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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16]

2024.01.26

[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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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바티칸미술관에서 피사의 사탑까지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현대미술관은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외관부터 실내의 전시물까지 로마가 왜 예술의 중심도시인지 잘 보여준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세상의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에 도착했다. 이틀 후 한국에서 올 조카아이들을 만나기 전 보르게세미술관(Museo e Galleria Borghese)을 찾았다. 보르게세미술관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보르게세 공원 안에 있었다. 마침 비가 조금 내린 후라 그런지 초록색의 잔디와 푸른 나무들의 색이 마치 그림 속에 초대된 듯 더욱 아름답다.

이 긴 여행에서 다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이름 모를 많은 작품을 만났기에 시간의 가치가 새삼 깨닫게 된다. 여행을 즐기기 위한 그 시간의 가치가 단지 미술관에만 있지 않고, 순간순간마다 마음과 즐김에 있음을 안다. 미술관 매표소의 긴 행렬마저 보람이며 추억이다. 자연을 보라. 시간을 즐기고 커피를 마셔보자. 눈 앞에 펼쳐진 지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속에서 내가 자유롭게 서 있음을 의식한 순간, 진정한 여행자가 되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무언가를 얻어갈 준비가 된다.

이탈리아 로마 국립현대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 e Contemporanea) 실내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로마에는 정말 많은 미술관이 있다. 우리는 보르게세 공원의 또 다른 미술관 ‘Museo Carlo Bilotti’에도 들렀다. 이 미술관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도 나왔던 작가의 작품을 친견하다니 무척 흥미롭다. 작은 규모에 비해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감흥을 선사한다. 짧은 시간 둘러보고 국립현대미술관 ‘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 e Contemporanea’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술관 정면에 검은 사자 조각상들을 위시해 큰 규모의 건축물과 로마가 예술의 도시임을 잘 보여준다.

이틀을 보낸 후 드디어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조카들을 만났다. 장시간 여행길 중간 며칠을 함께 보내려고 로마를 찾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다.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저녁을 보내다가 로마의 특별한 밤을 또 하루 보냈다. 다음날 첫 순서로 바티칸미술관(Musei Vaticani)으로 향했다. 바티칸미술관은 정말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꼭 미술인이 아니더라도, 천주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 중에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바티칸시티 미술관의 출구. 세상의 중심처럼 경외로운 미술품들이 집약된 미술관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볼 수 있는 시스티나 대성당까지 예약해뒀다. 많은 인파를 따라 미술관 안을 누볐다. 도저히 미술관의 거대한 구조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컸고, 사람들이 가는 방향대로 천천히 따라 이동하며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고 거대한 작품들과 번쩍번쩍 빛나고 화려한 공간들, 정말 많은 예술품 앞에서 ‘대단하다’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마저 낯선 풍경들과 문화, 그리고 시차를 극복하기에 충분한 자극이었다.

바티칸미술관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역시 ‘천지창조’ 홀이다. 역사적인 작품 앞에선 장난기 가득했던 아이들마저 숙연해지고, 집중하듯 빠져들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점은 아쉬웠다. 그 엄숙한 분위기와 ‘천지창조’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 속에서 이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길, 아이들의 가슴속에 새겨지길 바라본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저녁 자리에서 각자의 여운을 나눴다. 그 자체가 즐거운 작은 파티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수다에 즐거웠고, 잠시나마 마치 이곳이 한국인 것처럼 타임머신에 탄듯했다. 가족의 힘이다!

로마의 상징적 건축물 콜로세움(Colosseo). 전쟁 포로인 검투사와 맹수의 전투 경기가 벌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로마 속에는 많은 유적지가 남아있다. 우아하게 도시와 어우러져 제멋을 발하는 유적지가 부러울 정도다. 콜로세움(Colosseo)을 시작으로 티투스 개선문(Arco di Tito), 팔라티노 언덕(Palati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 이르는 동선으로 로마의 역사와 이야기를 듣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흥미로운 설명에 4시간이 어찌 흘러갔나 몰랐을 정도였다. 온몸으로 로마를 즐겼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손을 먹는다는 ‘진실의 입’,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트레비 분수’도 잊지 않았다.

로마에서 3시간 거리의 피렌체로 향했다. 마침 저녁에 도착한 덕분에 피렌체 중앙의 야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건너 좁은 골목에 불 켜진 골동품 샵들을 돌아봤다. 운치가 그윽한 불빛의 피렌체 도심을 시공을 초월한 매력이 넘쳤다. 다음날은 피렌체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부터 찾았다. 거대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성당의 외관과 단아한 성당 내부가 묘하게 대비를 이뤘다. 50센트에 초 한 개를 올려 소원을 빌 수 있었다.

피렌체 대성당. 거대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성당의 외관과 단아한 성당 내부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피렌체 우피치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을 빼놓을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니, 당연히 피렌체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대다수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이다. 대표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보티첼리 명작 ‘비너스의 탄생’도 여기에 있다. 역시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 마르티니의 ‘수태고지’…. 힘든 내색을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명작의 퍼레이드에 혼미할 정도다.

피렌체에서 이틀을 보내고, 일행은 베네치아로 향했다. 이탈리아의 북쪽으로 향하는 동안 날씨가 점점 추워졌다. 베네치아 바다의 바람 역시 차가웠다. 베네치아의 매력은 수상버스다. 베네치아 해상풍경과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심 야경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Collezione Peggy Guggenheim)에 당도했다.

구겐하임 아트컬렉션은 독보적이다. 마르셀 뒤샹을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었다. 출입구가 바다와 맞닿아 있고, 오밀조밀 공간의 구획이 아주 흥미로운 동선을 연출해낸다. 피카소, 미로, 샤갈, 베이컨, 톰블리 등 시대를 앞서간 현대미술가를 알아본 페기 구겐하임의 안목도 대단하지만, 배포가 큰 후원 덕분에 지금의 현대미술가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컬렉션의 힘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행복함을 전하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불현듯 몇 년 전의 이건희컬렉션이 전한 반향이 스쳐 간다.

누구든 많은 경험으로 얻은 것은 그 무엇에 비유할 수 없는 큰 힘을 발휘시킨다. 페기 구겐하임의 경우가 그랬듯, 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나를 존중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지지하는 동반자를 만나는 것은 행복한 행운이다. 작품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어려움 속에서 힘을 실어주는 미술애호가의 역할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지난 2012년 나와 윤 작가를 그렇게 지지해주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태영 대표님이 떠올랐다. 지금도 마음이 좋은 날이나 어려운 상황이 올 때면 그분을 생각한다.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순간 선뜻 도움의 손길은 결코 잊힐 수 없는 감사함이다.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 *재판매 및 DB 금지

베네치아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우리는 피사로 갔다.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피사의 ‘이탈리아 ZTL’을 피해 주차한 후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 피사의 사탑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도 확연히 기울어 보이는 탑의 모양에 걸음이 빨라졌다. 재미있는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관광객 사이를 가로질러, 제일 좋다고 생각되는 포인트에서 우리도 사진을 남겼다.

이제 다시 로마로 향해야 한다. 로마 근처 바닷가 라디스폴리(Ladispoli)에서 바다가 보이는 집을 구해 조카들과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추억의 밤을 만들었다. 앞으로 10년 뒤 다시 여행을 함께 하자는 약속과 함께. 아침에 바닷가를 잠시 산책하고, 피우미치노 공항 근처의 고대 유적지 오스티아 안티카를 돌아본 뒤 공항에 들어섰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아이들은 떠났다. 다시 남겨진 우리, 아이들이 들어간 입구를 한동안 서서 바라만 봤다.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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