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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초점]서울시립미술관 아트페어 시작부터 '삐걱'

2015.09.09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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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홍성담의 작품이 걸려있던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 길드아트페어 전시장면. 2015-09-08

24명 작가 140여 점 전시 판매 개막부터 논란
화랑협 "미술관서 판매행위 중단"성명서 발표
전시 5일만에 논란 홍성담 '김기종의 칼질'철수.

서울시립미술관 '2015 SeMA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가 시작부터 길을 잃었다.

행사를 열고 있는 남서울관에서 최근 만난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 과장은 "(화랑협회가)본질을 왜곡한다"며 항의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연건데, 이런 식이면 내년엔 못하는 거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한국화랑협회가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울시립화랑이냐'며 성명서(4일 뉴시스 단독보도)를 내고 "미술관에서 판매행위를 중지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한 말이었다.

이 전시는 "작가가 작품을 직거래할 수 있는 있는 새로운 개념의 아트페어"라고 내세운 행사다. "판매 촉진만을 위한 일반 아트페어의 형식을 벗어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 전시를 통해 아트페어를 기획 전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논란에 부딪히자 "내년엔 못한다"고 언급한 것은 이 행사가 '단타성'이라는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 2015-09-08

'참여 예술가들과 전시를 기획했다'는 시립미술관 수집연구 과장이 말하는 '본질'은 "열악한 환경의 작가들에게 기회의 장을 넓혀주고 상업화랑 및 컬렉터의 손이 미치지 않은 많은 작가들에게 이번 아트페어가 새로운 창작의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취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미술관에서 상업적 이벤트를 열었다는 것이다. 미술관은 애초 작품판매가 금지된 곳이다. 서울시립미술관측은 아트페어 기획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전시 총감독을 위촉해 "작가가 작품을 직거래하는 판을 깔아줬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금기를 깨고 시작된 행사에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전시 출품작 중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를 옹호하는 듯한 그림이 걸려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홍성담(60) 화백의 ‘김기종의 칼질’이라는 그림이다. (지난 3월 5일 리퍼트 대사에게 면도칼을 휘둘러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김기종은 지난 3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15년이 구형됐다.)

'김기종의 칼질' 그림에는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황색 옷을 입은 남성이 양복을 입은 남성의 넥타이를 당기고 한쪽 손으로는 칼을 겨누는 모습이 묘사됐다. 테이블 위에는 빽빽하게 적어 자세히 들여다봐야 읽을 수 있는 작가의 글이 길게 쓰여있다.

내용을 보면 "김기종이는 2015년 3월 모월모시에 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주한미국대사 리퍼트에 칼질을 했다. 얼굴과 팔에 칼질을 당한 리퍼트는 붉은 피를 질질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가고 김기종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중단하라' 고래고래 외치면서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적혀있다. 이어 "조선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죽인 안중근 의사도 역시 우리민족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라며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에게 형님의 나라인 일본의 훌륭한 정치인을 죽인 깡패도적쯤으로 폄하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넌지시 욕을 했다"고 적었다.

민중화가로 유명한 홍성담의 작품은 전시 때마다 화제가 됐다. 작품의 독특한 내용 때문에 다른 작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현상도 발생했다. 지난해 8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세월오월'을 출품해 물의를 일으켜 결국 전시가 취소됐고, 논란 끝에 작가에 의해 작품이 철수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에 출품된 노동식의 설치작품 '희망고문'.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형상화했다. 2015-09-08

이번에도 전시 5일만에 홍 작가가 자진철수한 그림과 관련 주최측은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홍경한 총감독은 이 작품이 처음 논란이 됐을 때 "작품에 쓰인 글들을 꼼꼼히 봤는데, 한쪽으로만 해석하기보다는 그 해석이 묘하기도 했고 판단은 관람객에게 맡기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말이 바뀌었다. 홍 감독은 "140여 점이 출품됐는데 그 중 한 작품으로 인해 다른 작가의 작품마저도 정치적 프레임으로 보여지는 현상에 대해 총감독으로서 묵과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다양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호해야 하기에 작품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미 한발 뺀 듯한 모습이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전시와 관련한 모든 권한은 총감독의 고유권한으로, 우리가 개입하면 검열 아닌 검열이 될 가능성이 있어 총감독에게 일임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시립미술관은 '아트페어' 타이틀을 달고 행사를 추진했을까.

