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백현진 "내가 잘 나이들면 내 작업도 잘 나이들겠죠"

2017.03.27

[뉴스1] 김아미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작가 백현진이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3.2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가수, 배우, 화가 활동…드라마 '내일 그대와'서 호평
2017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후보에도 선정돼


지난 겨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세마 골드-X : 1990년대 한국미술'전이 열렸다. 국내 미술계가 1970년대 단색화, 1980년대 민중미술 등 한국 현대미술 사조를 1~2년 단위로 숨가쁘게 재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기성화단과의 단절을 선언하며 1990년대 아트신(art scene)에 등장했던 이른바 'X세대'들이 미술관 전시에 소환했다.

전시 개막 무대를 장식한 건 백현진(45)이었다. 1990년대 국내 1세대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였으며, 방준석 음악감독과 프로젝트 듀오 '방백'을 결성해 최근까지도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90년대 아트신, 동시에 90년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디신의 한 주역으로 대중에 소개됐다.

백현진의 '스펙트럼'은 넓다. 199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붓을 잡아 온 화가이고, 2000년대 초반부터 다수의 독립영화에 출연하다가 2년여 전부터는 '특종: 량첸살인기'(2015) '해어화'(2015)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등 상업영화에도 출연하고 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 '미쓰 홍당무'(2008) 등에서 음악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쳤다. 25일 종영한 tvN 드라마 '내일 그대와'에서 일도 사랑도 '공격적'인 야망 넘치는 부동산 전문가 역을 맡았다. 드라마 방영이 한창이던 2월 그는 국내 최고 권위의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후보 4인 중 하나로 선정됐다.

마흔 중반을 넘기며 가수, 배우, 그리고 화가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백현진을 지난 24일 서울 연남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15년 플라토 전시 당시 선보였던 백현진 작품 '평상심' © News1

2016년 PKM갤러리 전시 당시 선보였던 작품. © News1

◇다들 저것도 노래냐, 연기냐, 그림이냐 했지만…

TV드라마에 출연했지만 백현진은 TV 없이 산지 25년째라고 했다. 이유는 "정신 사나워서"다. 자신의 나오는 드라마도 인터넷 유튜브로 봤다고 했다.

드라마가 후반부로 가면서 백현진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저 배우 누구냐' '가수 김창환의 배우 초창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등의 칭찬이 많았다. 그러나 백현진은 "처음엔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도 처음에는 평이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2005년 권오상, 전준호, 구동희 등 젊은 작가 8명이 아라리오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일군'을 이루며 활약하던 당시 '백현진이 왜 거기 들어가 있는거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저게 무슨 연기냐' '나도 저렇게 연기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그게 익숙했어요. 노래할 때는 '저게 가수냐, 나도 가수하겠다'거나, 그림 그릴 때는 '저게 화가냐, 나도 저만큼은 그리겠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그는 "대중이 가수에게, 연기자에게, 화가에게 기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노래든 연기든 그림이든 '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나, 그들이 재미있고 흥미로워 하는 일에는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2년 전 '지드래곤 디스(Dis)'로 드러나기도 했다. 백현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드래곤은 뮤지션 아니다. 그냥 똥폼을 잡는 연예인이다'라고 써 논란을 불렀다.

"그 분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었어요. 그 분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는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가지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참외를 좋아해요, 제가 가지를 좋아한다고 참외를 욕할 순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참외를 가지라고 하니까. '내가 한번 광대가 돼서 이걸 말해보자' 했던 거예요."

이후 백현진에게 쏟아졌던 반응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관종'(관심종자) 같은 비난이었다. 지드래곤을 비난해 관심을 끌려는 거라는 비난이다.

"제가 지드래곤을 규정했듯, 그들도 저를 그렇게 규정했죠. 그럼 되는거죠 뭐. 여하튼 지드래곤이 본인이 뮤지션이라고 하면 오케이. 단 제가 생각하는 흥미로운 뮤지션은 전혀 아니에요. 그는 어른들한테 '반항'을 철저하게 교육받은 사람이죠. 솔직히 너무 재미 없네요."

2016년 PKM갤러리 개인전 당시 백현진. © News1

◇노래, 연기, 그림 따로 배운적 없다…그저 운이 좋았을 뿐

"중학교 3학년 때 쯤이었어요. 어른들이 빚 보증을 섰다가 잘못돼서 집이 날아갔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성격이 많이 바뀐거 같아요. 더 폐쇄적이고 화도 많아지고. 그러면서 음악에 열중하게 됐어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니까요."

