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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페미니즘 사진작가 박영숙이 말하는 '미친년'이란

2016.05.30

[뉴스1] 박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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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oungsook_Mad Women’s #1_c-print_150x120cm_1999 (이하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News1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서 '미친년발·화하다' 전시…페니미즘 논하는 토크 행사 열어.

한국 미술계의 1세대 페미니즘 사진작가인 박영숙(75). '한국 페미니즘 사진의 대모'로도 불린다. 그는 1999년 '미친년들'이라는 전시를 시작으로 2005년까지 '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 '오사카와 도쿄의 페미니스트들' '화폐개혁프로젝트' '헤이리 여신 우마드' '상실된 성' '꽃이 그녀를 흔든다' 등의 '미친년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박영숙 작가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만남로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전시 '미친년발·화하다'를 진행 중이다. 오는 7월2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박영숙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보다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미친년 프로젝트' 등을 집약한 작품 8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작품들을 보면 우리 사회 가부장적 사고의 모순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이고 냉철한 시선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여성혐오' '성불평등' 같은 여성에게 덧씌워진 사회 현상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작품들은 그야말로 '센' 기운을 뿜어내지만, 한편으론 슬픔과 한이 묻어 나온다.

박영숙 작가가 그토록 파고 들었던 '미친년'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27일 오후 '미친년발·화하다'전 프로그램의 하나로 '언니들의 수다' 토크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엔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김현주 추계예술대 교수,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현직 예술가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27일 오후 '미친년발·화하다'전 프로그램의 하나로 '언니들의 수다' 토크 행사가 열렸다. 박영숙(가운데)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청중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News1

박 작가는 이날 행사에서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미친년' 소리를 들었다"며 "옛날로 치면 허난설헌, 명성황후, 소현세자빈 강씨, 나혜석 등이 모두 미친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시대를 가장 진보적으로 산 여성들"이라며 "남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살면 몸이 미치고, 남성이 원하지 않는 대로 살면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박 작가가 페미니즘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75년 유엔(UN)이 제정한 '세계여성의 해'를 기념해 열린 '평등, 발전, 평화' 전시에 여성의 현실을 주제로 한 사진을 출품하면서부터다. 이후 40대에 들어선 1981년부터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박 작가는 미술 안에서도 소외됐던 사진을 하고, 그마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된 경험으로 인해 페미니즘에 눈뜨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92년부터는 민중미술 계열의 페미니스트 단체인 ‘여성미술연구회’에 가입하여 페미니즘 운동에 앞장섰다. 1997년에는 여성작가협회도 발족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등 유수의 국내외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으며, 2002년 광주비엔날레 '멈춤, 지(止), 포즈(PAUSE)'에도 참여했다.

2006년 한국 최초의 사진전문갤러리인 트렁크갤러리를 개관하여 현재 운영 중이다. 갤러리 운영에 주력하다 보니 2009년 이후 7년만에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성곡미술관, 국가인권위원회, 이화여자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등 다수의 기관에 박영숙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Park Youngsook_Imprisoned Body_Wandering Spirit #1_c-print_120x120cm_2002 © News1

보도사진 기자로 사진을 시작한 그는 "정신병원에 가서 실제 정신이상 여성들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찍을 기회가 있었지만,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에 여성적 자아를 누르는 사회현실을 '미친년'이라는 연출 사진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박영숙의 작품에는 지인인 동료 예술가들이 모델로 자주 등장한다. 이번 토크에 참석한 선후배 동료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박 작가와 나누며 치열하게 모델로서 작품에 임했다고 입을 모았다. "미친년 모델 중의 하나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작가는 "미친년이라는 말이 해방 같아서 좋았다"며 "언니 세대가 '미친년 시리즈'를 했다면 그다음 세대가 '미치고 싶은 년' '미칠 년' 식으로 이런 작품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성 간의 공동체적 연대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선생님들께 많은 것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정은영 작가는 "공동체적인 아군이 있다는 자체가 버틸 힘을 준다"며 "그런 역할을 하는 박영숙 선생님의 작품을 계속 보고 싶다"고 했다.

전시의 서문을 쓴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1990년대 한국의 페미니즘이 부상하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며 "이번 전시가 페미니즘을 재생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주 교수는 "여성이 미친다는 걸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미친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갤러리 운영에 집중하던 자신에게 다시 전시를 하도록 권유한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이나 노동자를 위한 의료 활동에 투신한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철학자 도올 김용옥 등 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싶다는 것이다.

Park Youngsook_Feminist in Tokyo #5_c-print_120x120cm_2004 © News1

Park Youngsook_A Flower Shakes Her #14_c-print_120x120cm_2005 © News1

© News1

박창욱 기자(c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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