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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단순한데 극렬한 '이상한 그림' 김홍주 화백 세필

2015.12.18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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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홍주, Untitled, 2013, 91×117㎝ 2015-12-17

이상한 그림이다. 단순해 보이는데 극렬하다.

5년만에 개인전을 여는 김홍주(70) 화백의 작품이 이상해졌다. 스스로 '묘사를 포기한 세필화'라고 칭한 바 있지만 이번 그림은 '거의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그림이다.

이전에는 꽃잎이나 똥, 밭고랑 같은 형태가 보였지만 이번엔 그 형태마저 없어졌다. 반면 세필화의 흔적은 더 격렬해졌다.

17일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김 화백은 "사소하고 사적인 태도를 그린 것일뿐"이니 "어렵게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특별한 거대 담론이나 이슈가 없어요. 편안하게 보면 잘 볼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그림은 보면 볼수록 편안하지 않다. 붓질의 결들이 하나하나 살아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클로즈업 된다. 돋보기로 보고 그렸다는 그림은 마치 지문을 채취한 것 같다.

김 화백이 항아리같은 작품을 가리키며 "여기에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가 보이지 않나요?"라고 물었을때 겨우 산맥과 나무들이 보이는 것도 같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에서 어떤 풍경이나 형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림은 어떻게 걸어도 상관이 없다. 옆으로 그린 것이지만 세로로 걸어도, 세로로 그린 것이지만 옆으로 걸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림은 이렇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김 화백은 "수요자 취향에 맞춘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울=뉴시스】김홍주 화백 2015-12-17

유진상 평론가는 "평론가로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했다. "국내 미술계 흐름과 달리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그림"이라는 것.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를 나누자면 극사실파다. 1973년 실험예술을 탐구하던 ST그룹 전시와 앙데팡당 전에 참여하며 당시 화단에 널리 퍼져있던 단색 평면 추상에 반하는 극사실적인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거울·창문·화장경대·자동차 문에 인물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려넣는 작업을 했었다. 사물과 환영의 재현의 문제, 그리고 이를 그리는 방식에 대한 한계의 탐구였다.

이후 1980년대 중반에 세필화에 빠졌다. 당시 풍경 시리즈에서는 원근과 명암이 배제되고 풍경화에서 도려낸 듯한 밭고랑 혹은 흙덩이와 같이 사실적 이미지에 기반한 대상들이 증식, 반복 확장되어 전개됐다. 또 1990년대부터 한문의 초서체와 배설물의 이미지를 조합한 서예 시리즈를 선보였고, 2000년 들어 본격화된 꽃이나 나뭇잎을 크게 확대해 그린 속칭 '꽃 그림' 시리즈로 미술시장에서 부상했다.

정체불명의 형상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나이 탓도 있다. 김 화백은 "나이가 드니까 묘사하기가 싫어졌다"고 솔직하게 토로했지만 유진상 평론가는 "회화 자체의 의미보다는 회화성, 물성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좀 포장해 말했다.

그림은 노동집약적이다. 특히 그의 눈이 혹사당했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짙은 쌍꺼풀이 세모형태로 찌그러져있다. "눈이 나빠져 조금 굵은 붓으로 그려볼까 해서 시도한 실패한 작품도 이번 전시에 나와 있어요. 하하."

【서울=뉴시스】김홍주 개인전, 국제갤러리 2015-12-17

"바늘끝으로 긁는 듯한 감각을 게임하듯 즐겼다"는 이번 전시는 김 화백 45년 화력의 절정을 보여준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립적인 행보를 추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번 작품은 어쩐지 '21세기 단색화'같은 모습이다. 파스텔톤 하나의 색으로 이뤄지고 구체적인 형상이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그리기'라는 행위를 거듭해온 그의 작업이 '수행하듯 그리기만 했다'는 단색화가들의 의지와도 맞닿아 있는 것은 우연일까. 단색화 열풍의 부작용일까. 전시는 2016년 1월24일까지.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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