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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피사체가 말하는 것 보세요” 사진으로 제주를 채색하는 서정희 작가

2015.12.21

[머니위크] 이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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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제주인의 사람과 집, 색채로 찍어요"

바다에 둘러싸인 섬,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90㎞ 떨어진 곳. 사진에 제주도의 다양한 색채를 담는 사진작가가 있다. 2011년 제주 특성화고에 입학한 자녀를 따라 제주로 집을 옮긴 서정희 작가는 평생 제주에서 사진 찍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던 그가 돌연 제주에 남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살며시, Arches Aquarelle Rag 310g Wood Frame, 150x100cm, 2015. /사진제공=서정희 작가

전통·현대문명 공존하는 제주를 그림으로

지난 10월 초 제주 성읍 민속촌에서 큰 규모의 민속축제가 열렸다. 연주가들이 가야금, 아쟁, 피리 등 전통악기를 손에 들고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붉은 한복치마를 입은 연주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축제를 준비했는데 손에는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서 작가는 이 순간을 포착해 대표작품 '살며시'를 만들었다. 이 사진 한컷을 그는 '제주의 현주소'라고 말한다.

첫해, 첫눈. /사진제공=서정희 작가

비, 바람,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고 불렸던 제주도는 이제 3가지로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도시생활에 지쳐 제주도로 터전을 옮긴 이주민들이 대거 늘었고 심플하고 최첨단시설을 갖춘 펜션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해녀가 알아듣기 힘든 방언을 쓰고 물질을 하지만 한편에선 젊은 이주민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개성 넘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는 고립된 지역으로 독특한 생활양식이 있었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유입되면서 제주의 모습, 도민들의 생각이 점차 변하고 있어요. 오랜 전통과 현대문명이 공존하는 모습이랄까….”

서 작가의 사진에는 제주의 억새풀이 강하게 움직인다. 작품 '첫해, 첫눈'에는 해를 기점으로 하얀 눈이 두드러지게 빛난다. 이처럼 서 작가의 사진은 유화그림처럼 울퉁불퉁한 재질이 만져질 것 같다는 평이 많다.

이에 대해 서 작가는 ‘디지털 암실’이라고 부르는 기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진에 유화필터를 입혀 손으로 그린 것처럼 정지된 컷을 비틀어 버린다. 통상적으로 사진의 개념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서 작가의 사진은 마음을 보여주는 도구에 가깝다.

“필름 카메라를 찍으면 암실에서 필름 인화작업을 하는데 저는 포토샵과 디지털 합성기술을 통해 사진인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디지털 기술로 피사체가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죠.”

대비, Digital C-print Acrylic Framem 76x50cm, 2015. /사진제공=서정희 작가

화려한 지붕의 집, 변화하는 제주인의 삶

최근 서 작가가 제대로 꽂힌 피사체는 바로 제주도민들의 집이다. 지리적인 특징 때문에 관광지로 유명한 제주지만 제주도민이 생활하는 공간과 시간의 흐름, 지나치기 쉬운 구석진 거주지의 색깔을 담아내고자 동네 곳곳을 찾아다닌다.

특히 서 작가는 벽면, 지붕 등 집의 외부 색칠에서 제주도민의 마음을 엿본다. 벽, 문, 지붕은 별개로 만들었지만 전체가 하나로 작업한 듯 제주의 색들이 이어진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색칠하기 프로젝트를 끝낸 것처럼 다채로운 색채가 마을을 이룬다.

수많은 마을과 집들은 큰 화폭에 펼쳐진 기나긴 그림과 같다. 이질적인 대상물과 재료 등 다른 내용물들의 낯선 만남이 새로운 리듬감을 자아내며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최근 제주 조천읍에 생긴 스위스마을에 가면 다양한 색채의 건물을 볼 수 있다. 서 작가는 강렬한 색으로 무장한 조천 스위스마을의 벽면을 사진에 담았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 4가지 색의 벽면, 지붕은 제주도민의 밝은 희망, 소망을 나타낸다.

“스위스마을 공동체가 마을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고민한 것은 건물의 색깔이었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강렬한 색채를 통해 밝은 도민들의 마음과 감동을 주는 마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주로 사진작가들이 건물을 찍으면 피사체를 아래에서 위로 찍은 수직구도가 많다. 건물 전체를 한 프레임에 보여줘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 작가의 '대비'와 '그 문'은 벽면의 일부를 찍어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과 분위기를 전달했다.

그 문. /사진제공=서정희 작가

붉고 노란 벽은 푸른 하늘과 삼중주 하듯 경쾌한 스위스마을 사람들의 주거환경을 보여준다. 반대로 파란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오래된 문은 제주도민의 정겹고 쓸쓸한 삶을 이야기한다.

“제주 가파도에 가면 빈 집이 많은데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거나 사람들이 도시로 떠난 자리에 녹슨 손잡이, 떨어져 나간 페인트가 남아있어요. 텅 빈 집의 쓸쓸함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죠.”

서 작가가 오래된 집을 찍으려고 할 때면 ‘괸당’이라고 불리는 집단과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괸당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풍습으로 가족이나 친척, 이웃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두터운 관계인데, 이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어려웠다. 새로 지은 집들은 보안을 이유로 사진 찍길 꺼려하는 이주민들이 많았다.

이 같은 갈등에도 서 작가가 집을 찍는 이유는 ‘변화하는 제주의 진짜 속내’를 보여주고 싶어서다. 사람들이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입는 것처럼 집은 집단, 마을을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현재 서 작가의 아들은 제주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돌아갔지만, 서 작가는 여전히 제주도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제주에서 찍은 사진을 두바이, 싱가포르 아트페어에 전시했고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사진으로 그린 제주’ 사진전에선 20~30점의 사진이 완판되기도 했다.

“집, 건물 등 제주도민의 삶을 계속 찍고 싶어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찾고 있지만 제주도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고 우리나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제주의 색다른 매력을 전달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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