그는 특히 '뭘 해야겠다'보다 '뭘 하지 말아야지'가 더 많았던 청년이었다. 최소한의 아르바이트조차 하기 싫었다고 했다. '이렇게 살면 거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거다. 그는 다만 '운이 좋았다'고 했다.

"누나 덕분에 누나 주변에 미술하던 분들을 알게 됐어요. 최정화, 이불 작가도 그때 알게 됐죠. 형·누나들 만나면서 그분들이 얘기하는 미술, 문학,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거고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 '양반들' 노는 술집들을 다녔다"고 말했다. 술 마시고 춤 추고 전시 열고 공연도 하던, 종로 '오존' 신촌 '올로올로' 등 락카페들이다. 그 중에는 무용가 안은미도 있었다. 그는 "예술가 날나리들이 다니던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날나리'들의 아지트는 오늘날 1990년대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수, 배우, 화가인 백현진은 노래도 연기도 그림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또래보다 3년이나 늦게 들어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3학기만 다니고 그만뒀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미가 없어서였다. 그는 "한국식 교육을 안 믿는다"고 했다.

"수 많은 밤들을 그 락카페들에서 지샜어요. 이제 막 스무살 넘은 저는 형·누나들이 말하는 걸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메모하고 그랬죠. 그게 일종의 공부였어요. 그러고 학교를 가니 재미가 없죠. 너무 지루하고 헛짓하는 것만 같았고요. 애들은 또 너무 '애들' 같고요."(웃음)

작가 백현진이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3.2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내가 잘 나이 먹다보면 내 작업도 잘 나이를 먹게 될것"

백현진은 마흔을 훌쩍 넘기며 전문가 그룹으로부터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화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후보에 올랐고, 앞서 '방백'의 음반은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특히 화가로서는 2015년 헤르난 바스, 데이나 슈츠, 빌헬름 사스날, 박진아 등 국내·외 굵직한 화가들과 함께 했던 삼성미술관 플라토의 '그림/그림자-오늘의 회화'전에 이어, 곧바로 2016년 '들과 새와 개의 재능'이라는 주제로 PKM갤러리에서 열었던 개인전을 통해 그의 회화에 대한 평단의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백현진은 남들의 평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 TV를 안 보는 것처럼 '말 많은' 미술계에서 어떤 얘기들이 도는 지도 "관심 끊은지 오래"라고 했다. 친한 작가들 전시 개막은 물론, 자신의 전시 개막도 안 갈 때가 많다는 거다.

"그냥 그러다가 마는 거겠죠. 사실 저야 계속 제 '일' 봐 왔던 것 뿐이고요. 안 좋은 얘기를 들었다고 기분이 언짢거나 반대로 좋은 얘기를 들었다고 그걸 갖고 우쭐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요."

국내 유일 국립 미술관이 주는 '올해의 작가'상은 그간 다양한 이유에서 구설에 올랐다. 후보의 적절성에 대한 미술계의 논란은 물론, 후보들 사이에서도 전시 공간 선정을 놓고 논란을 빚는 일이 많았다.

올해에는 백현진을 비롯해 박경근, 송상희, 써니킴이 '올해의 작가' 자리를 놓고 겨룬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백현진은 후보들 사이에서도 분위기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후보가 되면 다들 많이 날카로워진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사이가 엄청 좋아요. 전시 공간 선정할 때도 담당 큐레이터가 희한하다고 할 정도였어요.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요."

그는 9월 중순 '올해의 작가' 후보들의 그룹전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개막하는 페리지갤러리 개인전도 준비하고 있다. 매년 전시 하나 정도를 준비한다는 그는 올해 여는 두 곳의 전시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공간 설치 위주의 작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백현진은 '배우로서 활동을 확대할 건가'라는 질문에는 "음악가로, 미술가로 일하는 데 균형이 깨지는 건 싫다"고 답했다. 가수, 배우, 화가 중 무엇으로 불리는 게 가장 좋은가 라는 질문에는 "그냥 '저런 사람이 있구나'라고 봐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를 뭐라고 알아주지 않아도 돼요. 제가 잘 알려진다고 제 인생이 더 좋아질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하고 싶은 것들을 더 멋대로 할 수 있겠구나'라는 정도예요. 제가 잘 나이 먹다보면 제가 하는 모든 작업들도 나이를 잘 먹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migo@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