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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국내 첫 비디오 아티스트 박현기의 모든 것

2015.01.28

[뉴시스] 유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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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국내에 비디오를 본격적으로 예술에 도입한 박현기(1942~2000)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27일부터 5월25일까지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을 연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1984년에야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했지만, 박현기는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영상 매체를 작품에 활용하며 독특한 비디오 작업을 해나갔다.

1942년 식민지 시대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박현기는 1945년 해방이 되자 대구에 정착했다. 홍익대에서 서양화와 건축을 공부하고 1970년대 초 대구로 낙향, 건축 인테리어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번 돈을 모니터와 카메라를 사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쏟아 부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74년 시작된 대구현대미술제에서다. 이후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1980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국제적인 시야를 넓혔다. 1980년대에는 일본에서 활약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비디오 아트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면서 주목받았다.

그리고 1997년 ‘만다라’ 시리즈와 1999년 ‘현현(顯現)’ 시리즈 등을 쏟아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만다라’는 1997년 6월26일부터 7월26일까지 뉴욕 킴포스터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우주의 진리를 상징하는 만다라의 형상이 붉은색의 의례용 헌화대 위에 투사됐다. 무수한 포르노 사진을 합성한 작품으로 성(聖)과 속(俗)의 모호한 경계를 언급하고 있다.

박현기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2000년 1월 숨을 거뒀다.

이번 전시는 2만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자료를 2년간 정리해 공개하는 자리다. 1965년 학창시절 메모부터 2000년 임종 직전의 스케치까지 35년간 그의 인생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과 자료 1000여 점을 보여준다.

‘만다라’와 ‘현현’을 비롯해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개인코드’, 1997년 ‘제3회 대구현대미술제’에서 행한 ‘포플러 이벤트’ 기록사진, 1979년 ‘제15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출품된 ‘물 기울기 퍼포먼스’ 기록사진 등을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박현기의 작품은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등 세상의 온갖 극단(極端)들이 서로 갈등하고 공존하는 일종의 ‘에너지 장(場)’을 형성한다”면서 “1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아카이브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박현기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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