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갤러리에서는 오는 9월 24(금)일부터 10월 22(금)일까지 퍼포먼스와 고속 사진을 통해 오로지 사진을 통해서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현실 속의 초현실적인 순간을 포착한 독특한 풍경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주목받고 있는 안준 작가의 개인전 <On Gravity: 방향과 좌표>展을 개최한다.
지난 2017년 금산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4년만에 개최하는 이번 개인전은 언뜻 보기에는 합성 같아 보이지만 합성이 아닌, 단순한 행위의 반복과 이 행위의 수행이 만들어낸 궤적을 빠른 셔터스피드로 촬영한 ‘One Life, Liberation, The Tempest, Self-portrait, Lucid Dream’ 이라는 다섯 가지의 연작들로 구성된다. 1미터가 넘는 대형 작업들로 이루어진 다섯 부제의 연작들을 금산갤러리 전시장과 윈도우 갤러리 두 개의 전시장에서 약 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과 재학시절의 작업인 고층빌딩에 선 자신의 몸을 촬영한 Self-Portrait연작으로 잘 알려진 안준은 2013년 영국의 British Journal of Photography에 주목해야할 사진작가 20인으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South China Morning Post에 주목해야할 아시아 작가 5인으로 선정되었다. 안준의 사진은 영국의 Guardian, 미국의 Foreign Policy, Fox News, 독일의 Spiegel, 프랑스의 Libration등 세계의 여러 매체들을 통해 주목받았다. 2018년 일본 Akaaka출판사에서 Self-Portrait을, Case Publishing에서 One Life라는 제하의 사진집을 출판했으며, 2019년 파리포토(Paris Photo) 에 참가해 파리포토 파트너사인 JP모건이 선정하는 exhibition highlight인 ‘Curator’s Choice’에 선정되었다.
작가는 ‘자유낙하’라는 단순한 현상과 각자의 궤적을 지니며 낙하하는 사물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한 순간을 사진에 담음으로써 방향(方向)과 좌표(座標)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작가는 이를 ‘중력에 순응하거나 역행하는 여러 현상들의 찰나’라고 설명하며 중력으로 인해 결국 땅으로 떨어져야 하는 낙하의 과정을 ‘삶’으로, 이를 역행해 아래에서 부터 위로 상승하는 불꽃, 소용돌이, 새의 날개 짓과 같은 움직임을 ‘영혼이나 꿈’에 비유하고 있다. 이 현상들은 삶을 상징하는 One Life나 Liberation과 같은 하강의 이미지와 영혼과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Self-Portrait과 Lucid Dream연작과 같은 상승의 이미지, The Tempest와 같은 이 두가지가 뒤섞인 이미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One Life, Liberation’ 연작은 사과와 바위 등 물체를 허공에 던지고 이를 빠른 셔터스피드로 촬영한 것으로 중동의 오만, 터키, 제주, 울산 등 여러 지역에서 촬영되었다. ‘서로 다른 이들로 부터 던져진 물체가 중력으로 인해 땅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가는 마치 자연 현상인 중력과 이로 인해 떨어져야 하는 사물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 처럼, 던져진 물체들이 우연히 조화로운 구도로 허공에 멈추어 있는 이미지만을 프린트해 제시하고 있다.
팔당댐 방류 장면을 고속 촬영한 작업인 ‘The Tempest’는 작가가 매해 여름 진행해 오고 있는 연작으로 이번 전시에는 유례없이 장마가 길었던 2020년의 작업들 중 일부가 전시된다.
‘Self-portrait’ 연작은 작가가 2021년 초 보그와의 콜라보를 계기로 촬영한 작업으로, 2020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중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빈 집과 정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례 후 작가는 가족과 겨울 내 치우지 못한 정원 낙엽을 얼어붙은 연못 위에 쌓아 태운다. 지난 계절의 흔적인 모은 낙엽을 태우며 언 연못을 녹이고 공기를 덥히며 고인께서 작가인 손녀가 좋아한다고 심으신 봄꽃을 기다리며 작업한 이미지 이다. 자유 낙하처럼 생을 다한 이가 영혼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자연의 법칙을 타오르는 불로 표현하여 애도와 상승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Lucid Dream'은 작가가 어릴 시절부터 종종 꾸었다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에 대한 오마주로, 펜대믹 시대에 자유와 꿈을 상징하는 하늘, 새, 바다로 관객과 소통한다.
작가는 작업에 대해 본인이 응시하고 촬영하지 않았다면 인지하지 못하고 사라졌을 형상을 잡아내는 과정과 그 과정을 만들어내는 실천적 행위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말한다.
