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Episode[비평의 플랫폼]'화가, 그리는 사람 아닌 행동하는 사람?'

2015.10.20

[머니투데이] 구나연 미술비평가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10>추상 회화와 노동.

화가들이 근대 유럽 사회의 변화에서 가장 먼저 눈 뜬 것은 자신들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미술을 가능케하는 요소로 광학과 카메라 등 기술적 제반 조건에 주목했고, 궁정이나 아카데미 같은 제도적 규범들을 거부했다. 나 자신을 순수히 표현할 수 있는 장소로써 미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촉각적 재현과 결별한 내면의 추상화된 표현은 자유로운 개별자가 캔버스 위에 행하는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었다. 이에 따라 작품을 그리는 작업(work)의 의미 역시 변화했다. 그들의 작품은 과거처럼 주문에 의해 생산되는 장인의 공들인 산물 아니었다. 그것은 맞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유일무이한 것으로, 외부의 통속적인 세계와 차단된 미술의 내밀한 고유성을 지닌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에 따라 회화는 형과 색, 비율과 구성 등 형식의 근본적인 요소들이 각각의 독립적 가치를 지기게 되었고, 급기야 캔버스 위에 이를 실현하는 행위(action) 자체도 중요시되었다. 특히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잘 드러나듯이, 화가는 더이상 '그리는' 사람이 아닌 캔버스 위에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회화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보편적인 노동의 개념과 달랐다. 그것은 외부 세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였고, 캔버스는 그 행위의 운동장(arena)과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을 현대의 사회적 행위들이 가진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는(Meyer Schapiro)는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적 행위가 삶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며, 노동에서의 자발성과 자기 확신의 결여, 좌절, 그리고 공허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예술의 추상적 자발성과 열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즉 미술에서의 노동은 노동의 현실적 위축을 넘어선 자유의 행위이며, 미술의 표현적 요소들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예술가가 노동의 수동성을 극복한 능동적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상 회화가 지니는 특징들은 일하고 행동하는 일상적 경험과 상반된 특성들을 응집한 수단이자 발화로 간주할 수 있다.

이렇게 추상 회화는 우리의 보편적 노동에서 벗어난 내면의 자율적 표현이라는 가치를 통해 생산의 일반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치 숭고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은 예술의 행위를 우리의 노동과는 다른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했고, 화가의 활동은 실용적 경제 활동으로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는 비단 화가 뿐 아니라 전반적인 예술 활동에 관해 널리 퍼진 통념이지만, 상류 계층이 생산적 노동에서 '면제'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생산적 노동을 '거부'하고, 추상적 가치를 고수하는 탈사회적 군상으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추상 회화가 숭고한 행위의 산물인만큼 세속의 시장성에서 벗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추상 회화는 그들의 노동을 자유와 표현, 내면과 행위의 개념으로 전환하고, 보편적 재화와 거리를 넓힐수록 엄청난 상품성을 획득해왔다.

결국, 추상 미술은 그들이 획득한 자유에 대한 흔적과 그 과시라는 독특한 노동 과정을 강조하며 시장에 등장하고 거래된다. 따라서 추상 회화에서 일차적으로 조성되고 획득되어야 하는 조건은 일상적 노동 환경과의 괴리이다. 화가의 작업은 노동(labor)이 아닌 행위(action), 생산(production)이 아닌 표현(express), 수동(manual)이 아닌 우연(accident)으로 설명될 때, 이들의 작품의 교환 가치는 상승된다. 또한, 미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추상 회화는 외부 세계의 현실적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내재한 채 그 상대적 가치에 위치하면서, 현실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추상 회화의 황금기에는 자본주의의 욕망과 추상 미술의 가치 사이에 우호적 관계가 형성된다. 추상 회화의 시대가 이미 미술사 속으로 사그라든 지금도 그들의 회화는 미술 시장의 최정점에서 거래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추상 회화가 만들어 놓은 노동의 개념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술은 지금도 보통의 노동이 아닌 특별한 작업으로 취급받는다. 이는 때로 엄청난 가치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적절하고 정당하지 못한 가치로 절하되기도 한다.

한 작품의 가격이 작품의 중요도를 대변하거나, 예술가는 가난한 것이 당연하거나, 때로 보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항변할 길 없는 극단의 일들도 빈번히 일어난다. 우리는 현실과 사회와 무관한 미적 활동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던 과거의 미술이 만들어 놓은 많은 현실과 직면한다. 이제 와서 추상 회화가 기실 매우 사회적이었고, 정치적이었다고 반문하는 것 이외에, 그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가치와 변화가 지금 우리 미술계의 현실에 어떻게 반영되어 그릇된 상태로 남아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편집자주:
‘비평의 플랫폼’은 공연, 전시, 출판, 미디어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이슈를 문화비평의 시각으로 의미를 분석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비평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평의 플랫폼’은 인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화비평웹진 '플랫폼'(platform.ifac.or.kr)에 게재된 글을 신문기사의 형식에 맞도록 분량을 줄인 글입니다. '플랫폼' 홈페이지에 오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