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가기 메뉴
- 컨텐츠바로가기
- 주메뉴바로가기
- 하단메뉴바로가기
-
2024 05.16
적막 속에서 사이렌과 폭탄 소리가 작아졌다 커졌다 반복하고, 스크린 안에서는 중산층 가정의 거실 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공간이 산산이 부서져, 날아다니는 파편이 화면을 뚫고 내게 날아올 듯 하다. 옆 방 영상에서는 어항이 잔인하게 깨지고 있고, 또다른 방에는 빈 와인잔과 촛대가 하얀 식탁 위에 시체처럼 차려져 있다.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의 대만관 위안광밍(Yuan Goang-Ming) 작가의 전시 ‘매일 전쟁(Everyday War)’이다. 평화로워야 할 일상이 갈기갈기 찢겨가는 과정을 관객들은 숨죽이며 바라본다. 지난 몇년간 중국본토로부터 전쟁 위협을 받는 대만의 상황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공포가 감돈다.
2024년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지하는 ‘뭔지 모를 불안함’은 ‘피노(Pinault) 컬렉션’ 미술관으로 유명한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에서 더 충격적으로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세계적 작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전시 ‘리미널(Liminal, 한계)’이다. 미술관 안은 조명이 전혀 없어, 전시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이 깜깜하다.
깜짝 놀라 핸드폰 플래시를 바닥에 비추며 벽을 짚고 살살 걸어 가면, 앞에 펼쳐지는 영상은 섬뜩하다.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마을에 버려진 빈 집 안에서 인형인지 로봇인지 표정 없는 기이한 형상이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
이 형상이 여자아이 가면을 쓴 원숭이라는 것을 몰라도, 영상을 찍은 곳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지역이라는 것을 몰라도, 이미 등골이 오싹하다. 자연과 인간이 사라진 뒤 지구의 모습을 누구나 상상해봤을 거라, 이 작품이 어느 지역에서 누구를 찍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토막 난 인체가 담긴 어항, 동물들의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영상, 위압적인 로봇의 형상, 곳곳에 쭈그리고 앉은 기이한 조각 등 오브제들이 이어지는 전시장은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다. 우리가 서서히 파괴해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어둠 속에서 조심조심 다니다 다른 관객을 코앞에서 마주치면 반갑고 마음이 놓이기까지 한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