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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이병복 무대미술가 "권옥연 화백은 평생 5살짜리 빵점 남편"

2015.12.08

[뉴스1]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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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옥연 화백 (사진제공 가나문화재단)

연극계 원로인 부인, '권옥연 화백 회고전'에서 남편 작업실 재현.

"권옥연 화백은 평생 '5살 아이'로 살았어요. 작업실은 청소를 안 해서 쓰레기더미 속에 쥐가 돌아다녔어요. 작업실에 얼씬도 못 하게 가족들을 막았죠. 그림밖에 모르는 그 철저함이 부러웠지만, 남편으론 '빵(0)점' 이하였어요."

원로 무대미술가인 부인 이병복(88) 여사는 지난 4일 열린 '권옥연 회고전' 기자 간담회에서 "더러운 작업실에서 지내다가 3년마다 다른 작업실을 구해 옮길 때만 청소하러 권 화백의 작업실에 갈 수 있었다. 그 짓을 60년 반복했다"고 고 권 화백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이자 초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고 권옥연(1923~2011) 화백 4주기를 맞아 회화 50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 오는 11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회고전에선 이 여사가 권 화백의 작업실을 재현하기도 했다.

권 화백은 새와 같은 자연의 소재, 정물, 여성 그리고 추상까지 다양한 조형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중간 계열인 청색, 회색, 녹색 등을 여러 번 덧칠해 절제된 색감과 상념에 빠진 듯한 인물화로 유명하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권 화백은 1942년 일본으로 가 미술을 공부했고 1957년에는 이병복 여사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이 여사는 "돈을 아끼려고 바바리코트에 물감을 잔득 넣었더니 무거워서 걷기가 힘들었다"며 "결국 세관에 걸려 출국을 못할 뻔 했는데 사정을 들은 관리가 열심히 공부하라며 그냥 보내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까지 모른 척하며 저 멀리서 딴청하던 인간이 비행기를 타니까 '와, 간다!'며 만세까지 부르더라"고 덧붙였다.

권옥연 화백 회고전 기자간담회에서 아내인 이병복 무대미술가 © News1

아내에게는 창작에만 집중한 권 화백의 존재가 "남편도 아니고 애들 아부지도 아니고 그이, 그 사람밖에 안 됐다"면서도 이 여사는 "그렇게 '에고'(ego)를 부린 것을 이제 이해한다"며 부부 예술가로서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존중했다고 소개했다.

이병복 여사는 무대미술과 의상을 하나의 예술로 끌어올린 연극계 원로다. 그는 1966년 극단 '자유'를 창단해 100여 편의 작품을 공연했다. 부부는 서로의 작품세계를 칭찬하기보다 빈정대기 일쑤였다. '그것도 연극이고 무대냐'는 핀잔과 '그림 그려놓고 창피하지 않느냐'는 대답을 평생 주고받으며 살았다. 이 여사는 "빈정댔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전시에선 이 여사의 손으로 재현한 권 화백의 아틀리에가 마련됐다. 배경으로 40대 시절 권 화백의 사진이 그의 작품과 함께 걸렸다. 이 여사는 개막일에 씻김굿과 살풀이춤 공연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가나문화재단은 설명했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서양식 로맨티시스트였던 권옥연 화백의 작품세계는 서구 전통적 기법과 초현실적 환상을 넘나들었다"며 "거기서 얻어진 작품은 기질적 낭만과 정서로 가득하다"고 평가했다.

무료. 문의 (02)720-1054. 권옥연 화백 회고전 전시장 전경이다.

권옥연 화백 회고전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 가나문화재단)

권옥연 화백 회고전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 가나문화재단)

박정환 기자(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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