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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한국사회 '오작동' 현장 속에서…'지적 농담'을 길어올리다

2017.06.05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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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H Suntag, The 4th Wall-The state of emergency II, Installation view 3F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사진작가 노순택, 아트선재센터서 9년만에 개인전

"한국전쟁이 '정전'상태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존재, 분단이라는 체제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작동'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죠. 이 사회에서 북한과 분단은 한편으로는 작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오작동'으로써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광장의 예술가'가 산발했던 머리카락을 잘랐다. 지난 겨울 박근혜 정권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의 퇴진을 외치며 서울 광화문 광장의 '예술인 캠핑촌'에서 노숙 투쟁을 벌였던 노순택 작가(46)가 말끔한 모습으로 미술관에 나타났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갖는 개인전 '비상국가 II - 제4의 벽'을 앞두고 1일 미술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노순택 작가는 작품의 배경이 된 한국사회 '오작동'의 현장들과 그 이면의 맥락들을 2시간에 걸쳐 막힘없이 설명했다.

5개월 간 풍찬노숙을 한 탓에 '만신창이'가 된 작가는 한 달을 꼼짝하지 않고 집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4일 시인, 미술작가,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기습적으로 광장에 텐트를 마련했던 그는 "일주일이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딱 그 정도의 짐을 싸서 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름없는 촛불들이 광장에서 타올랐고, 그 촛불들이 만든 커다란 힘이 작가로 하여금 5개월 동안 거리의 한뎃잠을 자게 한 이유가 됐다.

비상국가 State of Emergency #CGG08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6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비상국가 State of Emergency #CDM2802,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3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노순택 작가가 9년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지난 15년 간 '현장'에서 기록한 사진 작품 200여 점을 보여준다. 그 현장이라 함은 평택 대추리, 밀양, 제주 강정마을, 연평도, 서울 용산, 그리고 광화문 광장 등이다.

노순택은 한국사회의 숱한 긴장과 갈등의 현장 속에서 사진을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다. 평택 주한미군이전기지 문제, 밀양 송전탑 문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립 문제, 용산 참사, 천안함 참사, 세월호 참사, 그리고 광화문 광장의 촛불 투쟁 현장까지, 2000년대 이후 벌어진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순간에서 희극적 아이러니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자'와 '발언하는 자' 사이의 간극을 오가며 자신만의 시각예술 언어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근대성'과, 그 근대성에 뿌리내린 국가권력이 물대포를 앞세운 '경찰력'으로 남용되는 순간들을 포착한 신작을 다수 선보인다.

가뭄 Drought #CFF0102,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5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가뭄 Drought #CFL14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5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의 '비상국가' 개념을 빌려 온 전시 제목은 이미 200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립아트센터 라비레이나로 이어진 순회전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는 9년 전 전시 때의 '문제의식'을 한국사회로 더욱 깊게 확장했다. 또한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한스 D.크리스트 슈투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가 이번 전시에서도 협력했다.

특히 크리스트 디렉터는 2006년 노순택 작가와 인연을 맺은 후 10년 넘게 작가를 연구하며 전시 기획을 하고 있다. 노 작가의 작품 속 배경이 되는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가 하면, 작가의 작업 활동과 관련한 출판을 돕기도 한다. 아직 중견이라고도 말하기 이른 한국 작가를 독일의 유력 미술기관 디렉터가 꾸준히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한다는 건 국내 미술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한국사회의 특수한 이야기들이 반영된 사진 작업들이지만, 크리스트 디렉터는 "노순택은 이미 국제적인 작가"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미술언어가 지역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순택의 사진은 그 자체로 미학적인 언어를 갖고 있고, 각각의 이미지들은 미술적 관점에서 '물성'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지적인 농담'(Good intellectual joke)을 통한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큐레이팅 관점에서의 전시 흐름은 '섬에서 섬으로, 섬에서 뭍으로, 그러나 뭍에도 섬에 있다'라는 문장으로 압축된다. 제주·백령도·연평도 등 섬 인근에서 벌어졌던 이야기, 용산·광화문·밀양 등 뭍에서 벌어졌던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뭍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로운 섬'들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시장 2~3층에서 각각의 '지형'을 이루며 전개된다.

작가의 카메라에 담긴 긴장과 갈등, 투쟁의 원류는 결국 '분단' 현실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분단체제의 오작동을 잘 보여줍니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숱하게 제기된 의문에 대해 국가는 속시원히 해답을 내지 않고 말바꾸기를 해 왔죠. 이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 주권자들이 목숨을 잃었고요. 이 사건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잃어버린보온병을찾아서 In Search of Lost Thermos Bottles#CAL27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0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In Search of Lost Thermos Bottles #CAL26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0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전시 개막을 앞두고도 그는 '현장'에 있다. 노숙 투쟁이 길어지며 잠시 중단했던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꿀잠은 노숙 투쟁으로 길거리 잠을 자야하는 지방의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다.

광장 캠핑촌을 이끌었던 송경동 시인을 비롯해 예술가, 시민활동가,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10억원 가량을 모았다. 이를 위해 지난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문정현 신부로부터 받은 서예와 서각 100여 점으로 기금마련전을 열었고, 전시 작품을 '완판'시켜 만든 2억원이 꿀잠의 '종잣돈'이 됐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 근처 4층짜리 다세대주택을 '전세를 끼고' 매입해 지하1층과 1층, 그리고 4층을 노동자들의 쉼터 겸 '베이스캠프'로 사용할 예정이다.

노순택은 왜 늘 현장으로 달려갈까. 작가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시리즈는 그 호기심의 발로다. 2010년 연평도 포격 현장을 찾은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 일행이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라고 했던 '촌극'을 추적한 작업이다.

"정말 궁금했어요. 그 보온병이 어디 갔는지 말예요. 그걸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한겨울 연평도를 헤집고 다녔고, 그 곳에서 찍은 제 사진들을 모조리 뒤졌죠."

노 작가는 "보온병이 발화하는 순간, 포격의 참상이 희극화한다"며 "이 희극의 주인공들이 우리나라 안보를 쥐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순간을 대하는 작가적 입장에 있어서는 "한편으로는 절망적이면서 한편으로는 흥미롭다"며 "이것을 비극으로 풀지, 희극으로 풀지는 여전히 고민스러운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현기증 Vertigo I #CFC06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5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현기증 Vertigo I #CFJ1301, 잉크젯 안료프린트, 가변크기, 2015 (아트선재센터 제공) © News1

노순택 작가는 "분단체제에서 '끔찍한 사건'들이 멈추지 않고 기이하게 변주되고 있는 상황을 과연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현장에 가 있는다고 해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매스미디어 권력은 우리에게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그 이면을 들춰 보여줌으로써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지 않고 입체적으로 생각하고자 하죠. 그게 제 작업에서 잘 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라는 바예요."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제 현장 예술가의 치열함도 한풀 수그러들까. 작가는 "과연 변화된 세상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했다.

"지난 9년 두 정권에서 있었던 노동자의 고통과 공동체의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지만요. 그 이전의 두 정권이 남긴 유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제가 특정한 정권을 지지하기 위해 작업을 하는 건 아닙니다. 누가 권력을 잡든, 우리사회에는 늘 미세한 갈등들이 있어요. 그러한 갈등을 주목하려 합니다. 단지 비극뿐 아니라 비극 안에 존재하는 '블랙코미디'까지도요." 전시는 2일부터 8월6일까지.

전시 기획을 협력한 한스 D. 크리스트 디렉터(왼쪽)와 노순택 작가.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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