작가는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 에서 사진으로 석사를 졸업하고, 2017년 홍익대학교에서 사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안준은 2008년 UN 독일 영사관에서의 그룹전을 시작으로 함부르크 사진 트리엔날레, 쉬른 쿤스트할레 미술관, 아퍼쳐 갤러리를 포함해 미국, 일본, 홍콩, 러시아, 타이완, 러시아, 프랑스, 스위스 등지의 70여회의 국내 외 그룹전과 포토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또한 취리히, 뉴욕, 도쿄, 서울, 부산, 리안저우, 세인트 피터스 버그, 홍콩 등지에서 1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9월 2일부터 오는 11월 20일 까지 스위스 취히리 크로스토퍼 귀(Christophe Guye Gallery)에서 개인전과 동시에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취리히와 서울이라는 두 도시에서 같은 연작의 다른 이미지들을 선보이며 금산갤러리에서는 두개 전시장에서 이루어 질 예정이다. 대형 사진 작품이 주를 이룬 금산갤러리의 메인 전시장과 다양한 사이즈와 구도의 사진을 금산윈도우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안준 작가의 사진전 <On Gravity>展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작가노트
안준 개인전 <On Gravity>
아마도 그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더 이상 자라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어렸을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하고 계신다. 엄마가 왜냐고 묻자 나는 ‘내가 자라버리면 엄마 아빠는 늙고 사람은 늙으면 죽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모두 더 이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그 말에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그때 나를 꼭 안아 주셨다는 것, 노을이 지기 전의 오후였다는 것, 안겨있던 나는 엄마의 어깨너머로 오른쪽 창문 사이로 들어와 벽에 스미던 햇빛 무늬를 보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무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너무 무섭다고. 나는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일단 태어났으면 자라고 늙고 죽어서 엄마 아빠 동생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라니 살아있다는 것은 무섭다고.
그때부터 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마치 중력이 있는 공간에 던져진 물체와 같았다. 선택의 여지없이, 어쩔 도리 없이 시공을 가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그저 중력에 이끌려 바닥, 그러니까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자유낙하’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영어로도 ‘자유’라는 단어가(free fall) 들어갔다. 무언가가 공중에서 중력의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떨어지는 물체의 입장에서는 그것에 저항할 방법 없이 어딘가에 부딪칠 때까지 낙하해야만 하는 것을 어째서 자유라고 부른단 말인가.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의 기억이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건지 그 무렵부터 다른 사람들이 의미 있다고 말하는 많은 것들이 시시했다. 살아가는 것은 저항이 무의미하게 물건이 중력에 의해 땅에 떨어지듯 현상의 끝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그때 그때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할 뿐 어떤 것에 큰 의미를 두고 그것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일들이 노력보다는 운과 우연에 좌우되었고 노력이란 단지 뒤돌아 보았을 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하나의 삶은 내가 던진 물건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보다 더 길지만 돌이나 나무, 지구,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볼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불가역적이고 짧은 현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내 작업에서 자유 낙하의 과정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에 비유한다. 하나의 생과 자유낙하라는, 길이가 서로 다른 두 현상은 처음과 끝을 선택할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그 끝을 향해 ‘어떻게’가는지는 의지와 환경이 결합된 우연이기 때문에 나는 작업을 통해 자유 낙하의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내가 응시하고 촬영하지 않았다면 인지하지 못하고 사라졌을 형상을 잡아내는 과정과 그 과정을 만들어내는 실천적 행위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반복해서 사과를 던지거나 돌을 들어 올렸다 떨어뜨려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의 시각적 인지보다 빨리 움직이는 자유 낙하의 과정을 고속 촬영을 통해 미분화(未分化) 하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불가역적인 현상들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위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념하고자 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노화를 막기 위해 더이상 자라고 싶지 않다고 했던 나는 이제 딸에게 그 말을 들었던 엄마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져 있다. 그전에도, 그동안에도 지구는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계 역시 은하를 공전한다. 우리의 존재를 무한한 우주 속에 하나의 좌표로 표시한다면 어느 누구도, 어느 한순간도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며 공통의 기억을 지닌다. 그 기억 때문인지 자라 있다는 것은 생각만큼 무섭지는 않다. 끝을 향해 잡아 끌리듯 달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뿐이라면 살아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의미라는 것은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해 다른 방향으로 낙하하던 좌표들이 한 화면에서 만들어내는, 우연히 생겨나는 구도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잡아내고 기억하고 음미하는 것이 그 곳에 있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