시작은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시립미술관은 서울시의 산하기관이다. 올초 박 시장이 직접 '신진작가들의 판로 개척'을 위한 행사를 추진해보라는 검토지시(?)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화랑협회는 '알만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개했다. '어떻게 서울시장과 미술시장을 잘 아는 김홍희 관장이 이럴 수가 있을까' 의아해했다. '미술관에서 작가가 작품을 직거래'하는 건 미술관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전시했던 심승욱의 '부재와 임재사이'도 전시됐다. 세월호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2015-09-08

이 행사 자문위원 중에는 박 시장과 가까운 임옥상 화백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특히 논란이 된 홍성담 작가의 작품 외에도 세월호 , 팽목항 등 사회적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설치돼 전시의 성격을 일부 보여준다.

시립미술관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대안적 아트페어'라는 것도 논란을 불러왔다. ‘대안적’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작품을 거래하는 아트페어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차별적이고 대안적인 기획전을 마련해줬고, 다만 ‘희망할 경우’ 전시된 작품을 ‘전시에 맞춰 형성된 길드를 통해 구매할 수도 있음’을 내세웠다면 큰 문제가 안됐을 수도 있었다. 미술관이 주최하는 행사 자체에 ‘판매될 수 있는 작품의 전시’가 아닌, ‘직접 구매로 직결되는 상업적 전시’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진 것이다.

차라리 ‘판매가 어려운 작품을 미술관의 특성과 전시형식을 통해 재평가 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여주려 했다'고 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진작가 판로개척' '판매가 어려운 예술가를 위한 전시'를 기획 취지로 내세우면서 반발이 커졌다. 김 관장이 "기존 상업화랑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작가도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했지만 국내 미술관이나 해외전시에도 초대됐던 작가들도 포함돼 있다.

성동훈, 홍순명(사비나미술관), 김기라(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변웅필 (갤러리현대),심승욱(런던 사치갤러리,아트사이드)등이다.

담의 작품 '김기종의 칼질' 2015-09-08

이번 전시는 ‘판매가 어려운 작가들의 판로개척’과 ‘수익금을 직접 작가에게 주는 직거래 형식’을 주장했지만, 현장의 판매가격은 기존 갤러리 가격이거나 일부 작가는 그 이상 고가여서, 가격을 묻고 놀라는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작품가격은 80만~7000만원까지였다. 한 '신진 작가'는 100호 크기 정도에 5000만원이라고 내놓고, 워낙 공들인 작품이고 팔고 싶지않아 시장 가격과는 상관없이 적어놓은 금액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형식 자체만 보면 완성도가 높은 인상 깊은 전시다. 미술관에서 작가적 의지가 뚜렷한 작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은 의미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풀어내는 마케팅 홍보 전략은 치밀하지 못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갤러리가 아닌 미술관에서 만나면 뭔가 다를 수 있다’는 차별성을 부각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아트페어가 국내에서 한 해에만 40여 회 열려 이미 포화상태이다. 미술관은 '문화 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연구하고 발굴하고 지원전시하는 곳'이다. 본연의 역할이 서로 다른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내세운 시립미술관은 그간 굵직한 예술가들의 전시보다 팀버튼, 지드래곤,아트스타코리아전 등을 유치하며 이슈가 되어 왔다.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를 들고나온 시립미술관은 물론 '미술관법 윤리강령' 위반을 주장하며 반발만하는 화랑협회도 '본분'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전시의 테마는 묘하게도 '공허한 제국'이다. 행사는 13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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