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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5]

2023.06.20

[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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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여행 출발 한 달 만에 모스크바 붉은 광장 도착

카잔으로 가는 길에 만난 무지개 *재판매 및 DB 금지

6월 첫날 우리는 최초의 러시아인 도시이며, ‘시베리아의 관문’으로 알려진 투먼(Tyumen)으로 향했다. 옴스크에서 에카테린부르크 중간 위치인 투먼은 대부분 지나쳐 가기 쉬운데, 우리도 지나쳐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긴 길 가운데 점심으로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 가자고 했고, 윤 작가가 트럭 간이 휴게소 같은 곳에 정차했다. 물을 끓이고 감자와 양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기다리다 면과 건너기 수프를 넣는다. 밥을 비벼 먹을 생각으로 국물을 자작하게 끓이는 센스를 잊지 않아야겠지.

한참을 끓여 이제 짜장 소스만 부어 비비면 되는데, 어마어마한 큰 트럭이 들어와 칠공이 옆에 떡 하니 주차를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배가 불뚝한 러시아 아저씨가 내리셨는데, 윤 작가와 뭐라뭐라 손발짓에 이어 뿌연 차 먼지 위에 그림도 그리는 것이 아닌가. 점심밥을 차려놓고 넋이 나가 한참을 쳐다보니, 둘이 아주 찐하게 악수까지 한다. 어라~. 흐뭇한 표정으로 차에 타 그사이 불어버린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으며, 윤 작가 왈 “나 투먼 가야겠어. 거기 온천 수영장이 있대.” 온천 수영장이라, 와~ 가자! 가자!!

그래서 우리는 투먼으로 왔다. 투먼미술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온천은 2일 아침에 가기로 하고 미술관부터 찾았다. 투먼미술관은 제법 큰 편이었고, 여러 가지 전시가 있었는데 표를 살 때 “무엇을 볼꺼냐”고 물으면, 우린 무조건 “다 본다”이다. 왜? 내가 또 언제 여길 오겠냐구.

속 시원히 다 보고 나와, 뉘엿뉘엿 지는 해에 맞춰 차박지로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 주차장을 찾았다. 도시로 올수록 무료 주차가 힘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옴스크에서 괜찮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투먼에서는 꼬레이츠(카레이스키), 즉 칠공이와 우리를 보고 ‘한국인’이라고 알아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살인미소를 날려주며 인사를 했고, 그들도 의문을 품은 표정을 바지주머니 안으로 넣은 듯했다.

그러나 다음 2일 아침. 잘 자고 일어나 차 문을 열고 나가는데, 아파트로 들어가던 러시아 부부가 불쾌한 표정으로 ‘꼬레이~ 꼬레이~’ 뭐라 하며 액션을 날리시는 게 아닌가. 대략의 느낌으로 ‘한국은 대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고 러시아 전쟁을 옹호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왜 그런 러시아에 들어와 있느냐’는 거지. 러시아 대부분의 분위기는 전쟁에 상관없이 일상적이며, 우리에게 적대한 적 없었고, 친절한 러시아분들이 많다. 그러나 곳곳엔 알파벳 ‘Z’, 우크라이나 전쟁을 옹호하는 표식들이 자주 보인다. 많은 식당의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며 이곳이 전쟁 중임을 느끼게 해준다.

투먼시의 야외온천장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는 오래 머물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와 친절하고 고마운 러시아 트럭 아저씨가 가르쳐준 야외 온천수영장으로 향했다. 그곳의 따뜻한 물과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러시아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나쁜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우랄지방 최대의 중공업 도시 에카테린부르크(Yekaterinburg)를 향해 출발했다. 에칸테리부르크에 도착해서 우리가 묶을 비지니스호텔을 찾아나섰지만, 역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시내의 교통에 진땀을 흘렸다. 어찌어찌하여 미리 검색해둔 호텔에 도착, 이틀을 예약했다.

호텔은 시내 중앙에 위치해 도보나 버스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도착한 날은 좀 일찍 쉬었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예카테린부르크를 둘러봤다. 아침 일찍 호텔 옆의 산책길에 만난 공원 중앙엔 러시아스러운 큰 분수대가 있고, 아침 햇살을 즐기러 나온 많은 러시아인도 공원 따라 흐르는 하천 변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카페에서 모닝커피 한 잔 후 미술관으로 향했다.

에카테린부르크에는 여러 미술관이 있어서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먼저 Galereya sinara Art를 둘러보고, 거리를 지나 Ural Vision Gallery, Fine Art Museum을 연이어 찾아갔다. 러시아 미술관들은 대부분은 고전미술 작품들과 전쟁 혹은 종교에 관한 것이 많았다. 이곳 에카테린부르크 Fine Art Museum의 여러 전시장 섹션 중 한 곳에서도 전쟁영웅을 환대하는 파티 장면을 연상케 하는 대형 그림과 그 맞은편에 가족의 죽음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는 작은 그림을 배치한 구성을 보고 깊은 여운을 받았다.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에카테린부르크에 와서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손을 꼽으라면 단연 그 작은 그림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예카테린부르크의 Fine Art Museum에서 만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작품'은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 듯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관을 다 본 후 호텔로 돌아오다 외관으론 작은 개인 갤러리처럼 보이는 언더그라운드 박물관(мзей Андеграунда)을 발견했고,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갔으나 어마어마한 컬렉션에 깜짝 놀랐다. 숨어 있는 공간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많은 컨템포러리 작품들도 볼 수 있었으며, 록페스티벌도 주관하고 있어 티켓을 구매해 자유롭게 맥주도 마시며 갤러리 공터 무대의 연이은 록밴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온종일 미술관을 돌아다닌 통에 발은 퉁퉁 부었지만, 예카테린부르크의 두 번째 밤은 너무도 예술이었다.

