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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스러지는 낙엽에서 생명을 느끼다…안젤름 키퍼 '지금 집이 없는 사람'

2022.09.01

[뉴스1] 김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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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스 로팍 서울 9월1일~10월22일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2014, copyright Anselm Kiefer, crédit photo Charles Duprat(타데우스 로팍 제공). © 뉴스1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구석의 창문으로 살며시 들어오는 한결 온화해진 햇살이 온몸으로 감겨온다. 그리고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이 참으로 길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가 떠올려지는 그림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세계적 명성을 지닌 독일 화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개인전 '지금 집이 없는 사람'(Wer jetzt kein Haus hat)이 이달 1일부터 내달 22일까지 개최되는 타데우스 로팍 서울이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_Wer jetzt kein Haus hat_2016-2022(타데우스 로팍 제공). © 뉴스1

키퍼의 이번 전시에서는 릴케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신작 회화와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가을을 주제로 변화와 덧없음, 부패와 쇠퇴를 노래하는 릴케의 시로부터 비롯한 작품들은 어스름한 나무의 윤곽, 가을빛으로 물든 나뭇잎, 시간이 흘러 속절없이 떨어지는 낙엽, 그리고 서서히 회색빛을 머금는 겨울나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작품 속의 한없이 스러져가는 낙엽들을 바라보면 어느덧 우울함과 덧없음이 아닌 강렬한 생명력과 희망, 그리고 새로움에 기대감이 느껴지는 뜻밖의 반전을 만나게 된다.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이 감흥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한 그 순간이 그의 기억에 고스란히 담겨 온전하게 전달된 덕분이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_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_2022(타데우스 로팍 제공). © 뉴스1

작가는 "이번 작품들이 유난히 볕이 좋았던 어느 가을날 런던 하이드 공원의 풍경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런던에서는 보기 드문 특별한 날이었다. 가을 낙엽을 비추는 빛과 폭발적인 색감에 압도당해 호텔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사진을 찍고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회상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회화들은 릴케의 시 중에서도 '가을날'(Herbsttag, 1902), '가을'(Herbst, 1906), 그리고 '가을의 마지막'(Ende des Herbstes, 1920)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가을날'의 마지막 연 첫 번째 행의 구절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을 작품에 직접 써넣음으로써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키퍼의 가을과 겨울 회화 전반에는 납과 금박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고대부터 전해진 연금술적 과정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두 가지 재료다. 특히 그에게 납은 '인류 역사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재료'다. 납과 금박의 혼용은 영적 깨달음, 초월, 재탄생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Anselm Kiefer__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_2022(타데우스 로팍 제공). © 뉴스1

전시장 가운데 위치한 진흙 벽돌의 설치 작품은 전후 폐허가 된 환경을 보고 자란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턱없이 부족한 '쉼터'(shelter)에 대한 가슴 아픈 상기다. 그는 나무와 낙엽을 그린 회화 작품들 가운데에 벽돌집을 놓아 인간이 처한 상황과 자연의 순환 간에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키퍼의 이번 작품들은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차분히 돌아보게 만든다.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드리워진 어둠과 부패의 무게만큼 같은 정도의 희망이 공존함이 느껴지면 작가에게 영감을 준 릴케의 시가 떠오르며 깊어진 가을을 흠뻑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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