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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쓰레기더미 만다라 보셨나요” 쓸모 없는 것에서 ‘쓸모’ 창조하는 원동민 작가

2015.12.08

[머니위크] 정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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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와 담배꽁초, 쓰다 버린 발레슈즈와 다 늘어난 테이프, 죽은 뱀과 비둘기…. 여기 쓸모없는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아트플랫폼 아트1의 초대작가 원동민은 캔버스 위에 그려질 꽃의 재료를 위해 쓰레기 산을, 버려진 봉투를, 화려한 무대 뒤의 박스를 조명한다. 차에 치여 죽은 뱀과 거리 위 생명을 다한 비둘기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쓸모없는 것, 생명을 다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화려함에 취해 작품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작가는 묻는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두려운 미술, 삶으로…





“전 늘 미술 숙제가 두려웠어요. 만화깨나 그리던 친구가 버린 그림을 내 것인양 내곤 했죠. 한번은 수업시간에 자화상을 그리라고 했어요. 학생증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물었어요. ‘그림 따로 배운 적 있니,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그 후로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았어요.”

선생님의 한마디는 작가 원동민의 인생을 바꿨다. 미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손에 펜 대신 붓을 쥐게 했다. 하지만 그림과 함께 걷는 길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세상 모든 아름다움에 관하여’ (2009).

“대학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을 때 버려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외톨이 아닌 외톨이가 됐을 때 모든 의욕이 사라졌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왔어요. 쓰레기통이랑 고장나 뒹구는 컴퓨터, 버려지고 낡은 물건들이요. 제 모습과 비슷했거든요.”

쓸모없는 물건이 그에게 재료가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는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쓸모없어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 안에 담긴 속성이 진짜라는 외침을 캔버스 위에 담고자 했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을 작품 소재로 쓰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외면하던 대상들이 만화경을 통해 아름다운 꽃으로 변했죠.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를, 또 우리를….”

2009년 작 '세상 모든 아름다움에 관하여'는 그의 이러한 생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하얀 꽃들은 쓰레기종량제봉투의 묶음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쓰레기더미는 꽃으로 다시 태어나고, 꽃은 쓰레기더미로 분해된다.

“기본적으로 제 작업은 바라보고, 분해하고, 재조합의 과정을 거쳐서 제작됩니다. 소재가 갖고 있는 원래의 속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특히 쓰레기와 폐기물 등과 같은 사회의 부산물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EYE’(2011).

여러개의 꽃(작품)이 모이자 첫 개인전 ‘꽃, Flower’를 열었다. 담배꽁초로 만든 '정신'과 '만물일체', 헌 발레슈즈들로 만든 'LIFE-IS'(라이프 이즈) 등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대중에 공개했다. 혹자는 그의 그림이 불교의 정신과 닮았다고 말했다. 우연찮게 원 작가의 첫 개인전도 조계사 주변에서 열렸다. 스님들이 그의 그림에 한마디씩을 던졌다.

"마침 조계사 앞에서, 그것도 부처님이 오신 날 즈음에 전시회가 열렸어요. 스님들이 제 작품을 보곤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이미지가 보이는 것에 재밌어 하더라고요. 제목을 보곤 내용을 유추하기도 하고요."

문학평론가 유명종씨는 “‘꽃, 플라워’의 연작은 불교의 윤회의식과 깊이 연결돼 있다”며 “원동민의 어떤 작업은 만다라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윤회사상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생명의 완결이고, 새로운 생의 시작이라는 절실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죽음을 긍정한다. 유씨는 “작가의 작업이 윤회와 만다라를 동시에 품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다.

실제 몇몇 작품은 사물이 아닌 생명의 죽음에 시선을 맞춘다. 그의 2011년 작 'EYE'(아이)는 길에서 죽임을 당한(로드킬) 뱀을 소재로 삼았다.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에서 작업을 할 때였는데 로드킬 당한 동물들이 많았어요. 그중에는 뱀도 있고 족제비, 비둘기도 있었어요. 심하게 부패된 동물들은 냄새가 너무 심해서 작업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작품은 2012년 SBS 드라마 <추적자>의 배경으로도 쓰였다. 겉과 속이 다른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으로 암시를 준 것이다.

◆"왜 그렇게 그렸을까"

원 작가도 독자에게 힌트를 남겼다. 작품 곳곳에 숨은그림찾기를 곁들였다. '라이프 이즈'의 소재가 발레슈즈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도록 배경에 무용가들의 모습을 그렸으며, 담배꽁초로 만든 작품 '정신'은 주제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평소 중앙에 배열하던 규칙마저 버렸다. 그림 맨 위로 꽃을 올려 담배를 피우며 부유하는 정신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학부 때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는 원 작가.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재료에 도전,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협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지금은 계약서작업에 몰두중이에요.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관계를 설정하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이 역시 규칙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계약서가 규칙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와 나의 계약서, 친구와 나의 계약서, 애인과 나의 계약서…. 계약서들을 모아 단편영화처럼 만들고, 쌓아 올리는 등의 계약서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작가로서의 최종 목표는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의문을 던지고 되새겨주기를 소망한다.



“재밌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저 사람은 왜 그렇게 그렸을까’ 한번 보고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나는 작업을 할 수 있길 바라요. 인정받으면 좋죠. 모두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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