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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안영일 화백 "나의 곳간은 아직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2017.03.29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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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화가 안영일 작가가 28일 오후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3.2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미국 라크마미술관 한인 최초 개인전 이어 31년만에 현대화랑 개인전



"나의 곳간은 아직 그리고 싶은 영감으로 가득차 있어요. 살아있는 한 계속 그릴겁니다."

'물의 화가'로 불리는 재미화가 안영일(85)이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28일 뉴스1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안 화백과 동행한 그의 아내 안소라야 씨는 "예술가가 나이를 먹으면 감정이 고갈돼서 그림을 그리기 힘든데, 이 사람은 지금도 그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빈 캔버스 앞에 앉을 때마다 설레어 한다"고 거들었다.

안영일 화백의 개인전이 지난 16일부터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앞서 안 화백은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LACMA·라크마)에서 한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어 화제가 됐다.

안영일 화백 미국 전속 갤러리인 백아트갤러리의 수전 백(Susan Baik) 대표는 라크마 전시에 대해 "스티븐 리틀 라크마미술관 한국관 수석 큐레이터가 '라크마미술관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했다"고 전했다.

1966년 도미해 50년 넘게 미국에서 작업해 온 안 화백이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1986년 이후 31년만이다. 사각의 작은 색점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전면추상 '물 시리즈' 30여 점을 선보인다.

재미화가 안영일 작가가 28일 오후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3.2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1934년 개성에서 서양화가이자 미술 교육자였던 안승각의 아들로 태어난 안영일은 유년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서 생활했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재능과 감성으로 '천재 소년화가'라 불렸던 그는 10세 때 귀국해 고등학교 시절 제2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하기도 했으나, 나이가 밝혀지며 입선으로 '강등'됐던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맞을 각오를 하고" 아버지가 먼저 그림을 그려놓은 캔버스를 뜯어낸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아버지 안승각 씨는 아들의 그림을 보고 화를 내기는 커녕 표구를 새로 해 주고 국전에 출품할 수 있게 도와주기까지 했다.

안 화백과 그의 아내는 "내내 운이 좋았던 예술가"라고 회상했다. 안 화백은 195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이화여고와 서울 사대부고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곧 전업작가로 나섰다. 그의 예술을 사랑했던 당시 주한미국대사는 1957년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젊은 작가의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 초대전을 도와주기도 했다.

이미 20~30대 나이에 김환기 등 선배 작가들과 교우하고, 작품만 팔아도 생계가 가능한 '잘 나가는' 작가였던 그는 1966년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그림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안 화백은 "풍요로운 나라에 가서 재료 걱정 없이 그림 한 번 실컷 그려봤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에 건너간 후에는 미국 컬렉터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이른바 '미술한류'를 이끌었던 1세대였다. 우산, 해변 등 필치와 색채가 강렬한 반구상 작품을 1969년 당시 안 화백의 전속 갤러리였던 재커리월러갤러리에서 LA의 저명한 컬렉터가 구입하기도 했다. 그 컬렉터는 고흐, 르누아르 등 인상파 거장들의 원작들과 함께 그의 '우산' 시리즈 1점을 소장품 리스트에 올렸다.

재미화가 안영일 작가(오른쪽)와 그의 부인 안소라야 씨가 28일 오후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7.3.2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안 화백이 '물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건 1983년부터다. LA에서 기반을 닦으며 작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 시기, 전속 갤러리와 컬렉터 사이에 불미스러운 송사가 벌어지며 그 충격에 10년 가까이 붓을 놓을 정도로 슬럼프를 겪었다. 안 화백은 우울증에 빠져 매일 혼자 바다낚시를 다니게 됐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낚시를 하던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안개 속에서 표류하게 된 안 화백은 죽음이 바로 곁이 있음을 직감하고 보트의 엔진을 끈 채 파도에 몸을 맡겼다.

극도의 공포감과 허망함에 휩싸여있던 순간, 안개가 걷히며 확 트인 공간에서 마주한 태평양 바다 물결과 파도는 색색의 진주알을 흩뿌려놓은 듯 영롱한 환희로 다가왔다. 매 순간 오묘한 빛의 율동으로 출렁이던 '물의 몸짓'은 그 후부터 안 화백을 사로잡았고, 그는 '바다의 일부'가 됐다.

1970~80년대 음악가들을 그린 '캘리포니아' 연작 등 주로 구상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던 그는 이 때부터 사각 색점을 가득 채운 물 시리즈에 34년 화업을 바쳤다.

안영일 미국 라크마미술관 개인전 설치전경, 사진=Michael Underwood (현대화랑 제공) © News1

현대화랑 안영일 개인전 설치 전경. (현대화랑 제공) © News1

안 화백은 2013년 8월 중풍으로 쓰러져 또 한번 고비를 겪었다. 부인 안소라야 씨는 "예술가로서의 삶도 끝난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안 씨는 "모두가 그를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안 화백의 예술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했던지 쓰러진 지 8개월만에 마비가 덜 풀린 손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아직도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그리면서 지금은 스스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불편한 거동에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은 더욱 열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200호를 훌쩍 넘는 대규모 신작은 현재 라크마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라크마미술관 측은 "내일 나올 작품이 오늘 작품보다 더 좋은 화가"라고 전했다. 현대화랑 전시는 4월16일까지, 라크마미술관 전시는 10월1일까지다. 다음은 현대화랑에 전시된 작품들이다.

안영일, Water B-08, 2008, 캔버스에 유채, 107 x 91cm (이하 현대화랑 제공) © News1

안영일, Water RSYO 6, 2005, 캔버스에 유채, 91 x 76cm © News1

안영일, Water G 6, 2005, 캔버스에 유채, 101 x 91cm © News1

안영일, Water G 2, 2005, 캔버스에 유채, 101 x 91cm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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