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Trouble'일단 질러'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전국 들썩…미술계 "한심"

2021.05.17

[뉴스1] 최대호, 박정환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인연 깊다' '사업장 있다' '고향이다' '희생 보상' 등 명분 제각각
미술계 "유족 뜻은 물어봤나?…김칫국에 되도 않는 소리들" 개탄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중섭의 '흰소'를 소개하고 있다. 고 이회장의 유족들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를 통해 고인이 생전 소장하고 있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 작가의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1000여 건,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고 이 회장의 미술품은 감정가로 2조∼3조원에 이르며,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오는 8월 서울관을 시작으로 2022년 9월에는 과천, 청주 등에서 특별 전시 및 상설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한다. 2021.5.7/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이건희 미술관'을 놓고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광역·기초 지자체 가릴 것 없이 너도 나도 앞다퉈 유치전에 뛰어들면서다.

삼성가(家)에서 한국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소장했던 미술품 2만3000여점에 대한 기증을 결정하자 전국에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유치 바람이 분 것이다.

15일 전국 지자체와 미술계 등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기증 미술품을 전시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 마련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 지자체들의 유치전쟁이 시작됐다.

포문은 부산시장이 열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이건희 미술관, 부산에 오면 빛나는 명소가 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문화의 서울 집중도가 극심하다"며 "고인의 유지를 살리려면 수도권이 아닌 남부권, 특히 부산은 북항에 세계적인 미술관 유치 계획도 있다"고 명분을 세웠다.

이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수많은 지자체들이 유치 희망 의사를 공식화 했다.

이미 국고로 귀속된 기증품인 점에서 특정지역에 '이건희 컬렉션'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실현 가능성이 낮은 상황임에도 지자체들의 유치전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반면 미술계에서는 지자체들이 이건희 컬렉션을 유치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대해 헛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 2만3000여점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된다. 이 회장의 유족들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를 통해 공개한 보도자료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 작가의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1000여 건,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은 8월부터 기증 받은 이건희 컬렉션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삼성 리움미술관. 2021.4.2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너도나도 미술관 유치 선언…전국이 '들썩'

먼저 박형준 부산시장은 '북항' 유치를 주장했다. 그는 "북항은 시대별, 장르별로 엄청난 폭과 깊이를 가진 작품을 품어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라며 "북항에 들어설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와 이건희 미술관이 연계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시설 수도권 편중 현상도 유치의 한 명분으로 내세웠다.

경남의 창원·의령·진주 역시 문화시설의 수도권 편중 문제를 지적하며 유치전에 가세했다. 창원은 이 회장의 선친인 고 이병철 회장의 '협동정미소 1호', 의령은 '창업주 고향·생가', 진주는 '창업주 재학 초등학교' 등 삼성과의 인연을 끄집어냈다.

이 회장 출생지(인교동)가 있는 대구도 가세했다. 대구 역시 삼성그룹 모태인 삼성상회와 제일모직(현 삼성창조캠퍼스) 설립지라는 인연을 앞세웠다.

경기도에서는 기초-광역 간 유치 엇박자 상황이 빚어졌다. 비교적 내세울만한 삼성과의 인연을 보유한 수원과 용인, 평택이 유치전에 뛰어들자, 경기도가 북부지역 미군공여지에 이건희 컬렉션 전용관을 짓자고 건의한 것이다.

수원은 '삼성본사·이 회장 묘소', 용인은 '호암미술관·반도체 공장', 평택 '반도체 공장' 등을 앞세워 유치의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경기도는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수원·용인·평택의 유치 도전에 찬물을 끼얹졌다.

삼성과의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전북은 새만금 카드를 꺼냈다. 새만금의 풍부한 자원과 개발 잠재력을 내세운 것. 방대한 미술품을 한데 모으기 위한 입지가 필요한 만큼 광활한 면적에 공항·항만·철도·고속도로를 아우르는 교통 인프라 등 새만금이 최적지라는 주장이다.

이 밖에 국립박물관 조성 계획을 가진 충북 충주는 기증된 미술품 중 인왕제색도 등 국가지정 문화재 60점과 중원문화 관련 미술품을 유치하자는 주장을 내놨고, 광주는 국제 미술축제인 비엔날레 개최지임을 내세우며 전통적인 예향의 도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점을 강조, 컬렉션 유치 물밑작업에 나섰다.

이건희 기증품 중 하나인 정선 필 '인왕제색도'. © 뉴스1

◇미술계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수장고 의견도

미술계는 이 같은 지자체들의 유치전을 두고 한심스럽다는 표정이다.

이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미술품은 이미 국고로 귀속된 점에서 특정 지역을 위해 유치를 하고 말고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유치전이 이렇다할 명분도 없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미술계 일각에서는 '택도 없는 경쟁' '김칫국부터 마신다' '되도 않는 소리' '아전인수 해석' 등의 질타가 나왔다.

유치 선언 지자체 대부분이 지역문화·경제의 질적·양적 효과 등 명분다운 명분 없이 '삼성과의 인연' 만을 강조한 채 일단 지르고보자식 주장에 나선 정치인들을 겨냥한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평론가 A씨는 뉴스1과의 전화통화에서 "모 지자체장의 경우 미술분야 기자들로부터 '(유치 주장에)논리적 당위성이 없다'는 면박을 받았다는 소문이 이미 미술계에 쫙 퍼졌다"며 "지자체의 이건희미술관 유치 과열은 유감스러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장 가운데 한 분이라도 유족의 뜻을 헤아리는 분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해당 지역의 발전을 위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국고로 귀속된 기증품을 특정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발상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특정 지역의 유치가 아니라 제대로 된 수장고를 짓고 순회전 형식으로 공개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평론가 B씨는 "문화재와 미술품들은 제대로 된 수장고에 보관해야 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경우 수장고가 낡아서 쥐가 나온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시설개선 공사가 시급하다"며 "당장은 기증자의 이름으로 묶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르지만 문화유산은 큰틀로 묶여 있어야 다양한 형식으로 활용하고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이건희 미술관'이 아니라 '이건희 수장고'를 제대로 짓고 특정 지역에 유치할 것이 아니라 순회전 형식으로 여러 지역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