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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인연은 1978년 12월 31일 새해 전야에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 얘기다. 사진작가 리차드 영(Richard Young·72)은 한 살 위인 머큐리와 영국 마운크베리(Maunkberry)라 불리는 저민가(Jermyn Street)의 작은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그날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 2019.01.02
한국화가 유산 민경갑 화백이 30일 오후 6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故 민경갑 화백은 한국화의 전통화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화법을 구축한 '채색 한국화' 대가다. 수묵산수화가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화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색면으로 형상화한 '산' 시리즈를 50여년간 천착해 ‘자연과의 공존’의 메시지를 전했다. 충남 논산 출생으로 1959년 서울대학 미술대학 재학중 국전에 한국화 추상작품을 출품, 최연소 추천작가로 화단에 데뷔했다. 미술대학에서 전통 한국화를 전공한 1세대 화가다. 한국화의 전위 그룹인 ‘묵림회(墨林會)’ 창립을 이끌었다. 국전 추천작가(1966~1991), 서울올림픽 세계 현대미술제 운영위원,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90~1997), 문예진흥원 미술관 기획운영위원, 미술은행 운영위원회 위원장,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석좌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장(2016~2017)을 역임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6), MANIF ‘99 초대작가상(1999),서울시문화상(2001), 은관문화훈장(2002), 대한민국예술원상(2004),대한민국미술인상(2010), 문화상(2013)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2019년 1월 2일 07시 30분. 02) 2227-7500 [email protected]
[뉴시스] 박현주 | 2018.12.31
원로 한국화 작가 민경갑 화백이 지난 30일 오후 6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회원인 고인은 1933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서울대 미대 재학 중 국전에서 특선한 후 촉망받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현대미술협회 동양화분과위원장, 서울올림픽 세계 현대미술제 운영위원, 문예진흥원 미술관 기획운영위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생전 '동열' '생잔' '여명' '영겁' '산울림95-1/2' '대나무있는산' '자연과 공존2000-2' 등 다수 작품을 선보였다. 묵립회 창설 및 1-8회 전시, 일본자유국제전 초대, 한국화 100년전, 한중예술전, 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초대전, 코리아평화미술전, 서울국제미술전, 세계평화미술제2000전, '랑스 살롱 그랑에존느' 세계 순회전, 파리아트페어, 프랑스 싸롱 도톤느전 출품 등 국내외 작품전에도 꾸준히 참여해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6), MANIF 초대작가상(1999), 서울시문화상(2001), 은관문화훈장(2002), 대한민국예술원상(2004), 대한민국미술인상(2010), 문화상(2013)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 2019년 1월2일 오전 7시30분.
[머니투데이] 황희정 | 2018.12.31
영국의 저명 미술사가이자 예술 비평가인 웬디 베케트 수녀가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퀴드넴 카멜 수녀원은 베케트 수녀가 이날 오후 영면했다고 발표했다. 자세한 사인 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베케트 수녀는 1990년대 BBC 방송의 TV 아트 시리즈 '웬디 수녀의 모험(Sister Wendy's Odyssey)'과 '웬디 수녀와 함께 떠나는 미술여행(Sister Wendy's Grand Tour)'을 진행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바티칸과 이탈리아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성화 40여점을 통해 예수의 일대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친구 신란 쉐는 베케트 수녀를 잃은 것이 미술계에는 '큰 손실'이라며 그가 뛰어난 예술 비평가였다고 기렸다. 베케트 수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에서 자랐으며 케이프타운과 리버풀에서 교육을 받았다. [email protected]
[뉴시스] 이재준 | 2018.12.29
"등 뒤에 안 좋은 기운을 느끼면서 그림을 그린 건 처음이었죠. 하하." 그래피티·벽화 아티스트 심찬양씨(29,별명 로얄독)는 여느 때처럼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19일 청와대 사랑채(방문자센터) 앞마당. 심씨는 청와대 초청으로 이곳에 대형벽화 2점을 그렸다. 첫 그림인 가로 9m, 높이 5.3m의 '안녕'이 완성도 되기 전 화제가 됐다. 4월27일 판문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역사적 장면이었다. 북한 지도자의 모습이 전시되기 때문일까. 이 사실이 보도되자 탐탁지 않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현장에 모였고, 일부 격한 반응도 들렸다. 이 그림은 청와대가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답방을 준비하는 결정적 증거쯤으로 여겨졌다. 작업 막바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난 그는 생전 처음 맞닥뜨린 반응에 "이해가 잘 안됐다"라고 했다. "정치성향을 드러내려고 기획한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김성휘 | 2018.12.28
현대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의 사후 50주년을 기념한 회고전이 찾아왔다. 지난 22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박위진)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했다. 해당 전시는 2019년 4월 7일(일)까지 MMCA 서울 1, 2 전시실에서 열린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창조’와 ‘해석’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든 현대미술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뒤샹은 25세에 회화와 결별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는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 개념을 만들어 예술의 정의를 뒤집었다.
