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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고통받는 이에게 '갑옷'을 입히다, 시대를 관찰하는 손종준 작가

2016.01.11

[머니위크] 성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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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성동규 기자

"작가는 시대의 사상가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 편견과 차별로 고통받는 모든 이에게 시선을 둬야 합니다. 대중이 이들로부터 눈길을 거두지 않도록 끊임없이 화두를 던져 종국에는 공감을 끌어내는 것, 이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끝자락에서 기자와 만난 손종준 작가의 일성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작품의 미적 아름다움과 정교한 기법 등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보다는 예술가로서 작품에 담아낼 의미들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의 작가적 소명의식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손 작가의 작품이 차가운 금속을 재료로 사용하지만 그 이면에 녹아있는 뜨거운 인간애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인간 내면의 방어기제 ‘갑옷’으로 형상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벽이 존재합니다. 그 벽은 내가 만들고 있는 도구적 성격의 갑옷과 같은 형상을 띠고 있죠."

손 작가의 작품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방어기제를 '갑옷'으로 형상화한 것들이다. 그는 작품을 구상하거나 제작할 때 설계도를 따로 그리지 않는다. 스스로 작품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사진, 영상,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구태여 자신의 작품 형식을 규정짓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대신 손 작자는 모델이 되는 이와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그만의 아우라를 감지하는 것에 몰두한다.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과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은 깨지기 쉬운 유리조각처럼 예민하다 보니 이들과의 작업은 녹록지 않다.

모델이 될 대상의 내면을 통찰하고 교감을 나누며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짧게는 2~3일, 길게는 수개월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손 작가가 모든 모델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손 작가는 약 10년 전 일본 대학원 유학시절 직장 내 왕따에 시달리던 한 여성과 3개월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특별한 영감을 받지 못해 작품을 포기했던 사례를 비롯해 실현하지 못한 작품이 무수히 많다고 소개했다.

그 무렵은 현재 그의 작품세계가 정립된 시기다. 만연한 개인주의와 획일화된 인간성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시인 도쿄. 그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모습에서 손 작가는 본인의 공격성향을 숨기는 동시에 외부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대학교 졸업작품을 구상하면서 막연한 이미지로 떠돌았던 그의 작품세계가 비로소 골격을 갖춰갔다. 더욱이 손 작가 본인이 한국인으로서 일본사회에서 차별의 당사자가 된 탓에 그의 작품 대상은 필연적으로 정해졌다.

'Defensive Measure0001'(왼쪽), digital print, 110x73cm, 2004와 'Defensive Measure0010'(오른쪽), digital print, 110x73cm, 2006. /사진제공=손종준 작가

◆"갑옷은 그릇이자 깨치고 나가야 할 벽"

"모델이 내가 만든 갑옷을 입음으로써 사회에서 쏟아지는 유무형의 공격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델이 됐던 이들이 갑옷 즉, 마음의 벽을 스스로 허물고 세상으로 한걸음 내디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는 손 작가가 심한 우울증을 앓던 40대 여성과 작품을 완성한 이후 겪었던 경험담에서 비롯된 말이다. 세상 모든 것에 거부감이 유달리 심했던 그녀가 작업을 마친 후 손 작가에게 작품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뜻을 전했다. 그녀는 손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 최초의 모델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델이 돼준 이들에게 어떠한 해결책이나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제시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모델에 대한 자신의 성찰과 고뇌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고 그는 늘 말한다.

그렇기에 손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기 생각을 펼쳐놓을 뿐이다. 물론 모델 스스로 해답을 찾아 사회로 걸어 나오길 바라는 게 그의 진심이다. 그의 작품이 갑옷 형태를 띠지만 사실상 방어기능이 없으며 금속 중 가장 경도가 약한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Defensive Measure0063'(왼쪽), digital print, 110x73cm, 2009와 'Defensive Measure0024'(오른쪽), digital print, 110x73cm, 2007. /사진제공=손종준 작가

작품을 통해 이루고 싶은 그의 또 다른 바람은 대중이 사회적 약자의 감정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모델의 심적 불안과 집착, 사회와 타인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내외적 압박들이 투영된다.

그는 작품에 담긴 모델의 표정과 시선, 몸짓 하나하나를 통해 대중이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이를 바라보길 제안한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경제, 정치, 이념, 성별, 국적 등에 따라 사회적 약자로 내몰릴 수 있는 현실의 냉혹함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작품을 바라보는 주체와 객체의 역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며 작가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식이다. 동시에 무채색의 일상적인 공간, 그 보편적인 곳에서 갑옷을 몸에 두른 한 사람의 모델. 그 이질적인 풍경은 불안전하고 미완적인 우리네 삶을 대변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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