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현대인은 양분화된 문화-자연 그리고 가상-실재 사이에서 존재론적인 괴리를 느끼며 살아간다. 인간 스스로 역시 이중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로, 가시화할 수 없는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 중 하나이다. 현실 속 괴리들의 양극단에 자리한 영역들을 가로지르는 경계에 있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 수는 8월 9일부터 9월 15일까지 개최되는 전시 <Ambivalently Yours>에서 한진수(Jinsu Han), 김홍식(Hongsik Kim), 블루숩(Bluesoup) 세 작가가 이분적인 상태 사이를 넘실거리며 드러내는 의도적인 패러독스를 보여준다.
임의적이고 우연적으로 수집한 잡다한 일상의 사물들로 공간을 구성하는 작가 한진수는 사물을 본래의 기능에서 분리하여 오브제로 성형하는 고안자이다. 갤러리를 들어서면 마주하게 거대한 기계의 모터에 매달린 붓들은 동일한 궤도를 반복하며 캔버스 위 물감을 덧대는 제작 행위를 취하고 있다. 뉴욕 전시 이후 국내에서 보다 큰 스케일로 처음 선보이는 <액션 페인팅 Action Painting>은 견고한 키네마틱 방식으로 매우 능숙한 붓질을 해대며, 전시 기간동안 작품을 제작해 나갈 것이다. <리퀴드 메모리 Liquid Memory>에서는 무더운 여름날 강변에서 놀던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들’을 나무, 바위, 물, 물고기, 그리고 물새를 상징화하는 깃털 등의 소재들을 오밀조밀하게 조합해 강의 수면 위 풍경을 재현한다. 한편 새의 머리와 핑크빛의 몸체를 한 버블 머신 <Camel Bird and Golden Egg 낙타새와 황금알>은 작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일정한 회전 속도로 돌아가며 핑크빛 버블을 만드는 기계적 구조를 가진 오브제로, 어쩐지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한진수 작가가 고안한 공간 속에는 단순한 기계 알고리즘으로 유기적인 행위를 하는 이중적 오브제들이 쉴 새 없이 유영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오브제를 수집하고 조합하여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완성해가는 과정과 그 결과물은 사물과 지각에 병존하는 이중성을 드러내 보인다.
‘산책자 Flâneur’의 시선에서 특정 공간과 인간의 사이를 거닐며 관조한 대상들을 소재로 작업하는 김홍식 작가는 조각에서나 느낄 법한 물질성, 그리고 빛을 평면작업에 전이하며 감각적인 확장을 일으킨다. 전시장 1층에는 오르세 미술관의 어린 발레리나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발레복으로 갈아입은 채 서 있고, 그 뒤편으로는 금빛 액자 틀을 한 채 벽에 걸린 작품들과 감상자들이 있는 미술관의 풍경이 있다. 전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진 유명한 작품들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들로 가득한 미술관 풍경은 2층까지 이어지는데, 작품들에 공통된 화려한 금색 돋을새김의 프레임이 눈길을 끈다. 전시장 한편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환기미술관에서 포착한 순간을 담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에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 스펙터클처럼 펼쳐진 군중의 행위를 담고 있다. 작가의 시선을 전용(appropriation)한 이미지가 또 다른 시선들의 대상이 되는 ‘미술관’ 시리즈의 양가적 특성은 작품에 공통된 금색 프레임의 매개로 한층 도드라진다. 전시장의 어느 한켠에는 그 스펙터클의 행렬 속 나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작가의 터치가 숨어 있다. 한편 3층의 레드 립스틱과 이를 바른 입술은 여느 광고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레드 립스틱은 가장 파워풀한 여성미와 섹슈얼리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작가는 우리에게 광고로 익숙한 이미지를 색다르게 제시함으로써 잊고 지냈던 이미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러시아 아티스트 그룹 블루숩(Bluesoup)은 장소도, 원형도 없지만 실재하는 듯한 가상의 풍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 이분법적 경계에 우리의 의식을 개입시킨다. <Cascade 작은 폭포>는 자연적 소재가 가지는 서정성과 대조적으로 지극히 이성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조성한 인공 폭포이다. 가공된 풍경이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떨어지는 폭포는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함께 우리를 잠식해 온다. 가상과 현실의 폭포는 이원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점차 가까워지는 컴퓨터가 형성한 폭포수 앞에 우리는 현실에서 느끼는 감각을 경험한다. 다리는 분명히 전시장의 바닥을 딛고 있지만, 의식은 Cascade 안으로 전이하며 블루숩이 창조한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이때 과거에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풍경이 잠재된 의식 속에 떠오르며, 의식 속에 고정관념화된 이미지가 해체된다. 그러나 감상자는 시각과 청각을 통한 그 지각을 촉각으로 바꾸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모순을 경험한다. 랜드스케이프(landscape)가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로 전환되는 그 순간에, 현실 또한 체험하는 그대로라는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 작품은 2016년 개러지 현대미술관(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열린 러시아 최초의 현대미술 트리엔날레 필름 앤 비디오 섹션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같은 해 러시아 최고의 컨템포러리 아트 어워드인 칸딘스키 프라이즈(Kandinsky Prize)를 수상했다.
때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진실보다 역설이 더 큰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현실 속 간극이 역설들로 채워졌다고 하더라도 주체, 대상, 현실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역설들 때문이 아닐까. 이번 전시 <Amblvalently yours>는 이분화된 현실의 이면에 있는 패러독스를 세 작가의 언어를 통해 탐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