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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아트스페이스벤] 리경 개인전 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

2017.04.03

Writer :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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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경  LIGYUNG

 

아름다운 시절 

 

Belle Epoque

 

2017. 3. 30 – 6. 30

 

화요일 - 토요일 (공휴일, 일요일, 월요일 휴관)   

 

 

 

ART SPACE BEN

 

서울 성북구 성북로 49  아트스페이스 벤 

 

www.artspaceben.com

 

 

 

 

 

형태를 구축하는 현실의 공백과 마주하기

 

 

 

안소연

 

미술비평가

 

 

 

빛을 통해 “바라보기”에 대한 오래된 철학적 물음을 탐색해 온 리경은, “보이는 대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일인가”를확신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불완전함에 대해 자문한다.(*KAP Artist Interview 참조)그간 그가 보여왔던 일련의 작업들을 되짚어 보면, 임의의 공간들이 처해있는 여러 상황과 한계 속에서 그는 “빛”을 이용해 다분히 비가시적인 현실의 조건들을 세심하게 조명해왔다. 이를테면 《more Light》(2012)와 《逆轉移 Countertransference》(2014-2015)에서, 리경은 각각 인공조명과 태양광을 이용해 빛이 조명하는 현실의 수많은 공백들과 그 안을 서성이는 불완전한 신체 경험에 대한 사유를 극대화했다. 정밀한 계산에 따라 각 공간에 설치된 강렬하고 거대한 빛의 궤적은 다양한 층위를 이루고 있으며, 이때공간에 놓인 관객은 다다를 수 없는 빛의 근원을 등진 채 현실의 깊은 공백 속으로 연거푸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보는 것에 대한 불완전함과 무력함을 환기시킬 뿐 아니라 텅 빈 공백을 서성이며 쉽게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드러나지 않는 것의 윤곽을 수없이 그렸다 지워나가는 행위의 강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가 《逆轉移 Countertransference》에서 무영탑에 얽힌 아사녀의 비극적인 서사를 매우 시적이고 추상적인 시각적 구조로 전환시킨 것도 그러한 관점에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오래 전 세잔(Paul Cezanne)과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가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형태의 윤곽을 집요하게 다루었던 현실에서의 강박적인 장면들과도 닮아있다.

 


 

 

이처럼 리경은 자신의 작업 전반에 걸쳐서 “빛”을 가지고 현실의 시각적 상투성에서 벗어나 시종 결핍과 균열로 물들어 있는 개인들의 불완전한 시선을 가늠해 왔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이 “빛”은 각 개인들의 시선에 직접 대응하는 현실의 세계를 추적해 그것을 정확히 조준하는 것처럼 경험되곤 하지만, 동시에 그 정교한 빛의 파장들이 과도하게 교차하고 있는 임의의 시공간에서 보는 이의 명료한 시선은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 불확실의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리경이 다루고 있는 “빛”은 시각의 구조에 있어서 상당히 이중적이다. 그가 이렇게 빛을 현실의 세계 안에서 물질적으로 다루어 왔던 데에는 그것이 지닌 이중성 혹은 양면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때 그는현실 이면에 감춰진 개인이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일종의 냉소섞인 “거리두기”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가 보이는 것에 대한 불완전함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체감하며 그 적나라함을 자각할수록, 도리어 그 부조리의 상황에 대한 표상으로 그가 제시한 빛의 공간들은 침묵에 가까운 엄격함과 과도한 폐쇄성으로 매우 그럴듯하게 위장돼 있었다.

