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구리로 나무를 만들며 자연의 질서 발견하죠"

2015.09.30

[머니투데이] 김유진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오는 10월2~25일 서울 겸재정선미술관에서 개인전 '나무, 시간이 보이는 풍경'을 여는 이길래 조각가(54). 그는 올해 제6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사진=박찬하 인턴기자

[인터뷰]올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 이길래 조각가…10월2~25일 겸재정선미술관서 개인전

지난 25일 서울 중구 퇴계로 갤러리 스페이스 아트1.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기한 설치작품이 눈을 사로잡는다. 분명히 금속으로 만든 소나무인데, 갤러리 한쪽에서 푸른 자연의 기운을 내뿜으며 전체 공간의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나무의 힘도 느껴진다.

이 작품은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나 숲이 세상의 전부인 줄만 알았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만든 '소나무 2015-1'이다. 광주로, 또 서울로 유학생활을 하면서 소년은 '도시 남자'가 돼 갔지만 마음속에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그가 잡는 재료들은 전부 자연에서 나온 것이었고, 쌓아올리는 형상도 고대 유물이나 자연물처럼 원초적이었다.

"항상 시골이 그리웠어요. 그러다 보니 표현이 투박하고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을 많이 하게 됐고요. 자연의 요소들, 예를 들면 옹이가 주는 느낌이나 뿌리 모양이 주는 역동성. 이런 요소들을 잡고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작업을 해요."

내면으로만 볼 수 있는 나무의 형상을 짓는 조각가, 이길래 작가(54)가 10월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올해 제6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 기념 전시회 '나무, 시간이 보이는 풍경'을 연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은 중견 작가 중 한국을 대표할 것으로 기대되는 작가 1인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앞서 조각 정현, 한국화 석철주, 서양화 이배 작가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이 작가는 나무를 만들기 전에는 굴 껍데기, 옹기파편 등 재료가 가진 특성에 집중했다. 자연에 가까운 재료들을 작은 점 삼아 선을 만들고, 면을 그리고, 질량을 구성했다. 자연의 구성 원리인 동시에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와도 닿아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흙에서 땅으로, 점에서 선으로, 생성과 응집으로 옮겨오던 그의 작품세계는 나무 표피의 거친 질감에 눈이 가닿으면서 나무에 안착했다. 나무의 껍질을 표현하기 위해 좋은 조각 재료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한 트럭에 무더기로 쌓여있던 동파이프를 발견했다.

이길래 작가는 동파이프를 작게 잘라 타원형으로 만든 뒤 산소용접으로 이어붙여 나무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그는 "동은 세월을 따라 익어가는 재료"라고 말했다. /사진=박찬하 인턴기자

"동은 세월을 따라 익어가는 재료예요. 철은 비바람에 노출되면 썩어버리는데 동은 때가 묻어간다고 할까요. 사람 손을 타면 반질반질해지기도 하고, 약품 처리를 하면 색이 변하기도 하지요. 봄·여름·가을·겨울 변화하는 자연 같기도 하고요."

이후 수년간 동파이프를 1~2cm 자른 뒤 눌러 타원형으로 만들고, 산소용접으로 연결해 나무의 몸체를 만드는 작업을 해 왔다. 그가 만드는 소나무 기둥의 속은 텅 비어있다. 작은 동파이프 조각들은 나무 겉면을 원형으로 두르는 형태로 쌓인다. 나무의 푸른 잎은 동선을 잘라 붙인다.

'산업화'를 연상시키는 인위적인 제작 방식이지만 결과물은 무위(無爲)에 가깝다. 원자가 분자가 되고, 질량이 되어 물질을 형성했다가 다시 분해되는 과정을 거치는 순환의 원리가 연상된다. 그 안에서 동양적인 자연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 작가의 목표다. 이 작가는 "인류를 포함한 자연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리"라고 말했다.

이길래 조각가의 작품 '동물소나무'(왼쪽)와 '인송 2015-1'. /사진제공=이길래 조각가

동이라는 재료의 질감이 주는 특성 때문인지, 그저 나무를 만들고 싶었던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소나무'라고 부른다. 이 작가는 "사실 소나무를 만들 의도는 없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며 웃었다. 오히려 본인은 작품을 소나무로 한정한 적이 없었기에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나무는 자연의 나무를 닮지 않았다. 사슴 같기도 하고, 한 손을 높이 들고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해학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이는 재현을 포기했기에 가능했다. 이 작가는 "작품은 지난 세월의 곡절과 내면의 사색의 결과를 담는 것이지, 이미 있는 것을 다른 재료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작업실이 있는 경기 여주와 가족이 있는 서울을 오간다는 그의 평소 생활은 어떨까. "그냥 단조로워요. 취미도 없고요. 사람 만나서 얘기하고, 술 마시다보면 기를 상당히 소진해요. 작가는 단조롭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쓸쓸해야죠. 무엇보다 사색을 많이 할 것,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예요."

[email protected]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