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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석원 "이번엔 고릴라...'지우기 기법' 물감값 덜 들었죠"

2018.05.14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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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1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여는 사석원 화백이 새롭게 담아온 고릴라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나아트센터에서 3년만의 개인전 '희망 낙서'
이 시대 살아가는 아버지 초상 고릴라에 담아
'두터운 물감' 작품 아닌 '밀고 덜어낸' 신작展

"고릴라에게 매료됐다. 표정과 눈빛에서는 인간에게만 있을 듯한 고민과 고뇌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사람 눈빛에서는 이미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돼 버린 태고적 순수함을 느꼈다."

당나귀, 부엉이, 호랑이, 사자를 그려온 화가 사석원(58)이 이번엔 고릴라를 그려왔다.

"격랑을 헤치며 대양을 거너는 고릴라는 대서사시 같았던 아버지의 삶을 은유하기 위한 상징물로 선택한 것"이라는 그의 고릴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초상이자 두 자녀와 아내를 둔 작가의 자화상이다.

거대한 몸집에 비해 온순한 성격을 지닌 고릴라에게서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연유다.

"몇년째 병상에서 아들도 못알아 보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보면서 연민을 많이 느낀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탓일까. '동안 화가'로 영원한 소년같은 그가 '나이듦'을 보여주는 개인전이 열린다.

18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희망 낙서'전이다. 2015년 개인전 이후 3년만에 열리는 전시로, 이전과는 사뭇 다른 기법과 풍경을 담은 신작 40여점을 선보인다.

'청춘에게 묻다'는 부주제로 청춘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찰과 함께 앞으로의 희망을 담은 작품을 걸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었던 시절, 영웅에 대한 동경과 욕망으로 들끓던 그때의 청춘에게 물어본 것. 그런 것에 대한 대답을 풀어본 작품"이다.

【서울=뉴시스】 사석원,꽃_2016_Oil on canvas_177.5x177.5cm,2016

이번 신작에도 주요 소재로 삼아왔던 호랑이, 부엉이, 소, 닭, 당나귀 등 다양한 동물들을 청춘 시절의 에너지와 열망의 표상으로 재해석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화가로서 "이 땅의 동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가 많지 않은데, 화가로서 이번 생애에는 동물을 전문적으로 그렸다는 것이 의미"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출범(出帆)', '희망낙서(希望落書)', '신세계(新世界)' 총 3개의 연작으로 구성됐다. 각 연작의 주제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새로운 기법으로, 다채로운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고릴라가 등장한 '출범' 연작은 다른 작업과 달리 정교한 동물 묘사와 콜라주를 시도하거나, 화폭을 가로지르는 대담하고 거친 붓터치를 남겨놓았다. 이러한 회화적 표현들로 마치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 같아, 아버지의 여정이라는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도록 한다.

'희망낙서' 연작은 다양한 동물군이 등장한다. 호랑이, 부엉이, 소, 당나귀, 코뿔소 등에서 청춘 시절의 표상, 특히 그 시절을 대변하는 청춘들의 열망과 번민의 상징적 기호를 발견하여, 이를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색채와 힘있는 붓질로 표현했다.


【서울=뉴시스】 사석원, 태양과 호랑이와 여인_2018_Oil on canvas_130.3x193.9cm

'신세계' 연작은 여성의 누드가 동물과 함께한다. 기존 작업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소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자국의 조합으로 표현된 관능적인 나부(裸婦)는 청춘시절 누구나 가졌을 법한 욕망을 환기시킨다.

“성적요망으로 가득 찬 내 몸뚱아리. 불안과 불온. 허기와 갈증. 밤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윤시내의 ‘열매’를 웅얼거리는 나의 스무 살 청춘은 취했고 늘 숙취에 시달렸다.” ( 작가노트中)

이러한 욕망은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인 힘, 야생성과도 직결되는데, 작가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당나귀, 수탉, 소, 비단 잉어를 여성의 누드와 함께 그려 넣는가 하면 서로 상반되는 원색들로 화면을 구성했다.

유화로 그려냈지만 작품은 동양화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동양화를 전공한 덕분인데, 선적인 필획은 동양화붓을 사용한다. 수묵화의 필법을 고수해 작품에 호방한 붓질과 기운생동함이 더하는 이유다.

"넓적한 서양화붓과 달리 동양화붓은 중봉(붓을 세워서)으로 그려 입체감 있고 다양한 표현이 용이하다. 양털로 되어 있는데 부드러워 한번밖에 못 쓰는 1회용이다."

"순식간에 순간적으로 그리는걸 좋아해" 밑그림없이 그려내는 작가는 "지금도 송나라때 그림을 모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사석원, 왕이 된 부엉이_2018_Oil on canvas_162.2x130.3cm

이번 전시는 새로운 기법이 두드러진다. 물감을 두껍게 짜놓은 듯한 이전 작품과 달리 '지우기 기법'이 새롭게 등장했다.

컬러 TV 화면이 고장날때 보이는 현상을 떠오르게 하는데, 이는 작가가 긴 막대기를 들고 두텁게 물감이 발라진 캔버스 위를 휘저은 ‘지우기’ 행위의 결과다.

작가는 "희망을 덧칠한다는 의미로 얇게 그렸다"고 했다.

"지운다고 다 지운게 아니다. 흔적도 남고, 그걸 발판으로 해서 또 다른 시도를 해보고, 그걸 희망이라고 표현해봤다. 색감, 질감, 느낌이 전부 다 달라지더라. 잡고 있는 걸 놓았다고나 할까. 그동안 계속 구축하고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하는 표현이었다면, 그걸 덜어내는 것 같은 표현을 쓰고 싶었다. 놓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청춘의 기억에 되묻는 이번 작업은 2007년부터 시작한 테마전의 연장이다. 금강산(만화방창 2007년)을 그린 것에서 바다(2007년), 외국인노동자(하쿠나 마타타 2010년), 폭포(산중미인 2012년), 고궁(고궁보월 2015년) 등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 전시는 작가의 마음을 담았다.

【서울=뉴시스】 방배동 작업실에서 사석원 화백.

"최근 큰 수술을 받았다. 나이가 드니 예전같지 않고, 아버지를 보면서 연민을 많이 느낀게 동기가 됐다. 공간에 대한 소재보다는 마음을 그려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번 전시는 내 마음속 안을 들여다 본 그림이다."

팔레트를 사용하지 않고 캔버스에 물감을 짠 뒤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작품은 강렬한 원색과 골필법의 기운생동한 생명력이 독특한 차별화였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활기차고 웅장한 호방함보다, 정서변화가 보이는 갱년기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작가 스스로도 "영원할 영, 소년 소라고 스승이 지어줬던 호 '영소'를 수정 해야할 것 같다"며 "힘이 좀 빠진 것 같다"고 인정했다.

"물감값 덜 들었을같다고요? 하하하. 이전보다 지워내는 작업이니 훨씬 덜 들었습니다. 그런데 작업때마다 물감 수급 문제로 고생합니다. 프랑스-네덜란드 물감을 쓰는데, 최근 르 프랑 회사 주인이 바뀌었어요. 작업때마다 물감 문제가 간단치가 않아요. 한국 물감이 어서 좋아져야 할텐데 말이죠.하하" 전시는 6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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