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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출근길 갤러리] 아버지의 장갑과 한 알의 희망

2016.06.21

[머니투데이] 박재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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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장갑, Great LOVES(GLOVES),2016, 나무에 조각, 25 x 18cm.

<15> 박재하 '아버지의 장갑'(2016)

나의 부모님은 부산에서 솜공장을 하셨다.

1993년 겨울. 옆 가구공장에 불이 났다. 작은 창문 틈으로 불길이 붙어 잘 돌아가던 우리 공장은 전소되고 말았다. 화재가 진압된 후, 공장 마당에 주저앉아 통곡하시던 어머니, 불난 공장의 집기들을 함께 정리해주던 친구들, 걱정해주던 마을사람들, 모두 절망적인 상황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르셨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바닥에 떨어진 목장갑을 끼시며 다짐하셨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는 그 때 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눈에선 정말이지 ‘희망’이라는 불씨가 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금새 공장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셨다.

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일장갑은 아버지의 장갑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의 장갑이기도하다. 나는 그러한 누더기 같은 장갑을 나무에 조각한다. 네모 반듯한 나무판 위에 누군가 쓰다버린 늘어지고 구멍 난 장갑을 나무판 속에서 서서히 꺼내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어머니의 미싱이 돌아가던 소리, 수많은 천을 재단하던 녹슨 무쇠 가위, 아버지 창고에 보석처럼 모아두셨던 녹슨 나사들까지. 나는 일하는 사람들의 쓰디쓴 현실을 따뜻한 나무 위에, 포근한 캔버스 위에 담담히 담아내려 한다.

희망은 달다. 반면 현실은 쓰다. 아버지께서는 그래서 일하시는 내내 사탕을 드셨나 보다.

용접하실 때나, 망치를 드실 때나, 무거운 수레를 나르실 때도 얇은 비닐에 곱게 싸여진 달디 단 사탕을 한 볼에 머금고 일하셨다. 그것은 단순한 간식 차원이 아닌 가족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시고자 하셨던 아버지의 희망 한 알이었던 것 같다. 현실의 장갑과 희망의 사탕은 그러한 점에서 서로 상반되지만 언제나 함께 한다.

편집자주: 미술시장 사각지대에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해 고객과 접점을 만들어 주고 온·오프라인에서 관람객에게 다앙한 미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트1'과 함께 국내 신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림에 딸린 글은 작가가 그림을 직접 소개하는 '작가 노트'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손안의' 혹은 '책상 위'의 갤러리에서 한편의 그림을 감상하고 여유롭게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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