다음날 다시 카잔으로 떠나기 앞서서 ‘피의 성당’에 들렸다. 피의 성당은 혁명으로 처형된 재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 등 11명이 그곳에서 한꺼번에 총살되어 죽음으로써 후에 성인으로 인정받았고,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세상의 모든 마지막은 왜 이리 고되고 안타까운 걸까. 성당 입구 앞 니콜라이 2세 황제와 그의 가족사진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 슬픈 사연을 뒤로하고 우리만의 예술 도시 예카테린부르크를 떠나, 러시아와 동유럽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카잔(Kazan)으로 길을 재촉했다. 우리에겐 ‘2018 러시아월드컵’ 개최 도시 중 한 곳으로 잘 알려진 카잔에 향하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대략 4가지 방법인데, 앞서간 다른 일행들의 곡소리가 자자 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내비게이션이 산으로 안내해 가보니 자갈밭으로 200km를 왔다든가, 배를 타고 왔다는 등 여러 무용담이 난무했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가족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예카테린부르크의 피의 성당 *재판매 및 DB 금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믿고 왔던 2GIS가 약점을 들어내면서, 우리는 새로운 GPS 내비게이션 Yandex와 구글, Mapsme까지 총동원하여 핸드폰으로 켜두고는 출발했다. 처음에는 잘 가더니만 길이 좁아지면서 트럭 아저씨들이 하나둘 줄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차만 덩그러니 자갈길에 들어섰을 때 ‘정말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세상에 믿을만한 내비게이션이 없네, 하면서 진땀을 뺐다. 어떻게든 뭐 카잔으로 가기만 하면 되겠지만, 날은 슬슬 어두워지고 카잔에 도착하기 전 하루를 길어서 자야 하는데, 그 많던 트럭카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작은 도시가 나타났고, 자동차 정비소 같은 곳이 보이자 윤 작가가 차를 세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핸드폰 내비게이션들을 비교 분석해봤으나, 결국 정비소 직원에게 묻기로 했다. 용감하게 무작정 들어가 난감한 표정으로 ‘카잔~’을 외친 다음 핸드폰 내비들을 주르륵 보여줬다. 두 명의 직원들이 뭐라 뭐라 그러더니, Yandex 내비게이션을 손가락으로 턱 가리킨다. Yandex는 인공지능 제어 로봇택시를 모스크바에 출시했다고 들었었다. 그래, 요걸 믿고 가란 거지. 그럼 카페는 있어? 가다가 자야 한다고! 그랬더니 있단다. 오호~ 좋아. 그럼 가보자!

한참을 가도 가도 카페가 없었고, 러시아에서 만난 건 쏟아지는 비였다. 그러나 그때 무지개가 나타났다. 세상에서 제일 크고 선명한 무지개가 세상에서 제일 큰 하늘에서 세상에서 제일 넓을 것 같은 땅으로 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두 개!!! 세상에서 제일 작고 좁을 것 같은 길에,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길 위로 달리는 우리를 환영하듯 너무도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의 무지개가 실화냐?! 아~. 이렇게 행복하다니.

다시 카잔으로 곧장 향했다. 세수도 안 하고 양치질도 잊은 그 모습으로 그대로 카잔에 도착해 카잔 궁전을 둘러본 후 곧바로 다시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렇게 힘들게 온 카잔인데 하루도 안 있고 떠나기는 아쉬웠지만, 어차피 카잔으로 오는 길은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이기도 했다.

유라시아 횡단여행 한달 여 만에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재판매 및 DB 금지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이며, 지금 현 러시아 상황에서 매우 예민한 도시이기도 한데, GPS 교란으로 모스크바에 들어가기도, 들어간 후 다시 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금 긴장했지만 큰 도로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주고 있었고, 앞서 도착한 팀들의 정보로 모스크바를 향해 가는 길은 무리 없이 잘 갈 수 있었다. 6월 6일 드디어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한국에서 5월 9일에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출발했고, 한 달 조금 안 되어 모스크바에 도착한 것이다. 참 부지런히도 왔구나 싶었다.

이제 모스크바에선 좀 느긋하게 도시를 둘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캠핑장을 찾았고, 좋은 정보 덕분에 시내 한가운데 있는 숨어 있는 숲속 캠핑장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미로 속에 숨겨둔 장소같이 화려한 도시 중앙에서 갑자기 숲길이 보이더니, 우리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아름다운 아름드리 숲 좋은 도로를 따라 가면 캠핑장이 있었다. 우리는 일단 4일을 예약했고, 나중에 9일 아침 다시 3일을 더 연장했다. 결국 모스크바에서 꼬박 일주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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