 


 

 

그렇게 리경은 스스로의 감정까지 엄격하게 통제함으로써, 적어도 추상적인 빛의 공간을 통해 “보이는 대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일인가”를 무심하게 증명해 보이려 했다. 한데 이번 개인전에서그는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하는 다소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수사가 섞인 제목을 사용하면서, 더 이상 극단적인 냉소 뒤에서 표정을 지운 채 서 있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에서의 시각적 모순과 부재 앞으로 바짝 다가가 뜻밖에도 그것을 애도하려는 한 개인의 의지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사실 《아름다운 시절》은 어디에도 없는, 혹은 한번도 실재하지 않았던 신기루처럼 현실에서의 근본적인 부재와 연관되어 있는 주체의 멜랑콜리한 환상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눈 앞에 없는 현실의시각적 부재를 끝없이 상상하고 반복하고 있는 작가의 행위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강박을 함축하면서 바로 그 부재에 대한 향수어린 멜랑콜리한 반복을 구축하게 된다. 

 


 

 

전시는, 허공에 매달려 있는 <당연한 전제, 불온한 확신>(2010/2017)에서 시작돼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동선을 그려나가고 있는데, 이때 리경은 보는 이의 시각적 경험에 보이지 않게 개입해 자신이 구축해 놓은 일련의 시각 구조 안으로 진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미세한 소리의 파장들 또한 불완전한 시각 경험의 강도를 더욱 배가시키며, 시선의 한계를 공공연히 유희하면서 공간으로 진입하는 각 개인들의 신체가 몰입과 소외를 큰 낙차없이 겪게 된다. 이미 2010년에 제작되었다가 파손돼 다시 복원된 <당연한 전제, 불온한 확신>은, 여러모로 이 전시에서 꽤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한때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피에타(Pieta)>(1499)에서 강조되어 있는 사실적 형태와 그 초월적인 존재감에 크게 감동했던 리경은, 그 도상을 작업실 창문에 붙여놓고 바라볼 정도로 완전한 형태로서의 확신을 가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어떤 극심한 상실과 우울을 겪으면서, 분열적인 충동에 의해 피에타에서 상징적인 예수의 자리를 완벽하게 제거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칼로 정교하게 도려낸 “상실한 대상”에 대해 곧 멜랑콜리의 이중적 심리에 빠지게 되는데, 우연히 창문 바깥에서 서서 사라진 예수의 자리가 충만한 실내의 빛으로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찰나를 경험하면서 그렇게 현실의 공백이 구축해낸 “텅 빈 형태”가 지닌 시각적 이중성에 몰두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여느 때처럼 경험할 수 있는 물질적인 빛의 실체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오히려 불완전한 시각 경험에 대한 냉소로부터 한 발 물러나 현실에서의 그러한 실패와 결여가 시사하는 비극을 다른 차원으로 변형시켜 새롭게 욕망하려는 응시에 대한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마치 파괴된 피에타 도상을 현실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고 멜랑콜리한 상실의 반복으로 끊임없이 대체해 놓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수면 상태의 뇌파를 일컫는 세타파의 진폭을 이용해 그 그래프 값을색면 회화로 환원시킨 작가의 시도는, 일시적인 죽음과도 같은 수면과 무력한 우울 상태의 인간의 정신 활동을 화려한 색의 스펙트럼으로 변장시켜 놓은 일종의 극단적인 심리적 위장을 보여준다. 또한 <세타파 Theta wave>(2017) 페인팅이 보여주는 스펙터클한 색의 분산 효과는, 작가와 나눈 대화에 따르면, 레퀴엠 같이 일종의 죽은 이를 위한 성스러운 음악이나 상여의 화려한 행렬처럼 상실과 부재에 대한, 즉 더 이상 볼 수 없는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새로운 강박적 응시의 충동을 환기시킨다. 또한 자개와 렌티큘러로 제작된 각각의 평면 작업들은, 바라보기의 불완전함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작가는 그 부재와 공백으로 겪게 되는 불안을 가장 시각적이고 미학적인 것들로 전환시키기를 시도한다. 때문에 이번 전시 《아름다운 시절》은, 지금은 가고 없는, 즉 현실에서의 부재와 상실을 떠오르게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면서도 다시 그 공백과 마주할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응시의 쾌락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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