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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조영남 그림 대작, 대법서 '무죄' 확정…유죄 뒤집힌 이유는

2020.06.25

[머니투데이]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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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 대법원 "위작, 저작권 시비없다면 예술품 거래 사법적 개입 최소화 해야"

가수 조영남씨./ 사진=이기범 기자

그림 대작 사건으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씨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남의 작품을 훔쳐 자기 것처럼 판매하는 위작 판매 등 명백한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예술품 거래에 법적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조영남 화투 그림, '조영남 작품'으로 인식·유통돼…'판매자들 속았다' 단정 어려워"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와 조씨 소속사 사장 장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어 "구매자들은 이 사건 미술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었다"며 "구매자들이 작품을 조씨의 친작(직접 그린 그림)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대법원은 대작 작가를 쓴 조씨 행위가 잘못인지 예술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면 작품 구매자들의 구매 당시 인식과 의사를 최우선으로 따져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구매 당시 문제의 작품들이 조씨의 작품으로 예술계에서 인정받았던 것은 사실로 보이므로 '구매자들이 사기당했다'는 결론을 낼 수는 없다고 한 것이다.

대작 작가를 썼다는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미리 알렸어야 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그 작품이 친작인지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조씨 작품활동의 산물이라는 점만 인정된다면 친작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 2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1심 "대작 작가 쓰는 제작 방식, 미술계 관행이라 보기 어렵다"
조씨는 알고 지내던 전문화가와 대학원생에게 작품 아이디어를 일러주고 화투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게 한 뒤, 자기 그림인 것처럼 판매해 억대 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화가 생활을 시작한 이후 조씨는 자신을 '화수'(화가 겸 가수)라고 하면서 '그림 조수를 쓰지 않는다', '고뇌하며 밤새워 그렸다'면서 모든 창작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것처럼 홍보해왔다.

조씨는 대작 작가들에게 받은 밑그림을 덧칠해 완성한 뒤 자기 서명을 넣어 판매했다. 대작 작가들이 밑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그림 구매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조씨가 구매자들을 속였다면서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이번 사건 쟁점은 화투 그림을 조씨의 창작물로 볼 수 있는지, 사실 대작 작가가 완성한 그림이라는 사실을 조씨가 고객들에게 알려야 했는지로 모아졌다. 조씨는 작가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그림 조수들이 작품을 생산하는 방식은 현대미술의 방식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창작 주체는 자신이며, 대작 작가는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대작 작가를 썼다는 사실이 고객에게 알려야 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1심은 조씨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장씨에 대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1심은 화투 그림을 조씨의 온전한 창작물로 볼 수 없고, 고객들이 조씨 작품이라고 믿고 그림을 샀다는 점을 알면서도 대작 행위를 감춘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유죄라고 봤다.

1심은 "대부분의 창작적 표현작업을 다른 작가에게 의뢰하여 완성하는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방식이라든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창작적 표현물로 판매하는 거래형태가 우리 미술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관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조씨 주장하는 것과 같은 작품활동은 정상적인 창작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또 1심은 조씨의 작품을 사간 구매자 여럿이 "조씨가 직접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림을 구매하지 않았거나 그렇게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점도 지적했다. 이를 언급하면서 1심은 "조씨 등은 사전에 충분한 정보의 제공과 설명을 통해 조씨의 친작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구매자들의 착오를 제거해줘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었다"고 했다.

2심 "화투 아이디어는 조영남 것, 대작 작가는 기술적 보조자일 뿐"
2심은 이를 뒤집고 무죄 판결했다. 작품의 기초가 된 '화투'라는 아이디어는 온전히 조씨 것이므로 조씨의 창작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대작 작가들은 이를 그림으로 옮겨주는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했다고 2심은 판단했다.

대작 작가를 썼다는 사실도 알릴 필요가 없었다고 2심은 판결했다. 2심은 "작품이 친작인지 여부는 작품의 진품 여부와 같은 정도의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니"라면서 "구매자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2심은 "조씨의 친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작품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부 구매자들이 진술한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가수 시절 조씨의 팬이라서, 조씨 그림이 독특해서,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등 구매 동기가 다양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림을 구매한 미술관 큐레이터가 "조씨가 자신의 구상을 대작 작가에게 말했다면 작품 아이디어는 조씨 것이기 때문에 작품이 조씨 것이 아니라고는 단정하지 못한다"고 진술한 점을 들었다.

이를 토대로 2심은 "구매자들이 모두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보조자가 사용된 사실을 알았다면 작품을 해당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을 것임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2심은 구매자에게 대작 작가를 썼다는 사실을 누가, 언제,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작가인 조씨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조씨 사건의 상고심 대리를 맡은 강애리 국선변호사는 "현대미술에서 조수를 기용해 작업하는 경우 어디까지가 창작행위이고 또 어디까지가 기술적 보조행위인지를 작가 본인이나 미술계, 대중이 아닌 사법부가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작가들을 사기죄의 범죄자로 만드는 전세계 유래 없는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대법관들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셨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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