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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삶의 흔적따라 감상하는 이중섭 100주년 기념전 16일 개막

2016.03.16

[뉴스1]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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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한국 근대서양화의 대표 화가인 이중섭의 걸작 '황소'를 소장하고 있는 서울미술관이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중섭은 죽었다'전을 개최한다.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는 이번 전시 제목은 기존의 신비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삶의 흔적을 따라 살펴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오는 16일 개막하는 이번 전시는 경남 통영 항남3길 25번지, 대구 경복여관 9호실 등 이중섭이 살았던 10곳을 재현해 작품 18점과 함께 선보이며 오는 5월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이중섭(1916~1956)은 '황소', '소와 어린이', '길 떠나는 가족'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긴 대한민국 대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는 그림들과 강렬하고 정열적인 붓 터치가 강조된 '황소' 연작들은 전쟁을 겪은 한국인의 마음을 크게 움직여 그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처럼 화려한 명성과 다르게 이중섭은 늘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다 쓸쓸히 홀로 죽어갔다. 이번 기념전은 그가 잠든 망우리 공원묘지 고유번호 '103535번 묘'에서부터 출발해 시간을 거슬러 간다. 전시장에 재현된 그의 묘비는 '국민화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비석이나 추모비조차 없다.

'서울, 정릉 청수동'은 그가 대구에서의 투병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해 말년의 창작열을 불태웠던 곳이다. 이 시기에 이중섭은 잡지 표지나 삽화를 청탁받아 주로 작업했다. '문학예술', '자유문학', '현대문학' 등 그의 손길이 닿은 삽화에는 이중섭만의 따스함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쓸쓸함이 잘 묻어난다.

'대구, 경복여관 2층 9호실'은 성공적인 개인전(1955)을 개최했으나 작품값을 제대로 수금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시기에 머물던 곳이다. 상심한 그가 작품을 불태우는 등 이상행동을 하자 정신착란으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중섭은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세밀한 필체로 '자화상'을 그려 보였다.

'부산, 루네쌍스 다방'은 한국전쟁 후 변변한 문화공간이 없던 시절에 이중섭이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다. 그는 생활고 때문에 아내 마사코와 두 아이를 일본으로 떠나보낸 이후 다방을 거점으로 담배 속지인 은종이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의 은지화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제주, 서귀포읍'은 이중섭이 가족들과 함께 한국전쟁을 피해 살던 곳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진 못해 해초와 게를 채취해 연명해야 했다. 자연과 가족이 주요 모티브가 된 이 시기의 작업은 희망이 담겨 있는 낭만적인 성향을 띈다.

서울미술관 관계자는 "미술 시장의 급격한 활성화를 타고 그의 삶은 신비화되고 작품은 최고가로 거래됐다"며 "이후 위작이 떠돌면서 작품가격이 추락했고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작가라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중섭의 발자취를 작품과 함께 살펴보면서 '신화가 된 민족화가' 이중섭이 아닌 진짜 '이중섭'의 예술세계를 발견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가격 1500~3500원. 문의 (02)395-0100.

'이중섭은 죽었다'전 전시전경 © News1

이중섭 '황소'(1953) © News1

이중섭 '가족' (1953년 추정) © News1

이중섭 자화상(1955) © News1

박정환 기자(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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