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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13]

2023.11.27

[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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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에서 아이프칠드런 엔젤아티스트 예술나눔 감동

튀르키예 가지안 테프 이스켄데룬의 '한국친선마을'에서 아이프칠드런과 대한적십자사 협력으로 예술나눔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2023년 5월 9일 한국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튀르키예에 온 것은 6달 만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시작에 앞서 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았고 후원도 이루어졌다. 그중 여행 기간에 대한적십자사의 로고를 차량에 부착한 후원은 우리가 난처한 일이 생긴 상황마다 큰 힘이 되어줬다. 뜨거운 날씨에 4일간 씻지도 못한 상태로 스위스의 한 캠핑 장에 도착했지만, 자리가 없어 너무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적십자 로고를 본 캠핑 장의 주인은 ‘적십자가 스위스에서 시작된 것을 아느냐’며, 없던 자리를 금방 만들어줬다.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은 유럽에서 조약 가입국 간 국경 검문을 철폐해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범죄 수사도 협조하도록 하는 조약이다. 솅겐조약 국가 90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비솅겐조약 국가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몰도바, 북마케도니아 그리고 튀르키예의 국경을 넘을 때 국경검문소에서도 적십자 로고의 덕을 봤다. 이처럼 낯선 여행자의 이미지를 대한적십자사는 호의적으로 만들어주었고, 지나온 유럽 17개국의 낮과 밤을 안전하게 만들어 준 것 역시 ‘Red cross korea’의 힘이라 믿는다.

지난 글 이후로 체코와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거쳐 슬로바키아와 폴란드, 다시 독일의 베를린으로 갔다. 특히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그러니까 폴란드 동남부 작은 도시인 오시비엥침(Oswiecim)의 독일 나치 시절 집단 수용소였던 곳을 갔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잔혹함에 놀랐다. 사람이 어디까지 끝을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우리의 역사도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강제 식민 통치를 겪었다. 일본은 한국의 모든 권한과 소유를 박탈하고 민족의 정신과 문화적 자존감마저 말살시키려 하였다.

이런 역사를 가진 조국의 관점에서 본 폴란드의 집단 수용소는 매우 가깝게 다가왔고, 더욱 절실히 전해졌다. 어마어마하게 큰 수용소를 보는 내내 그 아픔이 무겁게 전해져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독일은 부지런히 반성의 길을 걸어왔다. 베를린에서도 그 자취를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역사를 바로 알리고 반성하며, 아직도 그 일은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인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국가 간의 이익을 앞세워 힘을 과시하며 전범국가의 면목을 지키고 있다.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기웃대는 비뚤어진 자세가 볼썽사납다.

사람마다 마음가짐이 정말 다르며, 사람의 힘이 참 무섭기도 하다.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행복과 불행이 갈라진다. 세계는 지금 아프다. 여행 초기 우리는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들어왔다. 만나는 많은 사람이 북한을 통해 육로로 여행하지 않는 이유를 묻기도 했다. 한국과 북한의 경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그 밖의 모든 갈등, 그리고 자연재해로 인한 전쟁 같은 상황들이 있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대한적십자의 후원으로 여행을 시작한 우리는 21개국 120개의 도시를 지나 튀르키예 가지안 테프에 도착하게 되었다.

튀르키예 가지안 테프에 가까워질수록 대지진 피해의 참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건물들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재판매 및 DB 금지

그곳에서 우리가 받은 선한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주고 싶었다. 튀르키예에 도착했을 때 10명 중 다섯 명은 ‘튀르키예와 한국은 형제’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다. 튀르키예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대규모 파병하면서 희생자도 미국, 영국 다음으로 컸다. 튀르키예는 그 일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2023년 2월 6일, 형제 국가인 튀르키예의 중남부지역과 시리아 북서부에 규모 7.7 및 7.6의 대규모 강진이 있었다. 튀르키예만 사망자 50,096명과 부상자 108,272명이 발생했다. 535,000채의 건물이 파손되어 26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고 텐트나 컨테이너 임시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지난 4월 한국의 대한적십자사도 튀르키예 지진 재건복구지원단을 파견하고, 튀르키예의 카라만 마라쉬 파잘직에 국제적십자사연맹, 튀르키예 적신월사와 협력하여 1,100동의 컨테이너 단지를 조성하였다.