[머니투데이] 김건휘 | 2018.12.24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1915년 여름, 스물일곱살 뒤샹은 전쟁에 휩싸인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향했다. 뉴요커가 된 그는 수집가 루이스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 주변에 모인 예술가·작가·지식인 무리에 합류했다. 체스를 잘했던 그는 이 그룹에서 스타로 부상했고 아렌스 버그 부부는 뒤샹의 후원자가 됐다. 수집가 아렌스 버그와 어울리던 그가 서른살 때였다. 1917년, 뒤샹은 뉴욕의 현대 미술을 위해 예술가가 운영하는 포럼인 독립예술가협회 창립멤버였다. 그는 젊고 패기만만한 독립예술가협회가 민주주의와 수용성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수호하는지를 시험했다. 1917년 2월 '어떤 예술가든 6달러만 내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협회 첫 전시인 '앙데팡당'전에 이름을 감추고 철물점에서 구입한 화장실 소변기를 출품했다. 작품 제목을 '샘'이라 쓰고, 'R. Mutt'라고 검정물감으로 서명을 했는데, 이 사인은 뉴욕 변기 제조업자인 리처드 머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 협회 위원이었던 수집가 아렌스 버그는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며 변기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조직위원회측은 “그것은 전혀 미술품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샘'을 전시하지 못하게했다. 뒤샹은 이에 항의하여 사임했다. 훗날 '변기' 사건은 20세기 현대미술에서 가장 혼란을 던지며 뒤샹에게 유명과 악명을 동시에 선사했다. ‘R. MUTT’라고 서명한 남성용 소변기 '샘'은 현대 예술, 개념미술의 시작이다. 당시 미술계를 뒤집어놓은 샘은 현대미술사 흐름을 바꾼 파격 예술의 시작이었다. 당시 뒤샹의 후원자가였던 아렌스 버그 부부가 그 변기를 사들였는데 잃어버렸다. 그래서 작품 '샘'은 다시 복제되었다. 전시됐던 변기가 아닌, 새로 서명한 변기 샘은 '오브제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지킨 것'이라고 해석됐다. 일반적인 상점에서 산 기능적인 물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술의 맥락에 들어온 '레디메이드(ready-made)'의 발명이자 '20세기 예술적 급진성의 아이콘'이 됐다. 소변기 '샘'은 2004년 12월 영국미술가 500명이 1위로 뽑은 ‘지난 20세기 100년간 후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20세기 작품’으로 선정됐다. '위대한 천재 예술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두 폭'을 누른 뜻밖의 결과였다. 1917년대 쓰레기로 취급됐던 이 소변기 작품은 그로부터 82년이 지난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700만 달러에 낙찰됐다. 뒤샹의 작품 중 최고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이 소변기는 1917년 제작된 바로 그것도 아니고 1964년에 새로 만든 8번째 에디션이었다.
[뉴시스] 박현주 | 2018.12.21
1929년 탄생한 만화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가족 만화의 고전이며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유럽인이면 이 만화를 읽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60여 개국, 약 50개 언어로 번역돼 3억부 이상 팔렸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땡땡'을 탄생시킨 만화가는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1907~1983)로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땡땡 시리즈를 그렸다고 한다. 초기 유럽 만화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유럽 만화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땡땡(Tintin)’ 탄생 90주년 회고전을 기념해 세계 순회전을 하고 있는 '에르제: 땡땡'전이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1일 개막했다. 파리 퐁피두 센터를 시작으로 영국과 덴마크를 거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다.
독일 라이카 카메라의 ‘2018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LOBA)’ 우승자인 벨기에의 사진가 맥스 핀커스의 ‘붉은 잉크(Red Ink)’ 사진전이 서울 논현동 라이카스토어 강남점에서 개막했다. 핀커스가 선보이는 ‘붉은 잉크’ 시리즈는 더 뉴요커 지의 기사를 위해 2017년 8월, 나흘간 북한 취재에 동행하며 촬영한 사진이다. 정부 관료들에 의해 도착 전 미리 준비되고 계획된 장소로만 인도돼 철저한 감시 속에서 촬영했다. LOBA는 라이카 카메라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국제 사진 공모전이다. 35㎜ 소형 필름카메라를 발명한 오스카 바르낙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79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공모전 주제는 '인간과 환경의 소통과 관계'이며 자신 또는 피사체를 둘러싼 장면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각으로 촬영한 사진가라면 카메라 기종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뉴시스] 조수정 | 2018.12.21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입니다." 올해는 현대예술에 변혁을 일으킨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세상을 떠난지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현대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의 사후 50주년을 기념한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 서울에서 22일 개막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이자 최대의 논란을 일으킨 남성용 소변기를 활용한 '샘'부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 첫번째 레디메이드(ready-made) 작품 '자전거 바퀴'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뒤샹은 25세에 회화와 결별하고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 개념을 만들어 예술의 정의를 뒤집었다. 뒤샹의 이러한 예술에 대한 생각은 그가 1916년 1월 여동생 쉬잔에게 쓴 편지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자, 네가 내 작업실에 갔다면 그곳에서 자전거 바퀴와 병걸이를 보았겠지. 나는 이것을 레디메이드 조각품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다"라고 말하며 처음으로 레디메이드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뒤샹은 기존 미술계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원작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사물이 일반적으로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나는 것을 레디메이드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복제품에 행복한 마음으로 서명했다고 한다. 뒤샹의 이런 생각 때문인지 현재 '샘'이나 '자전거 바퀴' 등은 첫번째 제작한 것들이 남아 있지 않다. 이번 전시를 협업한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티모시 럽 관장은 20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뒤샹을 이해하지 않고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며 "그가 남긴 유산이 과연 유용한 것인지 아닌지 대해서는 아직 토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결국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남긴 유산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한 기관에 소장되기를 원해 작품의 복제, 전시, 소장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그의 핵심 후원자였던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스 부부의 도움으로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작품 다수를 기증했다.
[뉴스1] 여태경 | 2018.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