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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조선시대 예술품, 활자를 만나다…'활자의 나라, 조선'

2016.06.22

[뉴시스] 유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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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活字)’는 살아 움직이는 글자라는 뜻이다. 글자 조각들을 옮겨가며 여러 내용을 인쇄하는 데 거듭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활자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활자는 11세기 중국 송나라에서 필승(?~1051)이 처음 발명했지만, 흙을 구워 만든 탓에 실용화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활자의 재료를 금속으로 대체해 활자 인쇄를 본격화한 것은 고려(918~1392)였다. 하지만 고려는 한자라는 문자의 특성이나 서구와 다른 역사적 배경으로 활자 인쇄술을 발명하고 근대를 여는 혁신적인 매체를 선도하는 영예를 구텐베르크(1398?~1468)에게 내주었다.

조선(1392~1897)은 다양한 책들을 인쇄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를 발전시켰다. 통치를 위해 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활자를 제작했다. 1403년(태종 3)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면서 태종이 한 말에서 이러한 의도가 잘 드러난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책을 널리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외에 있어 중국의 서적이 좀처럼 오지 않고 판각본은 훼손되는 데다가 또 천하의 온갖 서적을 다 판목으로 새기기는 어렵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실 1층 고려 3실에서 21일 개막한 ‘활자의 나라, 조선’ 전은 조선시대 국가 제작 활자 82만여 자의 전모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9월11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에서는 박물관이 소장한 활자 82만여 자 가운데 8만여자를 선별해 보여준다. 대부분 17~20세기 초 조선시대 인쇄 출판 담당 관청인 교서관 등에서 국가나 왕실에 필요한 책을 만드는 데 사용된 활자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조선시대에 활자를 사용하고 책을 찍었던 사람들이 활자를 어떻게 분류하고 보관했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전시”라며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을 수 그분들만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이 연구관에 따르면 조선시대 활자 제작 횟수는 대략 금속활자 30여 회, 목활자 30여 회다. 이 중 금속활자는 국가 주도로 제작됐다. 목활자도 국가 주도로 제작된 것이 많다. 그러나 민간에서 만든 목활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기록에 활자 제작과 관련된 내용이 더러 나와 있지만, 만든 활자 종류와 만든 횟수에 대한 정보가 모두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인쇄한 책에서 어떤 활자를 사용했는지를 밝힌 예도 있다.

이 연구관은 “조선시대 제작한 활자가 다 남아 있지 않는 것은 전란이나 화재로 유실된 것들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나무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금속활자라도 오래되면 표면이 닳아 제대로 인쇄를 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며 “이때 기존에 사용하던 금속활자를 녹여 새 활자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책에 남아 있지만 활자는 남아 있지 않은 예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중앙 8×1.5m의 면적에는 활자를 보관했던 옛 서랍에 넣은 활자 5만 여자를 펼쳐놨다. 활자의 의미와 활자장 조사,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물도 설치했다. 박물관 소장 활자를 활용한 사자성어 게임을 즐길 수 있고, 3D 프린트로 출력한 활자 복제품을 만져볼 수도 있다.

이 연구관은 “조선시대 활자는 인쇄 도구라는 의미를 넘어 유교 정치의 상징이며 당대 기예(技藝)의 정수라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이해와 관심은 아직 피상적”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 활자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박물관 소장 활자 82만여 자 중 금속활자는 약 50만 자, 목활자는 약 30만 자다. 한글 금속활자는 750여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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