이 컨테이너 단지는 ‘튀르키예-한국 우정의 마을’로 이름 붙여졌다. 전체는 2,000여 명 이상이 거주하고, 5세부터 18세 사이의 청소년이나 아동도 약 900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행 출발하기 전 그곳 카라만 마라쉬에서 아이프칠드런과 대한적십자사의 예술나눔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카라만 마라쉬의 학교 시설이 채 완공되지 못해 아쉽게도 예술나눔 프로젝트 미술 수업은 또 다른 지진 피해자들의 컨테이너 거주 주택이 모여있는 이스켄데룬(İskenderun)의 ‘한국친선마을’에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한국에서 아이프칠드런의 김윤섭 대표와 최은경 사무국장, 이리교 기획팀장을 비롯해, 엔젤아티스트 4명(김남표·두민·남지형·아트놈)의 작가와 튀르키예의 가지안테프에서 상봉했다. 윤종석 작가와 나 역시 엔젤아티스트로 합류한 것이다. 비로소 대한적십자사의 현지 안내를 통해 튀르키예 1차 예술나눔 프로젝트를 위한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11월 11일 늦은 저녁에 우리는 가지안 테프의 숙소에 모여 다음날 첫 수업을 위한 회의를 길게 이어갔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일정이지만, 아이프칠드런은 첫 번째 국제 예술나눔 프로젝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꼼꼼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온 점에 놀라웠다. 작가별 성격과 선호에 따라 수업방식과 업무를 분담했다. 이제 준비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12일 아침 6시, 다시 최종 점검 회의를 마치고 온갖 준비물과 함께 이동 버스에 올라타 2시간 30분을 달려 이스켄데룬의 컨테이너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도 쉴 새 없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느라 모든 팀원이 분주했다. 마음은 벌써 현장에 도착해 있었고 튀어나올 듯 뛰는 심장에 기분이 이상했다. 오는 내내 눈에 밟히는 무수한 건물 잔해와 반쯤 무너지고 버려진 집들로 유령도시의 황량함이 전해졌다. 모든 이들은 서로의 눈만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

마음과 마음이 통했는지 이스켄데룬에 도착하자 벌써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린 눈방울에 설렘과 기대감이 느껴졌다. 다시 엄습하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곳 컨테이너 마을은 튀르키예 한인회총연합회가 해외 한인단체와 한국 시민단체들의 성금을 모아 조성된 곳이다. 수업하기 전 이곳 아이들과 주민을 대할 때의 주의할 사항을 전해 들었다. 며칠 전에도 4.6의 지진이 있었고, 이런 여진이 다시 대지진으로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이 크다고 한다. 아이들의 뛰어놀 공간이나 어떤 놀이의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항상 아이들이 힘들어하며, 이번 미술 수업에 많이 기대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

너무나 힘겨웠을 지진 피해의 트라우마를 잠시나마 예술수업으로 위안을 받은 아이들과 함께 미소 짓는 박성수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 수업을 위한 공간은 참으로 열악했다. 아직 공사가 덜 끝나 수북한 먼지와 쌓인 건축자재들을 치워야만 했다. 간신히 마련한 공간에 수업할 테이블과 의자 역시 아이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한마음으로 쓸고 닦고, 책상이 모자란 공간엔 여분으로 챙겨온 돗자리를 깔아 그럴듯한 임시 교실을 만들어냈다. 정말이지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이것은 욕심 없이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쏟아내려는 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첫 수업은 1시부터 이루어졌고, 시간은 소나기 같았다. 모두의 얼굴과 손발 온몸이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표정들은 더없이 밝았다. 상기된 표정들에서 행복감이 전해졌다. 처음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이었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음악과 함께 춤추며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휴식 시간엔 함께 공을 차고 …. 수업이 이어지는 동안 신기루 같은 예술의 힘을 실감했다. 돈이나 물리력으론 해결할 수 없는 위로의 힘을 예술이 지니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 대부분이 형제자매가 참 많았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서로 보지 못한 채로 손만 잡고 버티다 3일 만에 구조된 아이들 이야기도 들었다. 집을 잃고 생계를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다. 엔젤아티스트 두민과 남지형 작가가 진행한 ‘집 만들기’ 수업에서 아이들이 예쁘게 만든 집이 다시 무너질까 봐 이층으론 만들지 못하더라는 얘기에 모두의 마음이 무너졌다.

수업시간이 끝났어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미소에서 밝은 희망의 내일을 기대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들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수업 전반을 즐겼다. 나누어주는 작은 선물들도 기뻐했다. 작은 마음과 실천이 모여 이 같은 공감을 나눈다는 것이 기적 같았다. 대지진 속에 살아남은 그 기적처럼 앞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기적도 찾아오길 바랐다. 마지막 수업 날에 한 아이의 “다시 언제 올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모두 숙연해졌다.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 이 짧은 만남에도 저렇게 큰 기쁨을 보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또 볼 수 있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지안 테프를 떠나기 전, 카라만 마라쉬 파잘직의 ‘우정의 마을’을 방문했다. 아이프칠드런과 대한적십자사는 지속적인 예술나눔프로젝트를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워낙 컨테이너시티 단지가 커서 학교와 운동장 등 부대시설들도 마련되고 있다. 아이프칠드런은 시설들이 완공되면 내년 봄 시즌에 예술나눔 수업을 위해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튀르키예 적신월사 관계자들이 수업이 가능한 공간들과 부대시설들을 안내해줬다. 함께 한 팀원의 눈빛들이 다시 빛났다.

돌아오는 내내, 다시 숙소에서 회의할 때도 서로 앞다퉈 내년에도 합류하겠다며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다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기회는 기적이다!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고, 다음을 준비하는 아이프칠드런이 있으니 다시 올 수 있겠다. 이제 아이프칠드런과 엔젤아티스트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에 아쉬워하며 다시 한달살이 할 안탈리아로 향했다. 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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