해주는 밥을 먹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잘 살고 싶다. 책 쓰고, 그림 그리고, 열심히 사는 이유도 그런 여성을 만나고 싶어서다.”

“평소 고독함을 느끼며 사는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조물주는 나와 일가다. 같은 조씨니까. 조물주는 인간을 창조하며 반반씩 주었다. 기쁨과 슬픔, 전쟁과 평화, 용기와 부끄러움, 그리고 외로움과 안 외로움도 반반. 외로움을 알아야 어울림의 행복을 안다. 인간의 고독은 숙명이고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혹시 그런 비호감을 보이는 이들에게 자신을 변명하거나 설명한다면?”

-기자가 만나보니 그는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말해주라.

“전혀 평범하지 않다.”

-음, 나에 대해 오해가 있는 이들을 만나 이해시키면 짜릿한 감동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안되면…그럼 조금 기다려달라고 할 것이다. 나도 죽을테니까,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달라고 해라. 방법이 없다.

“묘비명은 지어 놓았나?”

-유언장에는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묘비도 세우지 말라고 썼다. 하지만 내가 죽은 뒤 후배들이 굳이 묘비를 세운다면 이렇게 써주길 원한다. ‘나철 단군 세우다말다/이상 시 쓰다말다/조영남 노래 부르다말다.

그는 남이 자신을 화수(畵手)라고 부르길 바란다. 화가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화가와 가수를 합친 그가 만든 조어다. 번안곡 <딜라일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던 그는 결국 가수로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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