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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 한 줌의 재가 되다

2015.10.22

[머니투데이]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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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의 그림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화백, 지난 8월 뉴욕 맨하튼 자택서 타계…향년 91세.

뱀과 꽃과 여인을 강렬한 색채로 그려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천경자 화백이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1세.

천 화백의 맏딸인 이혜선씨(70·섬유디자이너)는 지난 21일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며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을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해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렀으며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완료했다.

천 화백이 1998년 미국에 가면서 기증한 작품 93점을 받아 상설전시를 연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이씨가 8월20일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찾아왔었으나 타계 소식을 함구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해 밝히지 못했다"며 "조만간 간략한 추모 절차를 준비할 것"이라고 22일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02년 신축 개관전 '천경자의 혼'을 열고 지난 10여년 간 상설 전시로 진행해왔으며 지난해 8월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로 작품을 전면 교체한 뒤 현재까지 전시를 진행 중이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천 화백은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유를 뒤로 하고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이혼과 불륜, 여동생의 죽음을 거치며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해외 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70~80년대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이국적인 색채를 덧입은 그의 화풍은 그를 독창적인 화풍을 갖춘 여류화가로 거듭나게 했다.

그러나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한 자신의 그림 '미인도'에 대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한국화랑협회 감정에서 진품이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그는 비난을 받다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국내에서 딸 이씨가 사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천씨는 이후 한 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석에 누운 천 화백에 대해 그동안 사망설, 식물인간설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천 화백은 국내의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감흥을 주는 예술가였다. 절친했던 고 박경리 선생은 시 '천경자를 노래함'을 통해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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