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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20세기 블랙리스트 화가' 이응노, 프랑스가 주목하다

2017.06.23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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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무제, 1987,ⓒ Musee Cernuschi Roger-Viollet - Adagp, Paris 2017

1967년 '동백림 사건' 연루 옥고…1989년 국내 회고전 앞두고 별세
세르누쉬 파리시립동양미술관·퐁피두센터 등 프랑스서 잇단 전시

1960년대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숨진 '20세기 블랙리스트 화가' 고암 이응노(1904-1989)의 회고전이 프랑스 미술관에서 잇달아 열리고 있다. 전통적인 필묵을 서양미술에 적용해 '문자추상' '군상' 등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한 고암의 전 화업을 돌아보는 전시로, 프랑스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직접 고암을 연구하고 기획한 전시라 의미가 크다는 것이 미술계 전언이다.

프랑스 세르누쉬 파리시립동양미술관(관장 에릭 르페브르)은 지난 9일부터 '군중을 그리는 사람 : 이응노'라는 주제로 이응노 회고전을 열고 있다. 20세기 서구와 극동아시아의 문화적 교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이응노를 기념한다는 취지다.

대전 이응노미술관에 따르면 세르누쉬 파리시립동양미술관은 프랑스에서는 두 번째, 유럽에서는 다섯 번째로 동양미술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내 손꼽히는 아시아 미술관으로,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1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이어 오는 9월에는 프랑스 파리의 국립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에서 이응노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역시 퐁피두센터 큐레이터들이 직접 기획한 전시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은 "한국 쪽이 주도한 전시가 아니라 순전히 프랑스 쪽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연구·기획하는 전시여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며 "이응노의 화업을 미술사적으로 평가하고 국제적인 작가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세르누쉬 파리시립동양미술관 이응노 회고전 전시 전경. (이응노미술관 제공) © News1

사실 이응노는 1980년대 국적을 프랑스로 바꾼 '프랑스 작가'다. 1958년 51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서독에서 1년간 체류하며 본, 쾰른,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시기 대상의 사실적 모방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반추상 양식'을 발전시켰다.

독일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응노는 당시 프랑스 화단의 주류였던 '앵포르멜' 회화 양식을 수용해 우리의 전통 필묵과 결합, 동양적 감수성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의 추상을 발전시켰다.

1962년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 계약을 맺고 첫 개인전 '이응노, 콜라주'를 통해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추상 작품을 대거 선보이면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파리를 중심으로 독일, 미국, 스위스,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그리스, 영국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던 그가 고국을 등지게 된 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면서다.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으로,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이응로, 윤이상 등 194명이 대남 적화 공작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른 고암은 1969년 사면된 후 프랑스로 돌아와 활발한 작업활동을 이어갔고, 1970년대 그의 '문자추상'은 건축적으로 더욱 단단한 조형미를 갖추며 발전했다.

1980년을 기점으로 1989년 작고 전까지 제작된 '군상' 연작은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긴 고암 예술의 절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89년 1월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별세하면서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이지호 관장은 "이응노를 세계미술사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렇게 빨리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서 기쁘다"며 "'4기 파리이응노레지던스' '아트랩 대전' 등을 통해 젊은 작가를 육성해 '제2의 이응노'를 발굴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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