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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색'으로 위로를 건네다, '인생의 상흔' 보듬는 작가 지젤박

2016.02.02

[머니위크] 진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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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상처의 '결', 그 위를 덮는 '색'. 인생의 시련으로 생긴 '마음의 결'에 따뜻한 '색'으로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있다. 아트1 초대작가 지젤박은 색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붓을 쥔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결국 색이라고 생각해요. 색은 사람의 감정을 담아내고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죠."

'현대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나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색채를 그리고 싶다는 화가. '색을 잘 쓰는 화가'로 불리고 싶다는 지젤박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들어봤다.

◆ 무한한 색의 매력

시작은 모더니즘 회화에 대한 동경이었다. "색이 번지고 흐르고 얼룩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설레요. 점·선·면과 색채, 양감과 질감 등의 형식요소들이 회화의 본질이고 그 조합과 구성만으로 충분히 '회화적'이라고 생각해요." 지젤박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번도 '색면회화' 외의 작품을 그려본 적이 없다.

지젤박_from a distance 15-41_50x100cm_acrylic on canvas_2015. /사진제공=지젤박 작가

실제 지젤박의 올해 첫 전시회 '블러썸'(Blossom)이 열린 카라스 갤러리는 '색의 향연'이었다. 캔버스를 가르는 서너가지 색. 그 색 안에는 또 색이 있다. "색 위에 색을 입혀요.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밑 색이 드러나는데 그게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요. 색이 비치고 우러나고 얼룩이 지고 다르게 표현되면서 깊이 있는 색이 완성돼요."

색의 종류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단순하거나 무궁무진하다. 지젤박에게 색은 가장 예민한 부분이며 조합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무한함을 담고 있다. 그러나 색을 단순히 놓고 봤을 때 지젤박에게 가장 매력적인 색은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따뜻한 빨강과 차가운 파랑이 만나 묘한 느낌을 줘요. 깊이가 있는 색이지만 자칫하면 촌스러워 보이죠. 그래서 어려운 색이고 그만큼 매력적이에요."

◆ From a Distance, 거리두기

지젤박의 작품 제목은 모두 '프롬 어 디스턴스'(From a Distance)로 시작한다. '거리두기'라는 의미의 '프롬 어 디스턴스' 다음에 제작연도, 일련번호가 붙는다. "프롬 어 디스턴스는 미적 거리, 심적 거리를 의미해요. 그림을 잘 보기 위해서는 멀리서도 봐야 하고, 가까이서도 봐야 하죠."

지젤박의 작품을 멀리서 보면 추상화된 수평선과 지평선이 보인다. 그 선을 경계로 산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고 들판이 보인다. 지젤박은 색의 경계가 바로 자연이라고 말한다. "제 작품은 모더니즘 회화지만 자연의 풍경이 연상돼요. 의지의 산, 인연의 강물, 바람의 설렘, 아득한 그리움의 지평선과 수평선의 모습을 표현하죠."

그중에서도 지젤박을 가장 설레게 하는 소재는 바로 들판이다. 들판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 없단다. 지젤박에게 들판은 색을 입힐 때마다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풀들을 연상시킨다. 외롭고 고된 작업 속에서 오롯이 자연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지젤박 작품과 거리를 좁히면 '결'이 보인다. 따뜻한 색으로 덮인 표면 속에 숨겨진 '상처'다. "작품에서 결은 인생의 상처를 의미해요.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고난, 시련, 이유 없는 불행, 숙명적인 외로움을 질감으로 표현한 거죠."

지젤박에 따르면 색으로 채워진 결은 치열한 노력으로 얻게 된 '인생의 상흔'과 같다. "결의 사이사이에 색이 스며들고 그 위에 덧대진 색은 층을 이루죠. 흔적이 남은 색들은 어우러지며 깊이 있는 미묘한 빛을 발산해요. 굴곡 있는 고된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낸 삶이 진정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죠."

지젤박_from a distance 15-46_50x50cm_acrylic on canvas_2015. /사진제공=지젤박 작가

◆ 유토피아에서 건네는 위안

지젤박은 자신을 노발리스의 문학작품 <푸른 꽃>에 비유한다. 작품 안에서 '푸른 꽃'은 소녀의 모습을 한 동경의 대상으로 주인공을 성장하게 한다. 무한세계를 향한 동경, 끝없는 갈망으로 언제나 순수한 열정을 지니겠다는 지젤박의 소망이 푸른 꽃에 투영됐다. "저에게 있어 그림은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유토피아의 표상이에요."

지젤박이 처음부터 추상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회화전공으로 대학을 거쳐 대학원 졸업 전까지 형태가 있는 '구상화'를 그렸다. 최근 그리는 '추상화'와 비슷한 색면회화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길'을 그린 것. 지젤박은 대학원 졸업 이후부터 더욱 단순화되고 추상적인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작품이 추상적일수록 결은 더 깊어졌고 색과 채도는 다양해졌다. '추상화'를 그리면서 그의 유토피아가 '형상화'된 것이다.

이번 전시회 '블러썸'도 같은 맥락이다. 꽃처럼 활짝 핀 유토피아를 갈망하며 작업했다. 2016년을 여는 첫 전시회인 만큼 캔버스 위에 밝고 활기찬 색을 채웠다. 올해 지젤박의 목표는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들어 위로를 전하는 것이다. "책상과 시계, 가방과 스카프처럼 매일 사람들과 함께하는 물건과 콜라보하는 게 목표예요. 색감 있는 작품이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작업실에서 '결'을 '색'으로 덮으며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지젤박은 언제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넬 준비를 하고 있다. "저는 저 스스로와 '영원한 사춘기'를 약속해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세월에 무뎌지지 않은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그려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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